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미터에 대한 짧은 단상

가끔은 이런 시간이 싫어진다. 가슴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정반대로 말하고 웃고 생각하는 척 하는 내가 바보처럼 느껴진다. 항상 솔직하고 당당하게 책임지는 것이 최선의 삶이라는 인식과는 다르게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나는 한심한 바보 녀석이다.

세상의 비난에도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거짓말을 둘러댈 수 있는 내가 왜 지금 이 자리에서는 하염없이 겁에 질려 있는지 스스로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누가 사랑을 해보았냐고 물었을 때, 항상 자신감을 가지고 대답을 하곤했다. 하지만 오늘의 나에게 다시 그 질문을 한다면 대답할 자신이 없다. 아직까지는 형체를 유지하고 있긴 하지만 난 언제 바스러질지 모르는 녹슨 조각과 같다.

그녀의 한숨 한번이면 난 내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마저도 포기할지 모른다. 입으로는 머리로는 수없이 그럴리가 없다 되뇌이지만 가슴 속에서는 아니 의식 깊은 곳에서는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느끼고 있으니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거리는 1미터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사람을 1미터 밖에서 바라보고 있을 때 가장 큰 만족감이 나를 감싼다. 상대에게 의표를 찔리지 않을 거리가 바로 1미터라는 인식 때문이지.

아니 오늘은 전부 써야 할 것 같아. 지금이 얼마나 위험한 순간인지 스스로 위험한 곡예를 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음에도 난 오늘도 곡예를 한다. 사람들이 곡예를 보는 이유는 곡예사의 화려한 기예를 보기 위함이 아니라 곡예사가 떨어질 날을 기다리기 때문이라 한다.

어쩌면 내 삶 역시 그럴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가 펼치는 기예가 마르고 거짓이 공개되는 날을 기다리는 지도 모르겠다. 표정하나까지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바라볼 수 있는 거리가 바로 1미터이다. 난 1미터가 좋지만, 아니 1미터를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내가 그녀의 1미터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눈을 보고,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 행복할 수 있다고 믿었었는데 난 거짓말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더 많은 것을 원하고 소망한다. 때로는 그 소망이 너무나 강렬해서 스스로도 제어가 안되곤 한다. 그 대단한 인내심을 가진 나로서도, 지금까지 내가 겪은 수많은 사건들과 경험으로서도 나를 매어둘 수가 없다.

이런 순간이 내 삶에 찾아올 줄은 내 인생에 내려 앉으리라는 생각은 단 한순간도 해본적이 없는데. 갑자기 그녀가 괴로워 한다. 계속 오는 문자에 구겨진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사랑스러워 진다. 그녀는 알고 있을까? 1미터 밖에 앉은 내가 흉중에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아마도 평생 모를 것이기에 난 지금 위험한 곡예를 스스럼 없이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의 친구여. 삶에는 많은 순간들이 있다. 위기의 순간과 행복함의 순간, 기회의 순간과 미망에 함락 당하는 순간이 있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순간이 어떤 순간인지는 모르겠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고 싶은데 시간은 삶은 미래는 어느 것도 허락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세상이 밉고 내가 밉고 모든 것이 증오스럽게 느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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