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발 잘 다녀오시오!

마음이 무거운 납덩이에 눌린듯한 기분이 들 때, 넋두리할 사람이 필요할 때, 부담없이 망가질 수 있었던 친구 하나가 제법 먼 여행을 떠난다. 본인의 말로는 불과 몇달 뒤에는 볼 수 있다고 옆집 마실가듯 말하고는 있지만 걱정쟁이인 나로서는 옆집 마실가는 사람마저 붙잡고 싶어지니 정말 문제다.

항상 남다른 재미로 나를 즐겁게 만들어 주었던 친구. 그가 있었기에 내 삶이 한결 윤택해졌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다. 실의 인간이었던 나에게 빈 공간의 필요성을 인식시켜준 사람이 주영이였는데…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기에 알려지지 않았던 완고함의 벽을 처음으로 부셔준 사람이 주영이었는데… 결벽증에 가까웠던 이상스런 혐오감으로부터 나를 구해준 친구가 주영이었는데 한번도 고마움을 표현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나를 당황하게 만든 최초의 female은 당신이라는 사실 아시는가?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전혀 당황해하지 않으면서도 당황해하지 않으면 무척이나 어색할거란 한가지 이유때문에 당황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던 내가 자네때문에 식은 땀이 날정도로 당황했던 것 아시는가? 아무 생각없이 던지는 자네의 한마디가 깊게 숨겨놓은 진실을 건들고 날때면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얼굴을 돌려야만 했다는 사실을 아시는가?

나름대로 시나리오를 짜놓고 예측 범위내에서 움직이는 상황에 안도감을 느끼는 나로서는 예측이라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자네때문에 고생이 많았던 듯 싶네. 늘상 절제되고 돌처럼 단단한 사람들에게 익숙해져 있던 내 삶에 나타난 난해함이 자네였는데… 눈물 자체를 모르는 강인한 사람들틈에서 자라난 까닭으로 실제 눈물을 본 기억조차 희미했던 나에게 진짜 눈물이 이런 것이구나하는 사실을 알려준 사람이 자네였다는 사실을 아는가?

이렇게 써놓고 보니 확실한 오버센스로군. 자네나 나의 친밀하면서도 으르렁대는 이상한 사이를 모른다면 애인을 해외로 보내는 처량맞은 사내의 글로 보일테니 말이야. 하지만 이 정도 오해쯤이야 웃어넘기다 못해 마음껏 비웃어줄 자네이니 걱정하지는 않겠네. 참. 그리고 자네 홈페이지에 올려진 내 사진 보았네. 막내 누이가 옆에 있었는데 사진 설명에 박양과 그 친구라고 써놓은 것을 보고 한마디 하더군. ‘내가 상상한 주영이는 박양과 그 애인이라고 쓸 것만 같았는데 아쉬운 걸.’

자네가 돌아올 때쯤이면 완벽한 마인드 컨트롤과 시간 관리로 조금은 폼나는 사람이 되어있겠네. 뭐 원판불변의 법칙이라고 오리지널에서 얼마나 큰 변화가 있겠냐만은 그래도 조금이나마 달라진 모습을 보여줘야지. 몇달만에 만나서는 자네 입에서 ‘박양 하나도 안변했네’ 하는 소리를 들으면 왠지 빡 돌을 것 같단 말이지.

그럼 잘 다녀오사게나. 참. 오래 전에 꼬불쳐 놓은 자네 사진 한장 올리겠네. 나한테 있는 자네의 실사 사진은 하나같이 21살 무렵의 앳된 모습이라서 차마 돌맞을까봐 못올리겠군. 내가 가진 사진가운데 가장 흉악한 걸로 골라보려 노력했는데 마음에 들지 모르겠어. 그럼 몸 건강하기를 빌며!

Modify(2004.4.2) 그런데 지난달 말에 쓴 그 반복되는 우리가 모르는 친구가 누구냐? 궁금하고 또 궁금하네. 지금의 나로서는 그렇게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조금은 부러워. 그렇게 사랑받았던 과거를 지닌 너도 부럽고. 조금 질투나기도 하는군. 아마 이 부분은 평생 못 읽고 넘어가겠지?

2 thoughts on “김주발 잘 다녀오시오!”

  1. 독하다!. 보름도 안되어 읽어버리다니.
    최소한 두달은 예상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그런데 왜 궁금증은 언제 해소 해주실텐가?
    밥하고 교환하잔 이야기로 해석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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