12 July 12

1
시사회를 보러간 아내는 아직이다. 8시 반에 시작한다더니 11시가 다 되도록 연락 한번 없다. 괜시리 심술이 나서 노트북을 켜니 그제야 아내의 전화가 온다. 간만에 재미난 영화를 보았는지 아내의 목소리가 상쾌하다. 방금 전까지의 궁시렁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나까지 덩달아 기분이 좋다.

2
낯선 땅을 향하던 스물 여섯의 나는 2,500원짜리 필름이냐, 3,500원짜리 필름이냐를 가지고 고민했던 것 같다. 30통을 사봤자 30,000원 차이인데 왜 그리 고민이 많았던지… 서른 두살이 된 요즘의 나는 필름에 담길 풍광을 상상하며 수채화 같은 채도를 가진 포트라를 살지, 강렬한 채도와 선명함을 지닌 액타를 주력으로 할지 고민하고 있다. 무언가 하나를 골라야 하는데 같은 장면을 두 필름 모두로 찍어보고 싶은 욕심이 사라지지 않는다. 어쩌면 찰나는 놓치면 영원히 다시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서가 아닐까 싶다.

3
글이 써지지 않는데 아내가 시사회와 연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순간 곰폭발을 일으켰다. 문법을 까먹은 것도, 어울리는 단어의 조합을 찾아내지 못하는 것도 모두 내 잘못인데 어째서 착한 아내에게 내 죄를 뒤집어 씌우는지 모르겠다. 정말 미안!

4
요즘의 난 회사를 다니지만 사실상 파견과 다름 없는 곳에서 업무를 보고있다. -파견보다 몸과 마음은 더 괴로운데 파견수당이 나오지 않는다- 복마전이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곳인데 회사를 다니지만 회사의 관점으로 일을 진행하지 못하는 것도 꽤나 기력이 빠지는 일이다.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좁은 곳에 갇혀 회사가 아닌 타인의 영달을 위해 일을 하고 있자니 숫자의 감옥이라 매일 비아냥 거렸던 전직이 그리워진다.

5
야심한 밤인데 카푸치노가 생각난다. 그냥 카푸치노도 아니고 테르미니표 카푸치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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