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품고 살았으면…

시원한 바람이 모시 이불사이로 들어온다. 폭풍우의 속성을 포함한 바람이건만 강렬하기보다는 시원스럽기만 하다. 한여름 소나기와 함께 찾아오는 이런 바람이 부드럽게 느껴지는 것은 아직 젊기 때문이리라.

펜을 들었다. 편지를 써볼까하는 의도에서 들은 펜은 의도와는 다르게 움직인다. 어차피 받는 이들의 주소를 모두 잊어버렸기에 의도대로 움직인다 하여도 별반 다를 것이 없겠지만… 가방 속에 조용히 숨어있던 엽서와 펜은 어느 사이에 조용히 서랍장으로 이주해 버렸다.

하루가 흐르고 또 하루가 흐른다. 내일을 기다리며 오늘을 살아가는 일상에는 변화의 기미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이런 일상이 익숙해지고 있는 것 같다. 마음 좋아보이는 표정과 나른함을 즐기는 노인처럼 움직이는 팔다리를 보고 있노라면 이런 추측은 확신으로 변해버린다.

꿈을 꾸다 보면 낯선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희미한 기억을 토대로 추정해 보기에는 너무 얇은 그림자이기에 그냥 지켜보기만 한다. 그마저도 오래지 않아 호기심이 스스르 사라져 버린다.

어린 시절 자주 놀러갔던 부산이 떠오른다. 지하철과 지하철 역을 감싸고 있던 작은 천변이 떠오른다. 이 기억은 총천연한 칼라로 떠오르는데 불과 몇달 전의 기억은 잿빛으로 기억난다.

사람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거리와 이름모를 장소들은 회색의 지배아래 있다. 햇볕이 보이지 않는다. 빛이 보이지 않는다. 빛이 없으니 색이 존재할리가 없다.

바람이 다시분다. 바람을 품고 살았으면 좋겠다. 희미한 기억이랑, 추억조차 되지 못할 잿빛의 어둠은 바람에 실어 보내고 머리속을 깔끔하게 비웠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곳을 한없이 자유롭고 시원한 바람으로 채웠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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