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정말 오랜만에 본다

오랜만에 가방을 챙겨 나갔다. 새로 산 Manhattan Portage briefcase를 어깨에 매고 항해지도(의외로 진도가 안나간다. 어쩌면 아껴 읽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와 iPod, 디지털 카메라, 휴대폰에 지갑까지 챙기고 빡빡하게 줄잡힌 면바지에 허리띠까지 맸다. 여기에 즐겨입는 파란색 폴로 스포츠 점퍼까지 걸치고 났더니 어디 먼곳으로 여행가는 기분이다.

나의 여행은 겨우 서실까지까지 오가는 왕복 4킬로미터의 여정이었지만 산책로를 골라내는 빈약한 재주가 있는 나로서는 결국 한동안 못보던 것을 찾아내고 말았다. 누이가 귀신이 나올 것 같다고 자주 언급하는 초등학교의 외관을 찍다 우연히 담아낸 허수아비, 얼마나 오랜만에 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익산과 전주를 오고가는 버스 속에서 보이는 넓은 들판에서 허수아비가 사라진 것은 오래전 일이다. 이런 까닭으로 허수아비에 대한 마지막 목격담은 98년 가을 소풍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종석군이 나못지 않은 노래 실력을 뽑내고 있을 때, 난 지겨움을 참지 못하고 차장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군. 미안하네). 마침 버스는 신호등에 걸리는 참이었고 지평선과 노랗게 익은 벼사이에서 한 무리의 허수아비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때는 몰랐을 것이다. 그 흔한 허수아비를 몇년만에야 다시 보고 이렇게 신기해할 줄은. 인생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다. 내일 보자라는 말을 남기고, 또 보자라는 말을 남기고, 평생을 다시 보지 못할 사람과 인연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내일 보자, 또 보자라는 말을 남기고 그것을 잊어버리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그렇게 잊혀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직까지 무딘 양심은 아니기에 마음의 무게가 늘어나는 것이 달갑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타인의 마음에 납덩이를 달아놓음으로써 그 마음 향하는 방향을 돌려놓고 싶은 것인지도,,,

6 thoughts on “허수아비- 정말 오랜만에 본다”

  1. 얼마전에 그 귀신나올 것 같은 학교에 가봤어.
    영화 [화산고]에 등장하는 수돗가와 복도가 그곳에 있더군! 건물 안은 더 음침했어. 천장은 또 얼마나 높은지…

  2. 난 퇴근할 때 그 길로 하거든^^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서 음침한 대신 따분함이 느껴진다는.
    그런데 여름에 그 학교와 주변 대나무숲 정말 시원해.
    지나가다 담벼락에 기대 음악 들으면서
    10분씩 아무생각 안하고 쉴 정도로

  3. <으흐흐~> <잇힝!> 이렇게 쓰는 거야.
    그리고 과년한 누나가 그런 것 쓰면 하나도 안귀엽다고

  4. 요즘은 새들마저 영악해져서 사람이 서 있었어도 적극적인 action을 취하지 않으면 허수아비 취급을 한다고 하던데요. 다시 말해 거의 효과가 없다는 이야기겠죠. 하지만 C.P.인 상황에서 허수아비 유무를 독립 변수로 가정해서 얻은 결론은 아니니 신뢰성은 조금 떨어지는 대답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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