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함에 최고의 경의를!

몇달에 한번씩 찾아오는 증상이 있다. 이 증상을 굳이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희락열이라는 단어가 제일 어울릴듯 한데, 희락열이 한번 찾아올 때마다 난 한순간 다른 사람으로 변해버린다. 뭐라고 할까? 허무주의에 가까운 기도가 음탕함으로 흐른다고 해야할까? 역시 제대로 된 표현은 아니다.

단순한 음탕함이라고 부르기에는 무언가 다른 요소가 많으니까? 어쩌면 도덕과 예절이라는 규범에 종속당한 또 다른 인격이 그 순간 되살아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예전과 다르게 이 숨겨진 인격은 현재의 인격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예전같으면 아무런 제어없이 움직일 입술에선 아무런 단어도 흘러나오지 않으니까 말이다.

오늘 겪은 희락열의 시작은 서점에서 시작되었다. 멀쩡하게 책을 읽고 있던 나에게 한가지 환상이 다가왔다. 어떤 코드를 공유하는 사람들에게는 더할나위없이 자극적인 짧은 문장이 봉인되었던 하나의 인격을 깨워버린 것이다. 녀석이 깨어나자마자 한 일은 견고하게 자리잡은 본래의 인격에 대한 회유 공작이었다.

무엇때문에 이렇게 고독한 삶을 사는거야? 당신이 지닌 인생관은 쾌락주의자에 가까운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애써 수도승처럼 무엇을 하는 것이지. 저 입술을 보고 흔들리는 마음을 보라고. 저 뺨을 보면서 입술로 읊고 있는 시는 무엇이지. 루바이야트를 읽으며 느꼈던 그 감동을 되살려 보라고. 미주와 미인만 있다면 버림받은 은둔자의 삶도 나쁘지 않다고 말하던 그 황홀한 표정은 어디에 숨겨두었나?

숨겨진 인격의 혀는 그 어떤 비수보다 날카롭다. 녀석의 매끄러운 혀놀림에 심취해 있는 사이 난 어지러움과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몸을 탐하는 듯한 시선은 약과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상대를 분석하고 상대가 지닌 욕망의 실체를 파악하려는 나를 발견할 때의 놀람이란. 이른 아침 침구 속에서 뱀을 발견하는 것만큼이나 끔직한 경험이 되고 만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토록 타인의 삶에 무관심한 내가 타인의 욕망을 관찰하고 그 기대에 부응하려는 것 자체가 혐오스러운 것이다.

녀석의 유혹은 끈질기다. 지금의 삶. 비록 외사랑에 불과할지라도 그 사랑에 걸맞은 값을 치루려는 나를 녀석은 끊임없이 유혹한다. 왜 많은 기회를 놓치는 거지? 아무것도 아닌 일에. 입으로 말하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너한테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자. 조금만 손을 내밀어봐. 능력을 보여주란 말이야. 곡선과 따스함에 대한 그 욕구. 제발 숨기지 말라고.

시간이 흐르자 녀석의 활동력은 잠잠해져 간다. 녀석의 혀에는 치명적인 제약이 뒤따른다. 시간이 지닐수록 스스로의 열정에 먼저 지쳐버린 다는 것이다. 게다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웃음을 오래지 않아 보았기에 난 스스로를 다잡을 수 있었다.

빗속이 싱그러웠다. 혼자라면 처량함을 느꼈을 테지만 어깨가 젖어들어가는 것도 모를 정도로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형체가 옆에 있었다. 내일이 마지막이 되겠지. 이렇듯 행복해 하던 일상도 내일이면 종언을 고하리라. 어쩌면 옛모습조차 찾지 못할 정도로 변해버릴 수 있겠지만 희락열조차 이겨내는 나의 행복을 영원히 잊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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