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1

한적함과 번잡함의 교차점
서울에 왔다. 누이에게서 맛있는 라자니아를 뜯어내고 조금은 어지러운 걸음걸이로 코엑스에 가고 있다. 사람 많은 일요일 한낮의 지하철 속에서 그 옛날 막내 누이가 쓴 일기가 생각난 것은 왜 일까? 스쿨버스는 만두 같다. 그 안에 밀어 넣어진 사람들은 만두속같다. 유치한 일기의 주인공이었던 15살 누이가 26살이 되었건만 사람 많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늘 이 문장이 생각난다.

간만에 들린 코엑스. 매주 한번 정도는 들렸던 장소였는데 이제는 길조차 찾기 어렵다. 소니 스타일을 한번에 찾지 못하고 어수룩한 걸음으로 돌아다니는 나를 보면서 변화를 실감했다. ‘어리둥절한 것이 아니라 어리 버리겠지’ 은주양의 메시지가 가슴을 통렬하게 훑고 지나간다. ‘쳇. 아무리 한적함을 벗한다 둘러대지만 이런 촌부가 될 필요는 없는데 말이야’하고 혼자 되뇌어 본다.

EX71을 귓구멍에 밀어넣고 O.K. Computer를 듣기 시작했다. 코엑스에서 와서 반디북스를 그냥 지나친 것은 처음이지만 왠일인지 강남 교보문고가 더 끌린다. 뭐랄까? 반디북스보다 숨어있기 더 좋은 구조를 갖추고 있어서가 아닐까? 사실 반디북스에 비해 교보문고의 서가간의 거리가 조금 더 길다. 게다가 강남 교보문고의 특성상 책을 읽기 위해 서점에 들리는 사람들보다는 책을 사기 위해 들리는 사람이 더 많다.

걸음이 머무는 곳은
신간이나 베스트셀러가 디스플레이 되어 있는 전면부를 제외한다면 진짜 책이 담겨진 서가 쪽은 조용하다 못해 한적하다. 일요일이면 좁은 서가 사이에 빡빡하게 자리잡은 사람들 때문에 속독을 방해 받기 일수인 반디북스에 비해 확실한 비교우위에 있다. 물론 검색시스템은 반디북스가 휠씬 뛰어나지만 서점 순례자들에게 검색시스템은 무의미하지 않은가?

한달이라는 삶의 공백기동안 나온 신간들을 훑고 있다. 딴에는 스타일리쉬하다는 일본 작가들의 글들이 가장 좋은 목에 자리잡고 있다. ‘저것은 스타일리쉬한 것이 아니라 생각이 없는 거야.’ 인연이 다한 그녀의 독설이 떠오른다. 나도 그래. 그래서 20살 이후에는 손 대본 적이 없다고…

중 고등학교 시절 주말이면 공부를 한다는 핑계로 찾곤 했던 도서관의 서가도 떠오른다. 늘 나보다 일년쯤 늦은 진도를 보였던 그 녀석도 생각난다. 고개를 들어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저 많은 사람들 가운데 나를 아는 사람도 나를 이해하려는 사람도 없구나. 이래서 인생이 고독한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문득 연락조차 되지 않는 그 녀석이 그립다. 23살이나 먹어버린 지금의 녀석이 이걸 보면 뭐라 할까? 토파즈를 읽으며 선이 고운 얼굴에 음흉한 미소를 짓던 옛 기억이 떠올라 잠시 울적해진다.

참 바람이 스쳐 지나갔어. 눈을 마주하고 쳐다보는데 난 누군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어. 기억이 난 후에는 뭐라고 말을 건네야 할지 고민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네. 바람은 바람이니까. 양초처럼 자신의 재능을 태우며 이리저리 삶을 낭비했던 바람이니까. 우리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던 아주 못된 바람이니까.

그런데 말이야. 아름다워졌더군. 4년 만에 처음 본 것이었는데 시간이, 운명의 가혹함이 그 바람에 차분함을 선물한 것 같더군. 그 옛날 9살 소녀의 영민했던 눈이 그 안에 다시 담겨 있었네. 다시 만난다면 ‘안녕 친구’하고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리라 마음먹었네. 하지만 또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할까?


