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싶네요

보고싶네요’

MSN 메신저의 닉네임을 이런 것으로 바꿔놓고나면 한동안은 질문 공세에 시달리는 것이 보통이다.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의혹은 들불처럼 번져나간다. 하지만 때로는 사람이 아니라 바다가, 어느 거리가 보고 싶기도 한 법이다.

내 방에서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풍경은 황량한 아파트 건물들과 지평선 끝에서나 겨우 얼굴을 들이미는 산자락이다. 하지만 비오는 날이면 유리창을 통해 바다가 보인다. 구름이 파도처럼 물결 무늬를 그리면 거센 바람과 시원한 비를 동반하는 날이면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바다가 보인다.

이런 날이면 술이 고파지기도 한다. 시원한 우디스 한 병이나 헤네시 한 잔이 마시고 싶은 기분이 드는 날이면 어김없이 바다가 보인다. 하지만 바다란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상징이다. 바다와 마주친 인간은 필연적으로 파멸하고야 만다.

그것도 혼자가 되어가는 벌과 함께. 실제 바다가 보이지 않는 이런 도시에서도 사람은 언제 어디서 로빈슨 크루소가 될지 모르는 운명을 가지고 살아간다. 바다는 넓은 대양에서나 좁은 육지에서나 인간의 운명을 농락하는 거센 격량이 품고 있기에…

보고싶은 거리가 있다. 다시 걷고 싶은 거리가 있다. 마음만 먹는다면 그 거리를 걷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은 아니다. 아직까지 난 자유로운 몸이고. 그 거리를 산책할만큼의 넉넉함은 사치가 아닌 일상이니까. 하지만 내일 당장 그 거리를 걷는다고 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그 느낌을 되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그 거리는 우아한 느낌이 드는 거리도 아니고 몇해 전 겨울 내가 즐겨 산책했던 천변의 거친 매력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경기전과 전동 성당을 연결하는 고전미와 고딕풍이 결합된 이상한 단아함 같은 것은 눈씻고 찾아볼래야 찾을 수 없는 흔하고 흔한 거리일 따름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난 그 거리를 다시 걷고 싶다. 막연한 느낌의 문제지만 그 길을 걸으면서 내가 했던 수많은 생각들과 설레임이 주는 만족감을 그리워하는 나를 종종 발견하곤 하기때문이다. 그 길을 걷고 있노라면 무척이나 행복했었는데 지금 내가 누리는 행복에 비견될만큼 행복했었는데 이제는 그 거리를 걸을 수 없다.

설령 내일 내가 그 길을 걷더라고 그 길은 이미 과거의 그 길이 아니다. 공간은 그대로 있는 법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사람이 변하고, 공간을 둘러싼 배경도 변하는 법이다. 어제 본 강물과 오늘 본 강물이 다르듯 내일 내가 걸을 그 거리는 내가 걸었던 거리와는 다르다.

하지만 너무 심란해지지는 말아야겠다. 한 사람의 로빈슨 크루소가 되어 무인도와 바다를 벗삼아 살아가더라도 그 거리의 존재 자체만 희석되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비록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부정당할 존재라 하더라도 나에게 좋은 것이면 좋은 것이다.

금요일에는 소포를 두 개 보냈다. 기쁜 마음과 설레임으로 보내야 정상일 소포와 편지일텐데. 우체국을 나서는 순간 내가 느낀 것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다는 청량감이었다. 어떤 의무를 이행하고 나서 느끼는 가벼움이라고 해야할까? 반응에 대한 기대감과 가슴조마한 설레임이 있어야 할 곳에 그것들이 사라졌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기대를 하지 않으면 최소한 아프지는 않을거라고 지레짐작한 이성이 그렇게 느끼도록 감성을 꼬드긴 것일지도. 담담함이야말로 최고의 미덕이라는 빌어먹을 격언에 심취한 이성이 하나의 허구를 현실화 시켜버린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장 진실에 가까운 추리는 그 눈에 맺힌 내 상이 어떤 모습일지 대충이나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끊임없이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존재다. 가야할 길을 보고, 지나온 길을 되돌아 보고 , 옆에 걷고 있는 사람을 확인하고, 그런 두리번거림을 통해서 자신의 실존을 확인한다. 나 역시 이런 두리번에서 한치도 자유롭지 못하다. 나 역시 길을 두리번거리는 것처럼 그 눈에 맺힌 상을 두리번 거리고 스스로의 실존을 확인한다.

하지만 그 눈에 맺힌 상이 아무것도 없다면, 내가 알고 있는 나와 전혀 다른 존재라면, 혹시 내가 알고 있는 내 존재가 잘못되었다면 나에게는 무엇이 남을까?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경우가 차라리 행운에 가깝다고, 남는 것은 지독한 회한과 파멸에 가까운 운명뿐이라고 말하기에는 난 너무 젊고 나 자신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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