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Havre – Claude Monet

변덕스런 하루 하루의 날씨 틈에서 계절이 변화하는 미세한 차이를 인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접경에서 만큼은 이런 어려움은 조금은 누그러진다. 처서가 지나고 한번 두번 비가 내릴 때마다 여름내 뜨겁게 달궈진 대지는 조금씩 숨을 골라가고 이내 바람마저 싸늘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여름만큼은 이런 통례에서 벗어난 듯하다. 쉴새 없이 내리는 비를 보고 있노라면 가을이 찾아와 시원한 것인지 아니면 비때문에 시원한 것인지 여간 아리송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날씨처럼 아리송한 것이 하나 더 있다. 기억이 희미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마음만은 여전히 그 자리에 붙잡힌 어느 가련한 자의 삶이다. 거센 폭풍우 속에서 생환한 선원들이 항해에 관한 모든 지식을 잃어버리듯. 삭구며 여밈돛, 용골조차 모르는 내륙인이 되어버린 가련한 바다 사나이들처럼, 이 가련한 사내의 기억은 하루하루 옅어지고 있다.

바다를 잃어버린 바다 사나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잃어버린지 조차 모른채 이상한 병으로 죽어간다고 한다. 무언가 절실하게 염원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지만 희미한 기억으로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고향인 바다를 되찾지 못한채 마음병으로 죽어간 이 사나이들에게 세상이 던지는 위문은 폭풍에 넋이 나갔다던지, 아니면 오랜 바다 생활로 몸이 쇠약해졌다는지하는 산문적인 섦명뿐이다. 바다 사나이가 바다를 잃어버렸기에 죽었다는 설명을 찾기란 이름모를 선장의 낡은 항해노트에 기록된 이들의 서명만큼이나 버거운 일이다.

다시 기억이 희미해진 한 사내로 돌아가보자. 이 사내는 지금 모처럼 진지하게 자신의 속마음을 관찰해보고 싶어한다. 하지만 사내의 마음이란 정말 알 수 없는 것이다. 기억이 사라지는 것을 방관하던 때는 언제이고, 이제는 빈약한 기억력을 총동원해 혼자만의 상상 속에서 즐거워한다. 이 사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바다의 존재는 어떤 것일까?

기억이 존재하지 않아도 느낌만으로 행복해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이런 행복은 모래위에 지어친 성채처럼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험한 것이다. 이 사내를 잘아는 측근에 따르면 사내는 단지 바다에 대한 기억만을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떻게 성장했는지조차 잊어버린 것 같다고 한다. 사내에게 남은 것은 아주 먼 과거가 아니면 오늘뿐이다. 이 사내가 그토록 돌아가고 싶은 기억은 빗장이 걸린 두꺼운 창고 저편에 조용히 감춰져 있다.

하지만 여기에 문제가 있다. 그 사내는 두꺼운 빗장을 여는 방법을 모르고 있고 설령 그 방법을 찾아내더라도 창고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모른다는 사실이다. 때로는 자신의 것이지만 자신의 손으로는 만질 수도 찾을 수도 없는 것들이 존재하는 법이다. 사내의 잊어버린 기억처럼.

바다를 잃어버린 바다 사나이들처럼 사내는 진한 그리움에 힘겨워한다. 그의 표정이 평온한 것은 무엇을 그리워하는지 몰라서이다. 하지만 그리워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모름에도 그는 그 그리움에 힘겨워만 한다. 만약 이 사내가 그리워하는 대상을 알게된다면 사내의 평온한 표정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고통스러워할까? 아니면 멋쩍은 표정을 변할까?

사내는 가끔 뜻모를 이름 하나를 중얼거린다. 흐릿한 너무나도 흐릿한 하나의 이미지에 색을 덧입히려고 노력할수록 이미지는 점점 기괴하게 변해간다. 어쩌면 이것이 이 사내가 바다를 사랑하는 법인지도 모르겠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이지만. 이 사내는 그것이 사랑이라 굳건하게 믿고있다. 비록 사내에게 남은 것이 몇겹의 물감이 덧칠해져 이제는 스케치조차 사라져버린 낡은 캔버스라도 말이다.

2 thoughts on “LeHavre – Claude Monet”

  1. 거진 읽은 기억이 나는데 새롭다. 그러나 그림만큼은 익숙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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