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인 내 마음 같아라

아침 저녁으로 출근길이면 늘 인사를 건네는 조상이다. 음. 조상이 적절한 단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하지만 다른 단어는 생각나지 않으니 일단 조상이라 끝까지 우겨볼 참이다. 아무튼 아침 저녁으로 저 녀석에게 인사를 하는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빌빌 꼬인 저 모습이 내 마음같기 때문이다. 거울을 보는 것처럼 아침 저녁으로 점점 꼬여가는 내 마음을 볼 때마다 저 녀석에게서 친근함을 느낀다. 시간이 더 흐르면 내 마음이 몇바퀴나 꼬였는지 의식조차 못하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꼬인 내 마음을 반성하고 싶다거나 아니면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결코 아니다. 꼬인 마음이야말로 숙명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몬테크리스토(베니건스의 몬테크리스토가 아니다. 침 닦기 바란다)백작인 에드몽 단테스는 알베르와의 결투 전날 이런 말을 내뱉는다. “어째서 복수를 결심했을 때 심장을 뽑아버리지 않았던가?” 꼬인 마음은 그 어떤 것에도 그 누구에게도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삐딱하다 못해 짜증나는 내 마음 심사를 볼 때마다 강해진다는 느낌에 행복하다.

사실 지금껏 부정적인 생각이야말로 자신감을 좀 먹는 나쁜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막상 부정적인 생각으로 자신을 물들이고 나니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선량한 가면을 쓰고 있기에 벌이지 못했던 수많은 일탈이 지금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부정적인 생각이야 말로 인간이 지닌 최고의 역량을 뽑아낼 수 있는 악마의 묘약이다.

하지만 내가 부정적인 생각이라고 정의한다고 해서 그것이 자괴감을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타인에 대한 부정적 생각과 증오, 그리고 격렬한 복수심이야말로 최고의 모티베이션이 된다는 사실을 실제 사례로 보고나니 생각이 바뀐 것인지도 모르겠다.

비록 오래된 이야기지만 내가 물어본 적이 있을꺼야. 삶이라는 파고를 넘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으로 내가 변신을 선택한다면, 내 정체성마저 갈아치울 정도로 극적인 변신을 선택한다면 나를 어떻게 생각하겠어 하고 말이야. 그 때 다들 그랬었지. 변하던 변하지 않던 우정이란 순금처럼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그 순간까지 얼마남지 않았다.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어. 그리고 그 길을 걸어가는 난 너무 행복하다. 사소한 것에 감동하지 않더라고, 더 이상 추억을 아름답다 생각하지 않더라도 행복할 수 있고 즐거울 수 있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을 왜 심장을 뽑기 전에는 몰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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