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잡기

뺨이 까칠하다. 어제 아침에 면도를 하고 지금까지 하지 않았으니 이 정도의 까칠함은 평균적인 수준일테지만 유난히 까칠하다는 느낌의 여운이 오래남는다. 사실 딱 이 정도의 수염일 때 만지는 뺨의 촉감이란 말로 셜명할 수 없는 기분을 가져다 준다. 뭐랄까? 성숙하고 두려움 모르는 건장한 성인이 된 기분이랄까? 참 그리고 이렇게 수염을 매만질 때면 하인리히 만이 쓴 앙리4세의 청춘에 나오는 ‘즐거운 날이 왔도다’란 장이 생각난다.

즐거운 날이 왔도다. 훈련소에 가기 전에는 라틴어 원문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것도 잃어버린 기억가운데 하나로군. 아무튼 간만에 제대로 뽑혀진 까페 베로나를 목으로 넘기면서 뺨을 만지고 있자니 이상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다음주에 서울에 가게되면 짐바브웨나 과테말라 안티구아를 사야겠다는 생각도 머리를 스친다. 아무튼 힘겨운 전투에서 승리한 앙리 4세가 만족스런 표정으로 피레네인 특유의 검은 수염을 매만지는 장면을 상상하며, 그의 영원한 연인인 가브리엘을 생각하며 흐뭇하게 웃어본다.

이유없이 기분이 좋은 하루다. 스스로가 자청하는 번잡함을 보며 지기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혀를 차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할일이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바쁘지 않은 삶이란 너무나 재미없는 것이어서 나로서는 참아낼 수가 없으니 말이다. 몸과 정신력을 아낌없이 쏟아버린 뒤에 취하는 휴식의 달콤함을 아는 나로서는 한순간도 참을 수가 없다.

참. 마음 속으로 품어왔던 한가지 일을 실행시키기로 결심했다. 무엇보다도 앞으로 그럴 시간이 없으니 지금을 실컷 즐기란 시정의 말이 트리거 이펙트를 준 것이리라. 친구의 말대로 내게 허락된 108주를 한가로움 그 자체로 채워넣을 수 있겠지만 난 득도한 고승이 아니라 번잡함과 하루의 피곤을 사랑하는 평범한 젊은이일 따름이다.

음. 브리티니의 새 앨범이 나왔다. 어떻게 오늘까지 모를 수가 있었던 걸까? 원철군에게 부탁받은 책과 함께 입수하자마자 발송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특별한 기대를 품고 있진 않지만 들을 음악이 없어 따분함에 배가되는 것보다는 실망하더라도 새로운 곡을 흥얼거리는 쪽이 백배는 좋지 않을까?

아무튼 내년부터 삶에 몇가지 번잡함을 더할 생각이다. 어쩌면 이 말을 듣고 기절할지도 모르겠지만 매주 주말에 봉사활동이란 것을 해볼까 생각중이다. 물론 주말의 봉사활동을 하다보면 서울에 올라가는 일도, 혼자서 즐기는 여행도 어렵겠지만 시정의 말대로 앞으로는 그럴 시간이 없으니 지금 시작해야만 할 것 같다.

어쩌면 난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을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모를지도 모르겠다. 늘상 사랑을 해봤냐는 질문에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당당함을 찾아볼 수 없다. 나의 사랑이란 일반적인 기준에서는 특이 케이스에 속하는 것이서 사랑의 본질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 조금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나에게 사랑이란 것을 할 수 있는 마음 준비가 되었는지 조차 의심스럽다. 내가 몸에 지니고 있다고 믿었던 배려가 진짜 배려일까? 나에게 꾸며진 동정심이 아닌 진짜 동정심과 이해, 그리고 슬픔이란 감정이 있는지 알아볼 필요성이 있다면 나의 결정이 조금은 수긍이 가겠지.

강자를 흉내내는 비근한 사람들에게는 강인해야하고 진짜 약자들에게는 배려를 아끼지 않아야 하는 법인데. 지금의 난 너무 전형적인 인정머리 없는 놈이다. 내 간격 안의 사람들에게는 아주 약간 선량한 사람이지만 간격 밖을 바라보는 눈은 차갑기 그지 없다. 정말 여유롭고 강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차가운 냉대보다는 따뜻한 포용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모르면 배우고, 없으면 키워나가면 되는 것이니 너무 늦은 것은 아니겠지?

어쩌면 나의 문제는 사랑받는 것에만 익숙해져버린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권리를 가지는 것처럼 당신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지만, 그리고 그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신사적이고 올바른 행동이라는 것을 알지만 내 간격 안의 사람들에게만큼은 무조건적으로 사랑받고 싶어한다.

어쩌면 지금까지 너무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았고 헌신과 희생에 가까운 사랑을 받는 것에 너무 익숙해졌기에 사랑받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사랑하는 데에는 어리숙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솔직하게 이런 마음가짐은 하루 아침에 고쳐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조금씩 노력은 하고 있지만 너무나 긴 시간동안 아버지의 아들이자, 어머니의 자랑거리로, 누이들의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으로 사랑만 받아왔기에 사랑을 주는 것에는 베푸는 것에는 인색하기만 하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이가 들어 아내가 생기면, 그리고 아이를 가진 평범한 가정의 주인이 되면 가족이기에 말하지 못했던 가족을 알지 못하는 친구이기에 풀어놓지 못했던 그 말들을 아내에게 해야겠단 생각이 든다.

그렇게 귤을 좋아하던 나였지만 쉽게 목으로 넘길 수 없었던 귤 한 상자에 얽힌 사연과 요령껏 편안하게 쉬고 있는 아들 걱정에 새어버린 머리칼. 다른 사람의 아이러니에는 그렇게 관대한 내가 왜 가족에게는 그렇지 못했던지. 이 후회감… 언젠가는 아내에게만은 솔직하게 말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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