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여인에게 온 편지’를 가장한 당신에게

보내주신 편지는 잘받아 보았습니다. 우선 타인의 삶에 넘치는 관심을 보여주신 당신의 인정에 찬사를 보냅니다. 익숙한 얼굴에게조차 깊은 관심을 두지않는 요즘의 세태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태를 따르는 것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처신법이 아닌가 싶습니다. 시대의 아이들로서 세태에 충실한 것이야말로 세상을 쉽게 살아가는 방법이지 않겠습니까?

당신의 편지를 읽으면서 받은 느낌은 ‘지금 이 사람이 나를 동정하고 있구나’란 생각이었습니다. 참으로 당황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당신의 눈부처에 비치는 내가 어떤 모습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동정이란 감정이 당신이 나에게 보낼 수 있는 적합한 감정인지를 따지기 전에 나를 이해할 수 있다는 문구가 더욱 신경에 거슬리더군요.

인사 한번 나누지 않은 사람을 이해한다는 말. 그것이 얼마나 오만한 말인지 아십니까? 물론 당신의 말대로 한번쯤은 잠시나마 스쳤을지도 모르고 같은 공기로 호흡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도 내에서 당신이란 존재는 스친 적도 없는 것 같습니다. 나보다 더 오만하고 거만한 사람이라면 기억하지 못할리가 없기 때문이죠.

당신이 무엇을 보고 나를 이해한다 말하는지는 대충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다정한 친구와의 대화와 먼훗날을 위해 만들어 놓은 작은 공간을 읽고 그렇게 말했으리라 추측됩니다. 어차피 공개된 공간이고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것이니 그것을 탓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것을 읽고 멋대로의 주관으로 이해해서는 허락받지 못한 타인의 간격안으로 파고드는 행동은 잘못된 것이라 판단됩니다.

처음 당신의 편지를 읽고 난 수신인이 잘못된 줄 알았습니다. 나에 관한 이야기같기는 한데 편지의 전반적인 느낌이 동정이었기 때문입니다. 동정이라는 단어와 나.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너무 이질적인 묶음이라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행간을 자세히 읽고 수신인이 내가 맞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을 때 나를 지배한 것은 당혹스러움과 분노가 뒤섞인 감정이었습니다.

내가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묵묵이 체념하는 많은 것들에 대하여 실제로는 단한번도 직면해보지 않았을 당신의 동정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도대체 당신이 나에 관해 무엇을 ‘알고 있다’, ‘이해하고 있다’ 자신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의 가족도, 친구도, 적도 아닌 완전 낯선 타인인 당신이 말입니다.

당신의 이름조차, 당신을 증명할 가장 작은 것조차 밝히지 않고 이런 무례를 저지르는 당신에게 한마디만 하고 싶습니다. 관찰이 하고 싶거든 조용히 자신의 본분을 지키면서 하십시오. 관찰자에게 행동은 허락되지 않는 특권입니다. 더욱이 내 친구가 아니라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나와 그 어떤 것도 공유할 명분도 끼닭도 없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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