20여분의 순례 끝에 눈먼 자들의 도시를 발견했다.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불리는 주제 사라마구의 대표작이었는데 이제야 그 번역본이 출간된 것이었다. 어렵사리 구한 우편배달부의 번역본과 수도원의 비망록을 읽으면서 느꼈던 작가의 대책 없는 상상력에 매료되었던 나로서는 한 달의 공백을 채우고도 남은 큰 선물이다. 아껴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삶을 마냥 행복하게 만들어 줄 책을 만나기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니 말이다.

데리다의 이성에 대한 비평이 담긴 신간도 눈에 띄었다. 자크 데리다의 이성비판론이라. 솔직하게 구미가 당긴다. 재수하던 시절의 놈팽이였던 나였더라면, 아니 불과 몇 달 전의 한량이던 나였더라면 주저 없이 손에 넣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젠 나도 해야 할 일이 생긴 몸이 되었다. 기쁜 마음으로 이성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기보다는 호구지책을 마련하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하는 그런 나이가 되어버렸다.

결국 설탕 그리고 폭력의 역사라는 근대 무역론에 대한 책 한 권(사실 이 책 두 번째 사는 거다. 지난 여름 가방 속에 멀쩡하게 넣어둔 책이 사라지는 사태에 직면했다. 난 가방을 열은 적도 없었고, 또 책을 흘릴 만큼 덜렁거리는 위인도 아닌데)을 사고 거시경제학 연습을 한 권 샀다. 도요타 자동차의 미국화란 제목에 끌려 이번 달 포춘도 샀다. 남들은 2시간이면 다 읽는다지만 나에게는 4일은 족히 걸릴 만큼 읽기 힘든 잡지다. 4일이라면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전부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긴 시간인데 말이다.

누이에게 부탁 받은 미술사책을 사기 위해서 30분쯤 잰슨과 곰브리치 사이에서 방황했다. 사실 잰슨판에는 곰브리치가 가끔 보여주는 뛰어난 통찰력이 담겨져 있지는 않지만 기본에 충실한 책이기에 더욱 마음에 끌렸다. 하지만 그래도 곰브리치판을 버리기에는 왠지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이 양반 인간적, 사회적 고찰은 허접하기 그지 없지만 미술사에 대해서만큼은 정말 남다른 양반이지 않은가?” 결국 내가 고른 것은 곰브리치 아저씨의 그 유명한 미술사가 아니라 잰슨씨의 그런대로 유명한 미술사였다. 아무래도 곰브리치 아저씨책의 고동색 표지 디자인이 구매 의욕을 결정적으로 떨어뜨린 모양이다.

사실 잰슨판을 산 것은 다 자네 때문이야. 옛날 홍지서림에서도 곰브리치판과 잰슨판을 눈앞에 두고 고민했던 때가 있었지. 사실 명성에 쉽게 허물어지는 빈약한 내 의지로는 곰브리치판이 조금 더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곰브리치 세계사에서 보여준 그 유치찬란 함에 기막혀 했지만 말이야. 그때 자네가 그랬지. 클레오파트라의 코나 운운하는 여자도 미도 모르는 유치한 작자에게 끌리는 것은 아니겠지? 매우 부끄러웠네. 내가 앵무새가 되어버린 듯 했거든.

이제는 자네와 나 사이에 남겨진 추억을 즐거운 마음으로 되새길 수 있게 되었네. 여전히 미안하긴 하지만. 내 기억 속에서 더 이상 나이를 먹지 않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의 자네로 기억해도 되겠지? 나이 먹은 모습. 삶에 지친 모습 같은 것은 상상조차 되지 않는 가장 햇빛 찬란한 시기의 당신으로 기억해도 되겠지. 그렇게 혼자 기억 속에서 가끔 꺼내보는 사진첩에 밀어넣어도 되겠지?

잰슨판을 왼팔에 끼면서 자네를 안는 상상이 들었어. 연인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났네. 나이를 먹어 죽음을 얼마 남겨두지 않는 남자 주인공인 우리의 아름다운 제인 마치에게(음 헷갈리는군. 여전히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나 봐) 정말 사랑했던 것은 당신이라고 전화했던 장면 말이야. 자네가 아는 난 그럴 용기도 배짱도 없는 위인이지만 옛 기억이 밀려와 가슴 아릿해오는 느낌이 무엇인지는 알 수 있었어. 이제는 그 느낌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네. 그것 이상은 꿈꿔보지도 않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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