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임에 빠져들다.

오랜만에 설레임을 느끼고 있다. 보름 가까이 멈춰져 있던 시선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열흘 가까이 숨죽이고 있던 호흠이 되살아 나고 있다. 생명이 빠져나갈듯한 육체에 우연히 찾아온 온기처럼, 성분 미상의 따뜻함이 나를 웃음짓게 만든다.

하지만 지금 내가 느끼는 설레임은 조금 독특한 구석이 있다. 뭐라고 해야할까? 설레기는 하지만 가슴은 담담하다고 해야할까? 기대감과 익숙한 웃음에 행복해질 자신을 상상하면서 설레임을 느끼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차분하기만 하다.

사실 며칠전의 나였다면 이런 설레임 대신 불안과 괴로움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난 스스로가 규정한 테두리 하나를 벗겨낸 듯 싶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은근슬쩍 뒤로 물러나버릴 느낌 상의 인식이지만…

친구를 만났다. 익숙한 거리를 거닐었다. 그리고 그속에서 완벽하게 잃어버렸다 생각했던 많은 것들을 되찾아 냈다. 너무나 바쁜 삶에, 새로운 만남에, 아무도 흥미를 가져주지 않는다 믿었기에 머리속에서 잊어버렸던 많은 기억들을 되찾을 수 있었다.

사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전혀 의미가 없는 사람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의미를 가지는 사람이 나였다는 사실을 왜 난 모르고 지냈던 걸까? 알았다면 조금 더 나은 내가 되었을 텐데.

오랫동안 스스로를 회색 인간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난 한순간도 회색 인간이었던 적이 없었다. 누군가가 번잡한 삶 속에서 고개를 돌렸을 때 지켜보고 싶은 사람으로 나를 지목했다면 내가 회색 인간이 될 수 있을까?

며칠전 도서관에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서가의 주제와 어울리지 않는 책 한권을 발견했다. 몇년 전 햇볕을 피해 책을 읽다가 나답지 않은 귀찮음에 딴 자리에 그냥 꽃아두었던 책. 한눈에 보기에도 이질적인 제목의 책이었지만 이제는 그 자리가 녀석의 자리가 되어버렸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주제지만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어느 게으른 사서는 그 자리의 소유권을 녀석에게 선물한 모양이다. 자연 과학 서가에 꼽힌 헤로도토스의 역사라. 18살 어느 여름에 한 실수를 23살 여름에 다시 발견하는 기쁨이란 말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어렵기만 하다.

사실 지금 내가 느끼는 설레임은 자네 때문인 것 같아. 내일 자네를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설레인다네. 하지만 만약 자네를 볼 수 없다고 해서, 무언가 어긋난다고해서 지금의 설레임은 사그러들지는 않을 것 같아.

예전에는 항상 그곳에 내가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런 생각이 없어졌어. 자네들 옆에서 내 존재 의의를 찾지못하더라도 내가 회색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였거든. 이곳에서 난 나를 기억해주는 많은 것들을 발견했다네. 아마 더이상 억지부리지 않을 것 같다네. 여전히 설레임을 느끼고 행복하겠지만 말이야.

정말 보고싶다네. 뭐 본다고 달라지는 것이 있다거나, 보지 않는다고 달라지는 것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를 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설레일 수 있는 것이 인간의 마음 아니겠나?

자네는 언제쯤에야 이것을 읽게 될까? 어쩌면 평생 모를지도 모르겠군. 그편이 휠씬 나을거란 생각도 든다네. 이런 글, 이런 언급, 자네가 싫어한다는 것 너무 잘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나만의 공간이니 너무 걱정하진 말아주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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