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고민의 결론이란…

여름이 끝나간다. 그리 길지 않은 삶가운데 가장 편안하고 기분좋게 보낸 여름이었다는 사실은 분명한데 이상하게도 아쉽지는 않다. 아니 마냥 편한 기분으로 늘어져 있었기에 이제는 적당한 긴장이 필요하다고 생각될 정도이다. 세상과 담을 쌓고 나만의 공간에 숨어있는 은자의 삶도 조금씩 지겨워진다.

노트북의 PMU에 이상이 생겼다. 결국은 OS자체를 새로 인스톨했는데 세팅을 조정하고 데이터를 옮기는 과정에서 예상 외의 고민에 빠져들었다. 지금의 나에게는 전혀 소중하지 않지만 과거의 나에게는 무척이나 소중했을 기록과 데이터들을 남기느냐 버리느냐의 문제가 바로 그것이었다.

물론 도큐멘트로 분류하고 기호를 부여한 것들의 경우에는 살린다는 것이 기본 원칙이었지만 메일과 메모, vCard와 메신저 대화록까지 옮기는 문제에 있어서는 결정을 내리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일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지만 가끔은 그런 사소한 것들조차 마음의 짐이 되어버리는 것이 현실이니까.

만약에 그것들은 살린다면 아주 가끔은 과거의 나로 돌아가 그 속에서 잠시동안 활력과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잠시 동안이 조금씩 늘어가면서 다시 병들고 연약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내가 다시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을까?

늦은밤 가장 조용하고 느긋한 세 시간을 이 문제에 쏟아부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결론을 내릴 필요가 없는 문제 성질의 문제라는 것을 시간을 낭비하고서야 알았다. 과거의 나의 것임에는 분명하지만 현재의 나에게는 그것들에 대한 어떤 권리도 명분도 없다. 아무런 애정도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현재의 나에게 권리 역시 주어지지 않는 법이니까 말이다.

나에게 속하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내가 고민할 필요는 없다. 고민 따위는 과거의 나에게 하라고 미루어 버리고 난 즐겁고 의욕적인 삶을 살아주면 그만인 것을. 때로는 한 몸에 하나의 정신을 공유하고 있는 하나의 인격에도 시간에 다른 권리를 가질 수 있다는 객적은 표현에 공감이 가는 하루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