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오다

4주간의 캠프를 다녀왔다. 별다를 것은 없지만 다신 상상하기조차 싫은 4주동안 가장 먹고싶었던 것은 시원한 냉수 한 잔과 홍차 한 잔이었다. 불침번을 서는 밤이면, 한밤중에 코고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 머리속과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주던 홍차향을 상상하던 밤이 얼마나 많았던가?

4주가 반년 같았노라고, 하루가 한주 같았노라고 말하던 친구들의 말이 이제야 실감이 간다. 지난 봄과 여름이 몇해전 일처럼 아득하기만 하니 말이다. 아득한 정도가 아니라 마치 다른 세상처럼 느껴진다. 과연 정말로 있기는 했던 일들인지. 혹시 꿈은 아니었는지 잠시 머리를 싸맬 정도다.

4주 전의 나나 오늘의 나나 같은 이름을 지닌 커피를 좋아하고 장난과 수다를 즐기는 동일인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왠지 모를 이질감이 느껴진다. 키보드 위를 배회하는 손가락 끝마디에 생긴 굳은 살처럼 예전에는 없던 그 무엇인가가 지금의 나에게는 생겨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훈련소에서 원철군의 편지를 받았다. 몽상에 함몰된 나를 지켜보기 괴롭다는 원철군의 말에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음을 깨달았다. 오래전부터 마음 속에 정한 마지노선이 바로 그 말이었기 때문이다. 원철군의 입에서 어서 자신을 되찾으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이야말로 밀려날대로 밀려나 더 이상 밀려날 공간마저 여의치 않을 그런 상황일테니까…

더 이상 다짐과 약속에 매인 약한 사람은 되지 않으리라. 더 이상 이름의 가치를 함부로 구기지 않으리라. 더 이상 상냥해지지 않으리라. 냉혹하다는 평판을 얻더라도 일단 내 한 몸, 내 인생 하나 먼저 추스리고 보리라. 먼 훗날 후회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에는 거만함과 높은 자존심에 취해 살아보리라.

청명한 초가을의 하늘은 어느 사이에 우울해 보이는 늦가을의 하늘로 변해버렸다. 노란 단풍을 뽐냈던 은행나무 가로수의 잎새들도 비바람에 떨어져 버렸고 거리를 채우는 것은 앙상하지도, 그렇다고 풍성하지도 않은 어설픈 형태의 관목들 뿐이다. 황량하기 이를 때 없는 풍경이다,

하지만 이제는 황량함을 요령껏 즐겨볼 참이다. 황량함으로 마음 속을 가득 채우다 보면 오래지 않아 작은 일에, 소박함에 감동하던 아주 옛날의 나로 돌아갈지도 모르니까. 게다가 젊은 시기 한 때쯤의 황량함은 되려 더 좋은 벗이 되기도 하는 법이니 말이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