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노름. 장락궁이 부럽지 않다

커피 메이커에서 까페 베로나의 얇은 향이 흘러나온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멋진 구름으로 장식되어 있고 Getz/Gilberto의 음악은 서늘한 바람에 감각적인 선율을 덧입힌다. 부억 식탁에 앉아 노트북으로 답신을 쓰고, 오래된 메모들을 정리한다. 언젠가는 오래전 쓰다만 이야기들을 마무리지어야 하는데. 눈은 늘상 새로운 것만 찾는다.

“신선노름이 이런 것이렸다.”란 문장이 떠오른다. 덥수록게 자랐던 수염을 자르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순간을 즐기고 있으려니 장락궁이 부럽지 않다. 좋아하는 음악에 취해 깊은 우정이 담긴 답신을 쓰고, 창밖으로 보이는 가을 정취에 물씬 젖어간다.

햇살이 느릿하게 기울어가면서 맞은편 건물 옥상에 담기는 빛도 시시각각 변한다. 저 것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설명할 수만 있다면 누구나 그 아름다움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으련만 말은 덧없는 것이니 한숨만 나올뿐이다.

가끔 난 이방인 취급을 당하곤 한다. 고등학교때에는 이과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학생이었고, 20살에는 패관기서와 순수 문학에 심취해 있었더랬다. 대학에서는 경영학과보다는 다른 전공이 더 어울린다는 소리도 가끔 듣는다.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내 모습은 어딘지 배경과는 어울리지 않는 낯설음뿐인지도 모르겠다.

내 판단의 기초는 실용주의면서 감성의 기초는 회고주의자다. 정치적 성향의 기초는 보수주의면서 정치적 센스는 혁명이란 위험한 단어에 매혹된다. 아름다운 미모에 시선이 끌리지만 그런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것은 아니다. 향이 좋은 홍차를 즐기면서도 커피는 향보다는 맛이 우선이다. 온갖 기묘한 모순이 한 인간안에 공존하는 것이 인생의 묘미 아니겠는가? 묘미는 기회가 왔을 때 즐겨야한다.

푸코의 진자를 읽다보면 이런 뉘앙스를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이란 추같아. 이리 왔다갔다하는 추는 얼핏보기에는 제멋대로지만 실상은 엄밀한 규칙아래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모순처럼 보이는 것도 실상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거대한 규칙에 속한 움직일 뿐이야. 저 규칙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인데 바로 이 추에 목을 매다는 것이지. 그러면 규칙이 깨지면서 조만간 멈취버리고 말거든.

바람 좋은 가을날씨다. 이런 저런 모순을 숨기려고 딴 일에 정신을 집중하기보다는 모순은 못생긴대로 놔두고 나처럼 신선노름이나 즐겨봄이 어떠신가? 인생은 기회가 주어졌을때 즐겨줘야한다네. 시간이 흐르면 지금같은 맛이 나지않는 법이거든.

나중에 밤를 새더라도 지금은 호적함에 빠져보시는 것이 어떤가? 늘상 그렇듯이 언제 가을이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바빴다고 후회하지 말고 말이야. 바쁜 것이 늘상 옳은 것은, 모든 변명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그 누구보다도 자네가 잘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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