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내려오는 길에

나의 원철군.

혹여 빈한한 삶을 살지 않을까 걱정하며 몇자 적는다. 그런데 몇자 적기 전에 먼저 고마워해야할 것 같군. 자네에게서 버닝한 시디가 지금의 내 마음을 못내 흡족하게 채워주고 있으니 말이야. 아무래도 센트럴 시티에 있는 바네소란 커피전문점을 꽤나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 것 같다네. 귀향하기 전 몇시간 동안 나의 친구가 되어주었던 그 자리를 말일세. 음. 갑자기 사과해야 할 것 같아. 나 방금 순간적으로 창밖을 보았다가 기분이 변했거든.그래서 방금 음악을 누센 도르마로 바꿨다네.

언제 이야기를 한적이 있던가? 내가 사진을 싫어하는 이유는 내 눈으로 보는 것보다 조금 밖에 담아낼 수 밖에 없는 한계점때문이라고. 방금 또 그 한계를 느꼈네. 아주 가늘게 떨어지는 몇방울의 빗방울이 떨어지는 모습을 포착하는 순간. 사람의 눈으로는 가능하지만 절대 사진으로는 불가능하다네. 왜냐면 기억 속에는 그 순간에 따른 많은 감정을 전부 몰아 기억할 수 있지만 사진에서는 해석이란 작업이 필요하거든.

고속버스에서 노트북으로 글쓰는 사람을 보는 것은 쉽지 않다네. 게다가 서울이 아닌 지방이라면 그 반응은 더욱 싸늘해지지. 게다가 지금처럼 전신을 제법 비싼 의류로 감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굉장한 반응을 얻게 되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내 손을 거두지 않는 것은 아마 지금 무언가를 쓰지 않는다면 미쳐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때문일꺼야.

바네소에서 커피를 마시며 많은 생각을 했다네. 내가 정말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변화하는 내 자신이라네. 우리가 말하는 그 바퀴벌레같은 적응력. 혹자는 강인하다 평하지만 결국은 살기 위한 치졸한 그 변화가 나에게 찾아올 것 같아서란 말이지. 변화하는 자신을 보는 것 두렵지 않은가?

난 정말 두려워. 오늘의 기분, 추억, 가끔 기분좋게 펴보겠지만 정말 맹렬하게 살아가겠지. 나에게 주어진 자유 시간만큼은 유용하게 사용하는 나이니까 말일세. 난 그것이 싫어. 수틀리면, 뒤돌아서면, 끝없이 후회하면서도 결코 번복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싫고 항평생 그럴 것 같아서 슬프기만 하다네.

비온 뒤 개인 하늘을 장식하는 빛무리를 보았네. 무지개를 보았다는 말이지. 휴식을 취하기 위해 오는 집과 살기 위해서 내려온 집은 느낌부터가 달랐네. 뭐라고 해야할까? 평소같아서는 현관문을 들어서는 나에게 누이들이 던지는 첫번째 질문이 ‘너 언제 올라가냐?’였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런 질문을 던지지는 않더구나.

몸은 피곤한데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문득 이번에는 주말이 지나 월요일이 되어도 더 이상 설레임을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어서야. 더욱 잠이 오지 않더구나. 밤새 불행에 뒤척이다가 새벽녘에나 잠에 정신을 맡겼다. 인생이란 재미난 것이야. 밤새 잠들지 못했으면서도 아침이면 또 다시 일상을 살아갈 수 있으니까. 삶에서 맛보는 감정이나 고뇌따위는 언제든지 일상에 묻힐 수 있는 값싼 것이 되는 것. 이런 이유에서 아침이 슬퍼진다.
Modified 2005.2.8
일년 반이 흘렀다. 자유 시간을 제대로 활용한다는 말만큼은 장담한대로 성실하게 지켜나가고 있다. 일년 반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일들을 했는지. 얼마나 잘 적응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변화하는 내 자신이 더 이상 두렵지 않다.

변화를 두려워 하는 것도 비겁한 짓이다. 가슴을 울리는 감정과 고뇌를 다 잊는 것도 변화 앞에서는 하나도 비겁하지 않다. 비록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슬픈 마음이 도사리고 있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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