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컴

인터넷 붐이 꺼진 이후 소위 인터넷 기업들로 불리던 닷컴 기업들의 전략에도 변화가 생긴 것 같다. 합리적인 아이디어와 기술력으로 승부하던 초기의 벤처들과 다르게 오늘날의 닷컴기업들의 기본 전략은 마케팅이다. 이것은 기술력의 차별화가 두드러지지 않을 정도로 각 기업들의 평균 수준이 비슷해진 요인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평균 기술 수준을 구축하는데 소요되는 한계 비용이 줄어든 현실도 큰 몫을 차지하는 것 같다.

디지털 경제에서는 초기 서비스 구축에 대부분의 비용이 소요된다. 서비스 이용자 1인을 추가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한계비용의 코스트는 제로에 가깝다. 게다가 기술 수준의 발전으로 초기 서비스 구축에 필요한 비용은 하드웨어적인 투자보다 소프트웨어적인 투자와 인건비가 대부분이다. 소프트웨어와 인건비를 코스트로 생각하기보다는 훗날 보상을 얻기 위한 일종의 간접 투자로 인식하는 닷컴 기업의 특징으로 생각해볼 때 디지털 경제에서의 초기 투하 자본의 크기는 매우 작다.

하지만 투하 자본에 비하여 닷컴 기업들의 운용할 수 있는 유동성은 매우 큰 편이다. 배당 가치나 수익에 의한 냉정한 평가보다는 미래의 경제적 가치인 EVA에 의해 평가받는 닷컴 기업의 특성상 등록 기업들의 경우 실제 기업의 실제 크기보다 많은 유동성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통례이다. 바로 여기에서 오늘 우리가 논의하고자 하는 문제가 시작된다.

실제 기업의 크기보다 많은 유동성과 낮은 구축 비용, 합리적인 경영자라면 남은 가용 자원을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사용해야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에 투자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대답의 갈래는 여러가지이다. 하지만 수익과 성과에 목말러하는 직원들과 투자가들의 ‘눈치’에서 자유롭지 못한 대부분의 경영자들이 생각하는 갈래는 바로 마케팅 강화다. 이것은 투자의 성과가 느리게 나타나는 연구 개발과 인력 개발보다는 과감한 마케팅 투자의 성과가 보다 가시적이기 때문이다.

사실 경영자들의 이런 선택에도 나름대로의 논리적인 근거가 있다. 사소한 경품을 내건 이벤트 프로모션 하나로도 접속자수의 증가는 폭발적이다. 인간에게 호기심이란 결코 떨쳐버리지 못할 감정이 있는 한 이벤트 프로모션은 절반 이상의 성공을 보장한다. 미래를 알 수 없는 불확실한 투자보다는 절반 이상의 성공을 보장하는 마케팅에 가용 자원을 쏟아붓는 것이 이들 경영자들에게는 우세 전략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대다수 닷컴 기업들이 우세 전략을 선택한다는 근거아래 마케팅 투자를 늘리면서 시장은 혼탁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경쟁이 과열되면서 마케팅 차원의 지출이라 부르기에는 부적당한 유형의 지출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유명한 커뮤니티나 블로거, 영향력 있는 유저들을 사들인다는 소문은 더 이상 조심스레 떠도는 입소문조차 되지 못한다. 기업들은 새롭게 시작된 서비스의 성공을 위해서 사람들을 사들이고 경쟁 기업에서는 기술보다 더 중요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이런 지출을 아끼지 않는다.

사실 이 글에서 기업들의 윤리성을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수익성도 좋고, 윤리적인 기업이라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윤리적인 기업과 수익성 좋은 기업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면 주저없이 수익성 높은 기업을 선택하는 것이 인간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 필자다. 하지만 닷컴 기업들의 이런 혼탁한 자태는 꼴불견으로 다가온다.

90년대 초반 닷컴 기업들은 열정과 창조적 아이디어로 하나로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 하지만 오늘의 닷컴 기업들은 오랜 역사만큼이나 능구렁이 같은 심사를 지닌 거대기업들과 전혀 차이가 없다. 심지어 오늘날 닷컴 기업들이 보여주는 한심스런 작태는 이들 거대기업들 보다 더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근래들어 조금 나아지는 닷컴 기업들의 수익성에 이번 한번만큼은 눈감아 주리라 마음 먹었다.

하지만 닷컴 기업의 빠질대로 빠진 윤리성보다 더 참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닷컴 기업들의 서비스 그룹화’다. 사실 다각화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지만 닷컴 기업들의 다각화는 비합리적이다. 남다른 서비스 차별화를 이루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남들하는 것은 다 똑같이 하자라는 지극히 경멸 받아 마땅한 생각에서 나온 다각화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맹목적인 다각화를 뒷받침하는 요소가 낮은 개발비용과 풍부한 마케팅 지출이다.

그런데 이런 맹목적인 서비스 다각화가 과연 닷컴 기업의 수익성에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인터넷과 기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사람들은 전문화되고 차별화된 서비스에 시선을 끌린다. 사람들의 주머니를 열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어 당길 수 있는 것은 단기적인 프로모션만이 아니다. 차별화되고 꼭 필요하며 유용하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사람들은 주머니를 열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오늘날 닷컴 기업들이 하고 있는 아무런 차별성 없는 다각화에 주머니를 열 순진한 사람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날 닷컴 기업들이 밟아가는 길은 과거의 신생 기업이었던 오늘의 거대 기업들이 걸었던 길과 점점 유사해지고 있다. 단지 그 범위와 기술이 다르다는 것일 뿐 그 행보를 설명할 수 있는 본질적인 영역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어쩌면 역사의 거대한 흐름이 반복되듯이 기업들의 행보 역시 설명하기 어려운 난해한 흐름 아래 종속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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