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살 그렇게 춥지는 않은 겨울을 보내며!

거짓을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기는 어렵다
막내 누이와 비디오를 빌리러 가는 길이었다. “너 바보지?” “응, 바보 맞아”‘나는 너구리다 한번 해봐”“나는 너구리다”스물 셋, 스물 여섯 형제의 놀음치고는 유치하지만 다들 이러고 노는 것 훤히 알고 있으니 별로 부끄러울 것도 없다. 그러던 중 누이와 내기를 하게 되었다.

내가 절대 따라하지 못할 말이 있다는 것. 도덕적으로 나쁜 말이 아니면서도 절대 내가 할 수 없는 말이 있다는 것. 그런 말을 비디오 가게까지 가는 길에 찾아내겠다는 것이 누이가 내게 걸은 내기였다. 절대 승리를 확신했다. 도덕적으로 나쁜 말이 아니다면 따라하지 못할 말이 없었으므로… 그런데 누이의 한마디에 난 패배를 시인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것도 가장 완벽한 패배로 말이다.

“나는 그녀를 사랑합니다. 한번 해보시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었다. 나는 나는 하고 수없이 되뇌어 봤지만 그 이름 하나를 발음할 수 없었다. 두꺼운 껍질을 쓰고 있기에, 너무나 효율적이고 의욕적인 삶이란 보호색을 뒤집어 쓰고 있기에 아무도 꿰뚫어 보지 못하리라 믿었던 껍질이 너무나 쉽게 벗겨져 버렸다.

거짓을 말하는 것은 쉽다. 너무나 쉬워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하지만 진실을 말하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위험한 진실일수록 벗어나고 싶은 진실일수록 그것을 말하기란 더욱 어렵다. 입에서 발음되는 순간 언어는 하나의 속박이 된다. 진실을 단순한 개념적 차원에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하나의 사실로 인지하게 만들어 주는 과정이 바로 말이니 말이다.

그 말을 입술에 올리고 나면 난 또 다시 언어에 속박당하게 되고,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잔인한 과정을 통해 얻은 가면을 잃게 된다. 증오한다, 심장을 뽑아 버렸다 했던 호언이 실제로는 정반대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깨달았다. 오 신이시여. 어찌 저에게만 이토록 잔인하다 말씀이십니까

가는 길보다 돌아오는 길이 짧은 이유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를 보고 있었다. 큰누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야 넌 가는 길보다 돌아오는 길이 짧은 이유를 알아?“ 목적지를 향해가는 것하고 목적을 다 마치고 가는 것하고 마음의 부담감이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하고 대답했지만 사실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

나 경우에 있어서 가는 길보다 돌아오는 길이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가는 길에는 오직 목표 한가지만 바라보고 최고의 효율성을 추구하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그런 목표없이 최대한의 자유로움을 즐기며 걷기 때문이다. 그 어떤 목적에도 그 어떤 사람에게도 구속되지 않은 나만의 자유 시간을 즐기는 때는 오직 이때뿐이다.

돌아오는 길에 난 소설을 구성한다. 내 삶에 던져졌던 수많은 아포리즘을 생각하고, 과거의 사건들과 대화들을 재구성한다. 아주 나쁜 머리를 가지고 태어난 것은 아니기에 작은 노력으로도 대화 자체가 어설프게나 복원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한없는 자유로움으로 행복감에 젖어 들어간다. 일상의 피로로부터 부셔지기 쉬운 정신을 보호하는 시간을 가져줘야하는 것은 자기애의 정석이라는 생각을 하며 그렇게 길을 걷고 또 걷는다.

사람 많은 번화가보다 음침하고 황량한 길을 선호하는 이유
큰누이는 뒤를 돌아보지 않을 수 있기에 황량한 길을 선호한다고 한다. 수없이 스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찾아가는 수많은 호기심 덩어리에 대한 공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기에 사람없는 황량한 길을 선호한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황량한 길을 선호하는 이유는 다르다. 인간이란 꼴보기 싫은 존재가 오직 나 혼자뿐인 상황 자체를 즐기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많은 번화가에서 완벽한 혼자가 되는 것은 너무 어렵다. 나를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들의 표정을 읽고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기분일지,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하루를 살아가는지 상상하는 순간. 고독 속에 한없이 함몰되어가던 내 삶은 어엿한 사회인의 그것으로 복귀한다.

뭐 하나의 인간 자체가 사회와 같다라는 거창한 철학적 명제로 토를 다는 사람은 없어줬으면 좋겠다. 종속 조건에 의해 내가 어디에 존재하던 사회의 일부분이라는 구성 요건은 변하지 않는다는 빌어먹을 소리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간에게는 사랑하고 싶은, 함께 하고 싶은 욕구만큼 고독하고 싶은 욕망역시 마찬가지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하고 공유하고 싶지 않는 혼자만의 기쁨, 그리고 과거와 아픔이 있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About A Boy의 첫장면은 인간은 섬이 아니다란 문장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곧이어 인간은 섬이 맞다라는 휴 그랜트의 독백이 이어진다. 그의 독백처럼 인간은 섬이 맞는 것 같다. 아주 가끔 자의로 조절할 수 있는 도개교로 연결된 섬이긴 하지민 말이다. 그리고 황량한 길을 걷는 그 순간이야말로 도개교를 자의로 조절할 수 있는 몇안되는 그런 순간이다.

You must Love Me, song by Madonna
늦은 밤이다. MTV에서 Madonna의 my story가 방송되고 있었다. 어느 순간 You must love me가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대륙횡단철도를 읽고 있던 눈가에 습막이 쳐진다. 17살 그 황량한 마음으로 스쿨버스에서 잠들던 모습과, 고등학교에 들어가 성우와 첫번째로 했던 약속. 3월 마지막 일요일에 나눴던 알란 파커를 비난하던 대화와 그 후 조금씩 낯선 사람이 되어간 친구가 떠오른다.

기억은 이 정도로 놔두자. 사실 이런 기억들은 황폐함이 만들어낸 여러 상황들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니. 그런데 You must love me를 듣는 순간 그 당시의 황폐함이 다시 마음 속으로 들어왔다. 대응 방법이 다르기는 하지만 지금의 내 마음과 크게 차이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경우가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You must love me를 들으며 이 마음이 내 마음이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하고 되뇌이는 것까지 똑같다. 내 마음의 바람꽃은 정말 누구였던 것일까? 어쩌면 두 사람 다 아닐지도 모르겠단 생각마저 드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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