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기청군에게서 편지를 받았다. 몇년동안 불러오던 엿기청군이란 호칭을 대신할 새로운 것을 모색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찾은 듯 싶다. 몇해 전 겨울이 떠오른다. 추운 겨울 기청군을 꼬셔서 학교 주변을 산책하던 일과 초코파이 하나에 한껏 기분좋은 웃음을 머금은 녀석의 얼굴. 내 어깨에 그 큰 머리를 기대고 자면서 ‘초코파이, 콜라’ 이렇게 중얼거리던 모습도 기억이 난다.

아무튼 기청군 편지 덕분에 흐릿하던 20살이 생각났다. 재수를 핑계로 음주와(당시 기청군의 표현에 의하자면 대학생인 자기보다 더 술집에 빠삭한 재수생이었다) 책에 한껏 빠져있던 시간이 떠오른 것이다. 대학에 들어간 이후 한번도 다시 찾은 적이 없는 도서관과 그곳에서 보던 전망이 떠올랐다.

책 한권을 다 읽고 외롭다는 느낌에 빠져들테면 기청군, 진수군. 뒤의 쉬는 시간에 맞춰 전화를 걸었던 일. 전화를 걸 때마다 잠에 빠져있던 준호군도 떠오른다. 너군 역시 MD를 벗삼아 잠에 빠져있기 일수였고 사기꾼은 그때에도 축구에 열광했고 처음 찾아온 사랑에 힘겨워했던 것 같다.

한이와 자주가던 술집도 생각난다. 데낄라 선라이즈와 섹스 온 더 비치, 블랙 러시안을 자주 마시던 웨스턴 바와 디아블로에 열광했던 일도 포켓볼 내기를 하던 일도. 이런 저런 일들이 떠오른다. 가끔 훌쩍 떠나던 여행도 생각난다. 기차 시간표를 외울 정도였으니. 섬진강을 따라 내려가던 여행도. 남도의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던 일도 어제 같은데 벌써 몇해전 일이란다.

가끔은 이런 저런 추억에 잠겨있는 것도 시간을 빠르게 보내는 좋은 방법가운데 하나같다. 어느 소설에서 읽었던 독백이 떠오른다. 로맹 가리였던가? 아무튼 현대 프랑스 작가로 기억되는데 소설 속의 한 노인의 입을 빌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젊었을 때는 기억을 소중한 재산으로 여기지 않아. 왜나면 젊기 때문에, 미래에는 더 멋진 삶과 기회가 다가올거라 믿기 때문이지. 하지만 그렇게 몇해가 지나고나면 제대로 음미하고 기억하지 못했던 젊은 날의 그 시간들이 실제로는 인생의 황금기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네.

그리고 이내 나처럼 힘없는 늙은이가 되어버리고 말지. 지금 내가 가장 갖고 싶은 것이 무엇인 줄 아는가? 지금 내 얼굴에 자리잡은 검버섯 하나 없었던 시절의 기억을 선물받고 싶다네. 지금은 기억하고 회상하고 싶어도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거든.’

오늘은 20살의 기억을 찾아 마실을 가야겠다. 오랜만에 건네는 술 한잔도 물리지 않고…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