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함, 지겨움, 따분함이 순환한다

느긋하게 애프리콧 실론을 마신다. 찻잎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고민없이 마시는 홍차는 더할나위 없이 향그럽다. 인퓨저를 한번에 통과하는 찻물이야 말로 가장 맛좋은 법인데 이 경우 홍차 특유의 씁쓸한 맛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단점은 있다. 홍차를 낭비한다는 죄책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값비싼 수입 홍차를 제대로 우려내지 않았다는 사실은 음식 투정을 부린 것 마냥, 음식을 버린 것 마냥 괴로운 일이다.

미신에 좌우되는 성격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 강제로 주입받은 미신 두가지가 있다. 막내 누이가 이 미신의 제작자이자 주입자인데 하나는 의자에 관련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음식을 남기는 것에 관련된 것이다.

첫째는 의자를 책상 깊숙히 넣어놓지 않으면 집안을 떠도는 귀신의 그 의자에 앉아 잠든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미신이다. 잠자리가 뒤숭숭해지는 것은 딱 질색인 까닭으로 의자를 얌전하게 정리하기 시작했는데 23이 되어버린 오늘까지도 빈 의자를 바라볼 때면 그 자리에 앉아있을 이름 모를 혼령에게 인사를 건네곤 한다.

다른 하나는 나중에 죽어서 심판을 받기 전에 지상에서 자신이 낭비하거나 버린 음식을 전부 다 먹어치워야한다는 미신인데 무신론자가 되어버린 오늘에 와서도 음식을 남기기 전에는 죽어서 차갑게 식어버리고 다른 음식과 너저분하게 섞인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상상하고 나면 배가 미어지는 한이 있어도 접시를 깔끔하게 비우곤 한다.

문장이 늘어진다. 길어진다. 애프리콧 실론은 벌써 전부 마셔버렸다. 바람이 조금 불어줬으면 좋겠다. 간만에 머리도 자르고, 주민 등록도 옮겨야 하는데 귀찮기만 하다.

이번 여름에는 들을만한 음악이 없다. 휴대폰을 열어보니 전부 내가 스스로에게 보낸 메세지들 뿐이다. 언제부터인가 펜으로 쓰는 메모대신에 휴대폰이나 노트북으로 하는 메모를 진정한 메모로 인식하기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 휴대폰 속은 읽고 싶어하는 책들에 대한 메모로 가득 차 있다.

7시간 동안 서점을 돌아다니면서 고르고 고른 책들인 까닭으로 작고 좁기만 이 도시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가 없다. 전부 사버리기에는 내가 빈한하고, 빌려보기에는 도서관이 빈한하다.

음악도 그렇다. 옛날에 열중했던 아티스트들이 이제는 낡아버렸다. 전혀 신선하지도 그렇다고 감동을 주지도 않는다. 입을 즐겁게 해주는 홍차와 커피가 있긴 하지만 귀가 즐겁지 않으니 따분하다. 구매의사만은 충분한데 구매 욕구를 일으키는 음악이 없으니 이를 어쩔까?

이번 여름은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누군가 나에게 흥미를, 식어버린 열정을 되돌려 주었으면 고맙겠다. 그런 누군가가 존재한다면 아낌없이 내 피를 건넬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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