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볼 수 없는 것처럼 숙명 역시 보이지 않는다.

Everyone says I Love you의 사운드 트랙을 듣고 있다. 데스크탑 한쪽에는 2001년 초겨울에 원철군과 함께 찍은 사진이 보이고 책상에는 준호, 기청군과 어제 찍은 사진이 보인다. 사진을 보고있자니 까닭모를 슬픔이 병처럼 심장을 갉아먹는다.

두 사진을 같이 보고 있자니 정지해 있으리라 믿었던 시간의 흐름이 나를 지나쳐갔음을 깨닫게 된다. 꽤 오랜 시간동안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났다고 믿어왔는데, 두 사진 속의 나를 비교해보자니 옛사진 속의 내가 낯설게 느껴진다.

그늘없는 웃음을 머금고 있는 과거의 나와 웃고는 있지만 이마에 얇게 패인 주름처럼 어두워보이는 웃음을 짓고 있는 현재의 내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기때문이다. 강한 플래쉬로도 사라지지 않은 저 주름은 어찌하여 생겨난 것일까? 혼자있는 시간이면 깊은 외로움과 허전함에 마음 둘 곳 모르는 난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해마다 사진 한장 남기자는 약속을 했다. 좀처럼 사진 찍기를 싫어하는 나이다보니 공유하는 시간과 추억에 비해 물리적으로 남겨진 것이 너무 적다. 아니 적은 정도가 아니라 찾아보기조차 힘들다. 왜 난 사진의 위력을 이렇게 등한시 했는지 모르겠다. 웃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우울함 따위는 고독함 따위는 바람에 실려가는 법인데.

작렬하는 태양에 숨막히는 거리를 걸으며 마음이 푸근해졌다. ‘이제는 한번 울 수 있겠지’하는 마음으로 눈가에 맺혔던 얇은 수막은 채 방울이 되지 못하고 사라졌다. 어쩌면 초가을이기에는 너무 강렬한 태양이 만들어낸 땀방울이 가려진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가끔 시간에 운명을 걸곤 한다. 마음 속에 정해진 어떤 마지노선에 행동의 두 방향을 결정해놓고 시간을 그 판관으로 삼는다. 감성과 이성, 과거와 현재가 격렬하게 충돌하는 그 순간에 나 스스로 결정을 내리기보다는 시간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오히려 최선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중도관에서 서성이던 30여분간의 짧은 시간에도 그랬다. 운명이 나의 편이라면, 행운이 다하지 않았다면, 만날 수 있으리라. 새롭게 시작된 많은 재미들은 주저없이 말할 수 있으리라. 어떤 경우에도 행복해 하리라. 담담한 설레임으로 나를 채우리라. 하지만 시간은 나에게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보다 더 나쁜 것은 내가 옵션을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차라리 옵션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허무하지는 않았을텐데. 왜 난 전례없는 옵션을 사용함으로써 나락에 한발 더 다가섰는지 모르겠다. 멀리 보이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왜 갑자기 웃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느끼기에도 기분좋은 웃음이었는데 아마 그것이 진짜 내 속 마음이었으리라.

하지만 내가 억지를 부려 사용한 옵션은 블랙 데이의 콜옵션같은 무의미한 것이었다. 혼돈이 나를 덮쳤고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정체성이나마 지키기 위해 난 바쁘게 도망쳐야 했다. 도망치는 자신을 지켜보던 또 다른 자신은 비웃음을 날렸다. 그것이 내가 살아온 인생이라고. 후회같은 것은 모르는 삶이라고? 어떤 경우에도 자기를 신뢰한다고. 네 판단의 값어치는 한마디, 단어4 개에 불과한 것이었군. 판단의 값어치란 인생의 무게를 뜻한다. 얄미운 또 다른 자아는 그렇게 나를 조롱하고 있었다.

술이 마시고 싶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심하게 떨리는 것은 입술이었다. 그렇게 걷고 싶었던 거리를 돌아볼 여유도 없이 난 내 마음을 추스리기 위해 익숙한 곳으로 도망쳐야 했다. 도망병의 등처럼 목숨을 취하기 쉬운 것은 없다는 격언따위는 머리속에서 지워진지 오래였다.

떨리던 입술은 가제보를 입에 대고서야 진정되기 시작했다. 따뜻하고 진한 커피향을 맡고나서야 혼돈은 그 기세를 잃었다. 하지만 나에게 남은 것은 이상한 혼잣말뿐이었다. 시간에 모든 것을 맡기고 있는 동안 내 머리속을 돌아다니던 상상은 에드몽 단테스가 이프성의 토굴에서 날짜를 세던 모습이었다. 혼돈에 가격당한 내 마음을 돌아다니던 상상은 미쳐버린 빌포르의 독백이었고 가제보와 함께 밀려온 환상은 브레이트의 전쟁 희곡의 한 장면이었다.

태양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태양의 형체를 자기 눈으로 온전하게 봤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사람의 눈이란 너무나 연약한 것이어서 태양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이다. 태양을 똑바로 보는 순간 눈에는 맹점이 생기면서 제 기능을 잃어버린다. 이런 까닭으로 태양이라는 제대로 된 진실을 마주하고 음미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누구나 태양의 진실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처럼 나를 덮친 혼돈의 뒷편에는 내가 바라볼 수 없는 진실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존재를 강렬하게 그러내지 않는 진실을 보지 않고 느낄 수는, 더욱이 그것을 믿을 수는 더더욱 없는 법이다.

인간이 태양을 볼 수 없는 것처럼 결코 보이지않는 잔실이 존재한다. 그런 진실은 운명을 왜곡시키는 법인데 지혜로운 사람들은 그런 진실를 숙명이라 부른다. 얼핏 존재감을 느낄 수는 있지만 잡을 수 없는 그 진실을 숙명이라 부르며 두려워 한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