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는 말이야

십대의 내가 가장 좋아하던 문구는 ‘젊은이에게나 노인에게나 사랑을 한결처럼 찾아오는 것’이란 문구였다. 그 시절 즐겨읽던 플루타크나 리비우스, 기번의 저작에는 나오지 않는 말이니 오늘의 나로서 출처를 기억해 내기란 요령부득이다. 하지만 저 문구를 입으로 읊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내가 하는 어떤 바보 짓도 사랑이라는 이름의 뒤에 잘 숨길 수 있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어제부터 시작된 맑은 날씨는 오늘에 이르러서는 절정에 이르렀다. 춥지도 덥지도, 습하지도, 건조하지도 않은 최적의 기후 속에서 다들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화창한 날씨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부드러운 바람살에 마음마저 여유로와졌는지 오가는 말들마다 아릿한 감수성을 한껏 자극한다.

영민군과 메신저를 통해서 대화를 나누었다. 영민군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잠시 생각은 몇년 전 어느 봄날로 되돌아간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던 어느 날. 기청군이 버스 속에서 ‘사쿠라다. 사쿠라다’ 외쳤던 날.

벚꽃이 예쁘지 않냐는 내 물음에 게임방에서 밤을 샌 준호군은 졸린 어조로 ‘벚꽃이 어디 피었는데’ 하고 반문했던 그 날이 생각난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면 아무런 꾸밈없어도 아름다워보인다는 영민군의 말도 생각난다. 그리고 ‘아무래도 나 바람 들어갔나봐’ 이렇게 말하던 녀석의 고통스럽던 표정도 기억난다.

하지만 근래의 우리는 봄바람보다는 가을 바람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봄이란 너무 바쁘고 번잡한 시기이기에, 더운 것을 싫어하는 우리이기에, 꽃이 예쁘게 피는 봄보다는 점점 서늘해져가는 가을이 좋은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올 여름에는 무척이나 길고 지루한 비가 내렸기에 가을에는 사랑으로 가슴을 채우고 싶은 모양이다.

하지만 해마다, 철마다 다짐 또 다짐해보지만 우리에게 느는 것은 고독에 익숙해져버리는 것 밖에 없는 것 같다. 복잡한 상황을 분석하는 것보다, 어려운 책을 읽는 것보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은 그 어떤 것에도 견줄 수 없을 정도로 어렵다. 내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사람에게서는 말이다.

가끔은 인생에는 오직 한번의 사랑만 찾아오기에 차라리 조금 늦게 찾아오는 사랑이 더 나은 사랑이 될지 모른다고 위로하는 나를 발견한다. 하지만 겉만 번지르한 이런 말로는 불안감을 사그라트릴 수 없다. 오히려 기름을 부어대는 격이다. 이윽고 우리는 초조함을 느끼고, 초조함은 시야를 좁게 만들어 버린다.

사랑은 오지 않아서 괴롭고, 또 찾아와서 괴로운 것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이유에서 사랑이라는 것이 늘상 괴로운 것이 되곤만다. 젊은이게나 늙은이게나 사랑은 한결같은 유혹으로 다가오지만 그 유혹에는 뿌리칠 수 없는 고통이 수반된다. 신이 우리를 사랑한다면 이제는 이런 괴로움의 고리를 벗겨내는 아량을 베풀만도 한데. 그 신은 남성이라 되려 우리의 고통을 즐기려고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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