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잡기적 혹은 수다스러운

짧은 은거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바깥 출입을 시작했다네. 여름이 흔적조차 사라지기전에 그 끝자락이나마 붙잡아보려는 얇은 수작일지도 모르겠네만 친구들을 만나다보면 날마다 새로운 재미가 있다네.

왜 그런 것 있지 않은가? 나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나를 기억하고 있는 친구들 덕분에 잃어버린 그림 맞추기의 한조각을 우연히 되찾는 기분. 시간이 묵은만큼 친밀함도 이해도 깊어지는 순간들을 경험하는 것.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큰 만족이라네.

결국은 월요일 오후에 ‘항해 지도’를 샀다네. 오늘밤 행복하고 나른한 표정으로 읽어줄 예정이지. 어머니와 누이들은 가끔 이렇게 한적한 지방에서의 삶이 지겹지 않냐고 조심스럽게 물으시지만 정말 하나도 지겹지 않아. 어떻게 지겨울 수가 있겠나? 오늘의 나는 아무런 경쟁도 하지 않아도 되고,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기분따라 읽을 거리를 골라잡을 수 있는데.

근래에는 프린트하는 버릇까지 생겼다네. 표면이 진주로 상각된 그 아름다운 편지지만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멋스러운 편지지를 구했거든. 다양한 서체와 글씨 크기를 시험하다보니 이제는 아예 맛이 들어버렸다네. 게다가 우체국이 집에서 300미터밖에 되지 않으니 내 제대로 지키지못한 약속 배로 갚아줄 수 있을 것 같아.

우체국을 오가다보니 E-Mail이 편하기는 하지만 손맛이 떨어진다는 인정하기 시작했어. 뭐랄까? 우표를 붙이고 주소를 옮겨적는 과정이 귀찮기는 하지만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더군. 어린 시절 왜 내가 이어주고 받는 편지에 열광했는지 다시 그 느낌을 새록새록 되새기고 있는 중이야.

참 그런데 원철군 서랍에 잠들어있던 휴대폰을 열어보니 7월달에 받은 문자가 아직까지 생존하고 있었다네. 다들 한량이 되어버린 까닭으로 연락은 메신저나 집전화로 주고 받았거든. 하긴 나역시 어머니가 챙겨나가라고 말을 해야 챙겨나가니…

자네도 느꼈겠지만 요즘 내 전화받는 패턴이 이상해진 것은 전부 메신저 탓이야. 자네 전화를 받고 있는데 두두둥하는 경고음대신 목소리가 들리면 너무 놀라서 딴 소리가 입으로 흘러나오거든. 이해해주게나.

나쁜 녀석들과 바람난 가족을 보았는데 두 편 모두 재고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실망스러웠어. 나쁜 녀석들의 경우는 폭력이 서툴렀고, 어떻게 보면 이유없이 잔인해지려고 노력하더구먼. 총알이 경동맥을 뚫고 지나가는 장면이 조금 짜릿하긴 했다는 사실은 인정하네. 자동차 추격신도 재미났고, 하지만 악역이 워낙 몰개성적이라. 오히려 잔인한척 구는 행동이 부담스러울 지경이었네.

바람난 가족의 경우는 여기저기에서 짜깁기해 놓은 부분이 보일 정도였어. 이런 저런 다른 영화에서 모티브를 가져다가 뒤섞은 정련되지 않은 스타일이었다네. 그리고 벨트 아래 문제에 과도하게 집중하다보니 정작 말하자고자 하는 코드가 불명료했다네.

이야기를 진행시켜나가는 논리적 인과 관계도 약했고, 필연성이 거세되고 우연에 지배받는 시나리오에 설득당할 사람이 과연 있기나 한 것일까하는 생각마저 들더군. 영화를 보면서 깊은 꿈나라로 이주한 혈기방정한 내 친구. 이 정도면 더이상 말이 필요없지 않을까? 야하지도, 시원하지도, 사색적이지도 않은 그런 그렇고 그런 가족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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