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쟁이가 좋아하는 길

나에게는 빚쟁이 근성이란 것이 있다. 상대방에게 빚을 잔뜩지게 만듦으로써 나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그런 빚쟁이 근성 말이다. 처음에는 빚인지 모르고 쓰게 되고, 나중에는 빚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되도록 안쓰려고 노력하지만 결국에는 빚을 쓰는 것에 맛이 들어 헤어나오지 못한다. 결국에는 빚쟁이인 나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채 빚에 의존하게 되어버린다.

겁먹지 말자. 비록 내가 빚쟁이긴 하지만 높은 이자율을 강요하거나 신체포기각서같은 것을 들이미는 사람은 아니니까. 가끔은 까닭 모르게 빚으로 옭아매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 대부분은 스스로 빛이 나는 사람이기에 내가 지닌 회색의 어둠으로 끌어들일 수 없다. 그 사람에게서 흘러나오는 빛에 눈이 멀지않도록, 그 빛에 회색의 공간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텅빈 공간으로 변하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하면서 그에게 빚을 지운다.

혹자는 이런 나를 비난할지도 모른다. 더럽고 비겁한 수법으로 사람의 마음을 강제하는 악당이리고. 하지만 난 그런 종류의 수준 낮은 악당은 아니다. 내가 주는 빚이란 채무자에게 채권을 행사하기 위해 주는 그런 빚이 아니니까. 사실 난 채권을 행사하려는 마음조차 없다. 하지만 내가 주는 빚은 한가지 확실한 작용을 한다. 바로 마음의 부담감이자 나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일종의 족쇄다.

물론 채권을 행사하는 대신 내 옆에 붙어있어야 한다고 명시적으로 밝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잊지 말자. 내가 빚으로 옭아매는 사람이란 스스로 빛이 나는 사람이라고. 이런 사람들 대부분은 빚에 대하여 지극히 건전한 사고를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빚이란 져서 안되는 것. 빚이란 반드시 갚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선량한 이 사람들에게 갚을 수 없는 빚이란 해결하기 어려운 숙제가 되어버린다.

착하디 착한 이사람들은 중간 단계에서는 빚을 갚아 자유를 되찾고 싶어한다. 하지만 노련한 빚쟁이들은 작은 빚을 면제해주고 되려 큰 빚을 지워버린다. 결국에는 조금씩 조금씩 빚에 익숙해지게 된다. 그리고 이때가 나같은 빚쟁이들이 가장 흐뭇하게 바라보는 시기이기도 한다.

하지만 사악해보이는 빗쟁이들에게도 그들 나름의 고민이 있다. 왜 이런 빚쟁이가 되었는지, 왜 빚이란 저열한 수법으로 당신을 붙잡으려 했는지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빚쟁의 속마음같은 것은 들어보지도 않은채 저급하고 비열한 수법으로 착한 마음을 우롱한 마키아벨리스트로 우리를 몰아 세운다. 왜 이럴 수 밖에 없었는지 물어봐주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사실 우리같은 빚쟁이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한다. 권리란 행사를 전제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행사할 의도같은 것은 아예 없는 권리란 처음부터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고. 빚에 대한 권리인 채권 역시 이 원칙에서는 벗어날 수 없는 것이고. 우린 빚쟁이라 아니라 단지 빚이란 단어로 포장한 선물을 즐겨하는 산타클로스에 불과하다고. 산타클로스가 아이들의 사랑에 힘을 얻듯이 우리 역시 그 사람의 존재에 힘을 얻는다고 단지 그것 뿐이리고.

하지만 우리같은 빚쟁이들이 빚의 구렁텅이 몰아넣는 그 사람들은 우리의 마음을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의 선물이 빚으로 인식되는 순간의 비참함을. 순수한 호의가 부담스런 빚으로 변하고 천품을 지닌 신사에서 샤일록처럼 비천한 수전노로 비하당하는 그 마음을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

사실 우리의 빚이 처음부터 빚으로 태어났던 것은 아니다. 모든 사물과 개념들이 그렇듯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아 이 오만함이여. 그대는 빛을 지닌 존재이기에 회색조차 어둠으로 보이는구나.”

빚쟁이란 슬픈 존재다. 가슴 속 깊히 숨겨진 선량한 마음은 단지 빛에 견주어 보기에는 너무나 어두워보이는 회색이란 이유만으로 사악한 존재란 낙인이 찍혀버린다. 그 낙인을 받고 우리가 얼마나 슬퍼하는지. 하루 아침에 고고한 천품을 잃고 바닥을 기어야하는 부셔진 자부심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다. 이래서 빚이란 주는 사람에게나 받는 사람에게나 모두에게 나쁜 것이라 선인들이 말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사악한 빚쟁이로 하고싶은 말이 있다. 호의가 빚이되고, 이왕 낙인을 받은 몸. 다른 사람의 빚보다는 내 빚을 써달라고. 앞으로는 높은 이자를 후려칠테니 안심하고 내 빚을 써달라고. 빚쟁이도 직업이다. 빚을 줘야 호구지책을 마련할 수 있는 어엿한 직업이다.

2 thoughts on “빚쟁이가 좋아하는 길”

  1. ‘우리의 선물이 빚으로 인식되는 순간의 비참함을. 순수한 호의가 부담스런 빚으로 변하고 천품을 지닌 신사에서 샤일록처럼 비천한 수전노로 비하당하는 그 마음을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 –> 난 빚을 씌우는 방법까지는 모른다. 아니지 인식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지. 그러나 난 선물하는 것을 정말 좋아해. 특히 여성들에게 선물하는 것을. 그래서 오해도 많이 받았고, 그런 호의가 부담으로 작용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항상 슬퍼. 참, 그 아가씨가 내게 부탁을 많이 하길래 밥 사라고 했더니 학관에서 라면 사준다고 하더라. ㅋㅋㅋ

  2. 음…
    난 정책을 수정했는데
    이제는 어리숙한 사채업자 노릇은 그만 두기로 했어.
    콜금리를 복리로 일수 계산해서 받고 말테야.

    그리고 요즘처럼 감정이 메마른 상태에서는
    상대에서 대부해줄 감정의 유동성이 절대 부족하다.

    생각에 보면 정말 웃기는 것 같아.
    내가 했으면 무엇을 얼마나 했고
    사람을 알면 얼마나 알길래 그것을 ‘헌신’이라 생각했을까?
    ‘헌신’이라는 말을 쓰기에는 내 지닌 바 격이 낮고
    그 것을 받을 자격 있는 이도 없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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