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잔에 비치는 마음이란…

아름다운 찻잔이 가지고 싶다. 이름난 유명 메이커는 아니더라도 나만을 위해 세상에 태어난 나만의 찻잔을 가지고 싶다. 보통의 사내들이 자동차에 열정을 가지는 것처럼 나역시 고가구와 예쁜 찻잔에 대한 기이한 열정을 가지고 있다. 아무도 모르는 내 취미지만 예쁜 도자기와 오래된 가구들을 구경하면서 손이 떨려오는 것은 분명 일종의 열병이다.

웨지우드에도 한정 생산품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예술품에 근접할 정도로 아름다운 찻잔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몸이 달아오른다. 미녀를 발견한 것처럼 동공이 심하게 흔들리고 눈가는 소유욕으로 번들거린다. 멋진 세공과 상각된 무늬를 보고 있노라면 어떤 보석보다 영롱해 보이기에…

‘조선에서는 막사발이었을지 몰라도 우리에게 조선 백자는 이상적인 절대미였습니다’란 말이 떠오른다. 예술적인 감상안을 소유하지 못한 나처럼 비천한 사람에게도 이른 새벽, 늦은 저녁 프러시안 블루의 하늘을 머금은 찻잔은 어떤 예술품보다 숭고해 보인다. 브러쉬드 메탈 바디나 오파크 화이트의 깔끔함에 익숙해진 현재의 내 눈에 비치는 찻잔의 색이란 사람의 손을 거부하지 않는 가장 인간적인 색이다.

하지만 예술품인 도자기와 일상용품인 찻잔에는 분명한 괴리가 존재한다. 예쁜 찻잔이란 비실용적인 경우가 많다. 너무 무겁고, 화려한 문양은 손 때에 희미해지고 만다. 게다가 내가 즐겨마시는 홍차는 찻잔의 최대 난적이다. 커피의 경우에는 에스프레소를 직접 찻잔에 옮겨 따라도 도자기에 찻물이 베는 경우가 드문데, 진짜 홍차는 몇달을 쓰지 않아도 찻물이 잔에 베어있기 일수다.

실제로 유리잔은 한달, 싸구려 일반 자기컵은 1달 반 정도가 한계다. 인퓨저에서 직접나오는 진한 찻물이 잔의 코팅을 뚫고 흡수되기 때문인데 인퓨저의 위치를 잘 설정하면 찻잔이 상하지 않는다는 소리도 있다. 하지만 좋은 인퓨저를 찾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나처럼 가난한 휴학생에게는….

현재 내가 애용하고 있는 찻잔은 사실 꽤나 고급 제품에 속한 제품이다. 하지만 이것마저도 홍차의 마수에서는 자유롭지 못한 듯 보인다. 아무리 세심하게 씻어줘도 조금씩 홍차 특유의 색이 느릿하게 베어간다. 하지만 내 손때가 진하게 묻은 찻잔이기에 무척이나 애착이 간다. 사실 손때대한 애착보다도 적당한 무게와 그립, 홍차잔이라기에는 깊지만 지금의 싸구려 인퓨저로도 어느 정도 맛을 보장해주는 디자인에 반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다시 사랑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면, 현재의 내 운명이 향하는 이끌림과 전혀 다른 이끌림을 다시 내 삶에서 발견하게 된다면, 그 사람 역시 찻잔 한 세트가 두 개의 찻잔으로 이루어진 것을 축복으로 여겼으면 좋겠다. 차를 나눌 수 있는 친구란, 애인이란, 생각만큼 쉽게 찾아오는 인연이 아니다. 술친구를 갖는 것보다 배는 어려운 것이 같이 차를 마셔줄 사람이기에.

사람의 입술이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때는, 사람의 손이 가장 아름다워 보일 때는, 찻잔을 입술에 대는 순간이고, 찻잔의 온기를 손바닥으로 느낄 때다. 게다가 찻물이 혀를 적시고 목으로 넘아갈 때 드러나는 표정의 만족감이란 보는 사람마저 여유롭고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적어도 지금의 내 경험으로는 그렇다. 그리고 앞으로 몇십년을 더 산다고해도 이것만큼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아무도 모르게 취해있던 미망이 바로 이것인데 난 차를 마시는 모습 자체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Posted in etc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