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한 일상 속에서

무료한 하루다. 얇은 면이불이 주는 포근함에 취해 10시까지 잤다. 아침부터 시작된 편두통으로 책 한권 읽을 수 없었지만 길게 자랐던 수염을 깔끔하게 정리한 지금에 와서는 무언가 정리된 기분에 머리 속이 맑아졌다. 하지만 무료함만큼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무료하구나. 무료해.

디지털 폐인, 혹은 휴학생, 또는 동네 건달인 나로서는 친구들의 홈페이지를 둘러보는 것도 하루 일과에 포함된다. 어쩌겠는가? 말일이 가까워질테면 웬만한 잡지도 전부 읽었을 즈음이고, 요즘 나오는 분석 레포트들은 하나같이 재미없는 것들 뿐이니. 은둔하고 있다고 걱정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란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런 빌어먹을 상황과 악재 속에서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이다.

지선의 집에 들렸다가 희소 가치를 지닌 사진을 보았다. 사진의 픽셀이 너무 낮아서 기술적으로는 내 컬렉션에 추가할 수 없기에 포기했지만 머리속으로는 살짝 옮겨 놓았다. 기억이 희미해진 나로서는 제법 긴 시간동안 되찾기 위해 고민하던 것이었으니 보물을 만난 기분이다.

잠시 현재의 내 기억력에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내가 처음으로 기억하는 것은 5살 막내 누님의 친구분과 놀던 기억과, 그해 겨울 성당에서 이목구비가 매우 뚜렷한 왠 소녀를 쫓아다녔던 기억이다. 지금도 그 소녀의 얼굴은 머리속에 강렬하게 남아 있는데, 경험이 증가한 현재의 분석으로는 소녀이기에는 이목구비가 너무 뚜렷하고 표정이 살아있기에 다소 비정상적인 매력을 지닌 얼굴이란 결론이다. 어린 소녀이기에 의당 지녀야할 매력 대신에 20살 젊은 처자의 매력이 덧입혀진 그런 얼굴이다.

아무튼 그 최초의 기억부터 20살 때까지의 기억은 거의 대부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가끔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가까이 지내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성에 대해서라면 부정확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초희라는 장대하고 화려한 테마 앞에서 오늘날까지 형체를 온전하게 유지하고 있는 기억은 얼마되지 않는다.

책이나 영화, 그림에 대해서라면 내 기억력은 90점은 줄 수 있을 듯 싶다. 다른 부분은 몰라도 이 부분만큼은 한번도 내 의지를 거역한 적이 없는 가장 충실한 기억 인자로 이루어진 아끼는 기억물들이니까.

문제는 21살에서 오늘에 이르는 기억들이다.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했을 신문사의 일들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신문사에 쏟아부었던 시간은 여태 내가 공부에 쏟아부었던 시간의 총량보다 많을 것이다) 그리고 원철군이나 다른 몇몇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또렷한 영상이 아닌 문자화된 기억으로 존재한다.

가령 참사리길을 걷는 장면이 영화처럼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와 참사라길을 걸었다 하는 식의 문장으로만 기억이 난다. 앞쪽이 하이퍼 텍스트 형태의 기억이라면 후자는 RTF형태의 기억이다. 젠장맞을…. 젠장맞을….

블로그를 만들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책이나 그림에 대한 기억은 나이를 먹어서도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먼 훗날 이 그림들은 방아쇠로 작용해 복잡한 문장으로 기록된 20대 초반의 삶들을 웅변해줄 것이다. 먼 훗날, 젊은 시절의 나를 증명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지선양의 홈페이지에 들렸다가 디지털 폐인의 본성에 따라 엄은선씨의 홈페이지에 접근하게 되었다. 유디트라는 닉네임을 보는 순간 호기심의 게이지가 급격하게 상승했다. 머리속에서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유디트1와 유디트2가 흘러다닌다.

적장의 수급을 손에 든 요부의 이미지와 내가 보아왔던 은선씨의 이미지를 겹쳐본다. 한편으로는 르네상스기에 그려진 유디스의(유디트와 유디스를 구분하는 의도를 잘 생각해 보시기를… 여기에도 재미난 문화적 차이가 숨겨져 있으니…) 그림을 떠올려 본다. 재미난 일이다.

한편에서는 저 불쌍한 살로메와 같이 유디스 역시 19세기 20세기 호사가들에 의해 희생당한 이미지일지 모른다는 정보가 경보를 울린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역사란 그렇게 변용되고 덧칠당하고, 그 순수함을 잃어가는 숙명을 가진 것을…

하지만 오늘날에 이르러 유디트가 가지는 이미지는 은선씨와 유사한 것 같다. 요부라는 이미지가 아니라 그 단호한 표정과 표정 속에 감춰진 방황하고, 고민하는 자아 모두 비슷해 보인다. 어쩌면 진실과는 아예 벽을 쌓은 헛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어울린다는 느낌은 사라지지 않는다.

글에 있어서는 뭐랄까? 지금 그대로 5년만 더 늙는다면 평안하고 재미난 산문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문체론에서 분석하는 수사의 단계는 아직 일반 치환법의 단계다. 물론 이것도 나보다는 높은 단계지만…

소재 위주의 글쓰기 때문에 장문을 뽑아내기에는 버거워 보인다. 하지만 소재 안에서 보여주는 필치는 정확성과 꾸밈없음을 지향한다. 일견 복잡해 보이는 문장도 자세히 음미해보면 생각하는 바를 의도적으로 변형시킨 괴물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알몸인 문장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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