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먼 외출 뒤에…

학교에 다녀왔네. 대략 한달 반만에 다녀온 학교인데 너무나 많은 것들이 변해 있었어. 외양은 물론이고 잠시동안 적응이 안될 정도로 사람이 많더구먼. 내가 살고 있는 이 작은 도시에서는 그 정도로 많은 사람이 번잡하게 다니는 모습을 찾기란 무척 어렵거든. 아무튼 신문사 형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네.

그런데 이곳의 맑은 공기에 적응되어 있다보니 서울의 공기가 참기 힘들 정도였어. 갑작스럽게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다리가 풀리는 현상을 경험했으니까 말이야. 게다가 집에서 너무 편하게 살다보니 돌아다니는 것조차 힘이 들었네.

서두는 늘 그렇듯이 이런 말로 시작했지만 정작하고 싶은 말은 다른 말이라네. 표현을 하자면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재즈와 헤네시 한 잔 그리고 자네가 무척이나 필요한 밤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야. 지난 20개월 동안 나의 절친한 벗인 자네의 빈자리가 항상 느껴졌지만 오늘만큼 컸던 적은 없었다네.

자네가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자네가 있었더라면 발걸음이 마냥 가볍고 행복했을텐데. 자네의 옆자리에서 수업을 듣고, 수업이 지겨우면 서점으로, 극장으로, 재밌는 전시회를 찾아갈 수 있을텐데. 그렇지 못해 아쉬웠네. 익숙하긴 하지만 발걸음을 쉴 때가 없다보니 배는 힘들었던 것 같아.

그리고 조금은 내가 한심했어. 나답지 않게 학교에다가는 나만의 쉼터를 만들어 놓지 않았더라고. 일을 피해 자네와 곧잘 숨어들었던 벤치에도 가보았지만 자네가 없으니 더욱 쓸쓸해 보였네. 요컨데 더 이상 내가 있을 곳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말이네.

여름이 끝나자 나의 절친한 모든 이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네. 강한 척하지 않아도, 아니 이성과 감성 모두가 무너졌을 때조차 편한 쉼터가 될 수 있는 자네들 모두를 지난 학기, 이번 여름 너무 등한시 했던 것 같아. 물론 나에게도 변명은 있다네. 하지만 내가 변명을 하지 않아도, 그런 사소한 말 따위는 없어도 나를 위해 하룻밤쯤은 잠을 내던질 수 있는 자네들에게 무슨 말이 필요할까?

사실 난 잘 몰랐던 싶네. 자네들이 나를 찾는 느낌을, 그리고 내가 제자리에 있음으로서 자네들이 느끼는 안도감을 난 몰랐던 듯 싶네. 반갑게 맞아줄 사람이 있다는 것. 말을 건넬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것. 낯선 타인들에게 둘러쌓여 혼자라고 느낄 때 무언가 하소연할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난 왜 이제야 알았을까? 조금 빨리 알았더라면 이런 모습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을 텐데. 은둔을 자처하면서 스스로의 내부에 숨어버린 이런 비겁함은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을텐데.

집에 내려오는 버스 속에서 생각했네. 이제는 정말 행운의 여신에게서 버림받은 것이 틀림없다고. 행운의 여신은 절대 두번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속설이 너무나 평범한 진실이라는 것을 알게됐어. 진작에 알았더라면, 아니 너무나 평범해 보이는 말이라 머리속에서 흘러버린 내가 원망스럽네.

행운은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아끼고, 깊게 생각해서 써야만 하는 빈약한 저수지라는 사실을 왜 난 몰랐을까? 어린 시절, 계속되는 행운을 단 한번도 의심해보지 않고 다음에는 더 큰 행운이 찾아올 것이라 건방을 떨었는지. 나이가 들은 나에게 남은 것이라곤 오직 한심함뿐이군.

나의 원철군. 이제야말로 녹초가 되어버린 듯 싶다네. 솜뭉치마냥 무거운 몸과 엉클어진 정신이 나에게 남은 유일한 것들이네. 휴식이 필요해. 하지만 은둔이 필요한 것은 아니야. 깊은 잠이 필요하다네. 며칠쯤 꿈과 생각, 기억의 방해없이 잠들었으면 좋겠네. 그런 잠을 자고나면 다시 일어나 움직일 수 있는 활력이 생길테니까.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한 휴식이라네. 무언가 다시 시작하려면, 아무런 아쉬움없이 새로운 나로 일어서려면 조금쯤은 행운을 모아놓아야겠지. 행운을 모으는 가장 큰 방법이 무엇인줄은 모르네. 불행은 실컷 경험했으니 행운을 낭비하지만 않는다면 모을 수 있지 않을까? 깊은 잠에 빠져있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놓쳐버리는 행운을 잡아놓을 수 있지 않을까?

그토록 강인하던 무기를 든 그의 팔도 거대한 불행 앞에서는 어린 아이의 여린 주먹만큼이나 쓸모가 없었다라는 말이 있다네. 나 역시 그 남자의 느낌을 그대로 느끼고 있어. 이제는 나도 넉다운이야. 운명에, 인생에, 삶에 져버린 것 같다네. 이로써 내 삶에는 2번째 패배가 기록되는군. 한번만 더 져버린다면 난 아웃이고 영원한 패배자가 되어버리고 말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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