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함에 중독되다.

오랜만에 가져보는 휴가다. 시간과 정신을 구속하는 어떤 의무도 약속도 없이 한없이 자유로운 휴가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휴가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휴가를 즐기고 있는 이 몸의 정신 상태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번잡함을 증오한다는 나의 말은 빈말이었음이 틀림없다. 구속이 싫다는 나의 말 역시 허위였음이 틀림없다. 지금 나에게는 할 일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무언가 커다란 보상이 뒤따르는 먹음직한 할 일을 간절하게 간구한다.

무엇을 선물해야 즐거운 마음으로, 뿌듯한 마음으로 하루를 살 수 있을까?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알듯 모를듯, 거센 시간의 흐름 속에 멈춰버린듯한 머리는 최적화된 정답을 추론해 내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어리석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나란 인간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깔끔하다’라고 불리는 행동에 대하여 충분하게 잘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에는 여전히 미련이 남아있고, 미련이 많기에 행동은 더없이 미련스럽다.

현재의 나를 진단해보면 의지 빈약, 감정 과다, 기억의 혼란, 이성 상실로 요약된다. 어느 것 하나 멀쩡한 것이 없다. 평온해보이는 표정과 다르게, 나른한 목소리와는 다르게 내 안의 알맹이는 불안해하고 있다.

작은 골목길 하나까지 외우고 있다 믿었던 이 도시마저 너무 낯설다. 머리속에 남은 기억과는 너무 다른 거리와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존재하는 거리와 사람이 아니라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세계를 보고 있는 것 같다. 그것도 가장 우울한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것으로.

하지만 지금의 난 돌아갈 곳이 없다. 이곳마저 내가 있을 장소가 아니라면 그 어느곳도 내가 있을 장소가 아닌 그런 상태가 되어 버렸다. 조금은 자책해 본다. 조금 다른 삶을 살 걸 그랬나? 후회 같은 것은 정신력의 낭비라고 지금껏 생각해왔건만 난 지금 그런 낭비를 유효 소비인양 착각해본다.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다. 푸세처럼 움직일수 있으리라 믿었는데 한주가 지나지 않아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새로운 것들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는다. 그것이 유일한 해법이라는 것도. 하지만 내 마음을 채워줄 만한 새로운것들을 발견하기란 힘든 일이다. 설령 발견했다 하더라도 인정하는 것은 배는 힘든 일이고.

냉정하게 현재의 내 심리를 분석해보자면 난 지금 허무하다, 또는 공허감을 즐기고있다 말하지만 그 허무감과 공허감을 실제화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허무와 공허를 실제화시키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난 또 말장난을 하고, 스스로가 만든 상황 속에서 모노드라마를 연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1 thought on “우울함에 중독되다.”

  1. 기쁨과 슬픔이 항상 우리들 곁에 존재하는 것처럼 우울 또한 언제나 우리의 곁에 있다.

    나는 이따금 그 속에 빠져 든다. 그것은 매년 이맘때 즈음 황사와 함께 찾아왔다가 봄꽃이 하나둘 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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