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원철군에게

Getz와 Gillberto의 음악을 듣고 있다네. 자네 덕분에 접한 것인데 최근 들어서는 내가 몰두하는 음반이 되어 버렸다네. 하루 종일 들어도 질리지가 않아. 벌써 집에 내려온지도 한달이 다되어 간다네. 한달이란 시간동안 나에게는 무슨 일이 생겼을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아무일도 생기지 않았다네.

갑자기 기억이란 마물이 작동하기 시작했다네 .예전에 perfect guy란 영화를 본 기억이 있는데 아마 AIDS에 걸린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된 여자 주인공의 테마가 이것이었던 것 같아.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요즘의 나는 모든 기억이 이렇다네. 대충은 잡아내는데 정확하게 이렇다 확언할 수 없는 것들 뿐이라네. 아무튼 갑자기 이 영화가 다시 보고 싶어지는 참이라네.여주인공의 미모도 미모였지만 흥행과도 작품성과도 거리가 먼 이 이야기에서 무엇인가를 찾아내고 싶어지거든.

근래들어 자주 꿈을 꾼다네. 그런데 꿈 속의 그 사람이 누군지는 알겠는데 얼굴은 생각나지 않는다네. 꿈 속에서 모든 의지를 모아 얼굴을 보려해도 항상 보이질 않아. 아주 조금은 운명이 과하다 생각된다네. 오늘도 책을 읽으며 이런 저런 기억을 짜내어 보았는데 정말로 생각이 나지 않아. 기억이 없는 삶이란, 추억이 없는 삶이란 빈한한 삶인데 내 삶은 조금씩 빈한한 삶에 가까워지고 있어.

하지만 방법따위는 없다네. 해법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네. 그저 하루가 지날수록 완숙미를 더해가는 홍차 만드는 실력에서 즐거움을 찾아야지. 내일부터는 산책을 다시 즐겨볼까 생각중이라네. 길을 걷고 있노라면 생각의 홍수때문에 힘들어질까봐 산책을 멀리했는데 이제는 그럴 까닭도 필요도 인정하지 않기로 했어.

길을 걸으며 현재의 삶에 취해볼래. 길고 긴 삶에서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휴식 시간을 안타까움과 저릿한 고뇌 속에서 보낼 수는 없잖는가?

나의 원철군. 그런데 말이야. 스스로를 보고 있노라면 헛웃음이 나온다네. 정신적인 영역이 있어서는 스스로를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 있다고 믿어왔는데 아니었나봐. 냉혹함이 무엇인지 아는 내가. 이렇게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으니 말이야.

이런 공허함, 이런 허무감. 정말 처음이야. 자네가 나를 보아온 지년 2년 반동안 언제 내가 이런 모습을 보인 적이 있던가? 그런데 지금의 나로서는 이런 모습 밖에 보여주지 못할 정도로 모든 의지가 몸에서 빠져나갔다네.

누구보다도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이야. 은둔자가 되어. 모든 고리에서 벗어나 잠시동안 스스로를 관조하는 자가 되어볼까봐. 지금의 이런 모습 전혀 나다운 것이 아니잖나. 나다워 지기 위해서는 완벽한 혼자가 되어야 할 것 같아. 그럼 더운 여름 건강하길 기원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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