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새해의 첫글이 이런 글이 될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우정이란 친구란 이유를 모르는 것이라 한다. 내가 왜 태어났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처럼 그와 내가 왜 친구인지 설명하려는 짓은 정말 어리석기 짝이 없는 행동이다. 내가 가진 수많은 친구들이 왜 나의 친구인지 단 한번도 이유를 생각해 보지 않았으며 그저 내 친구라는 사실 하나만을 기억할 따름이다. 그리고 우리가 친구란 이름으로 쌓아올린 수많은 것들을 함께 말이다.

나의 고등학교 친구들과 자주 나누는 이야기가 있다. 내가 3년동안 다닌 학교의 이상스런 문화에 대한 이야기인데 우리는 뒤돌아서 있는 척하는 경우와 정말 뒤돌아 걸어가는 경우를 다르게 분류한다. 뒤돌아서 있는 척하는 경우는 사과하려고 기회를 엿보는 경우이며 이럴 경우 한번의 매점행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

하지만 정말 뒤돌아서 있는 경우라면 설령 훗날 아무리 후회할 경우가 생길지라도 절대 뒤돌아 보지 않는다. 무슨 이유로 그랬는지, 누가 잘못을 했는지, 내가 무엇을 잃었는지 그런 것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이것이 그와 나 사이에 놓인 운명이러니 그렇게 생각한다. 운명을 거슬러라 배운 적은 단한번도 없는 몸이기에 그저 그것을 숙명으로 알고 따른다. 그후로는 그 이름을 입에 올리는 일도 기억을 떠올리는 경우도 없다. 그것이 내가 배운 룰이고 내가 실천하는 룰이다.

세상에서 가장 솔직하고 가장 진실된 것은 스스로의 양심에 거울에 비추는 마음이다. 조금의 후회가 남아있다면 여자같은 나의 친구들은, 그리고 나는 참지 못하고 먼저 터트려 버린다. 그래서 결국 뒤돌아서 매점으로 끌고가는 것은 항상 나와 나의 친구들이다. 잘못을 했으면 먼저 사과를 하고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고 용서를 구한다. 하지만 우리가 터트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단 한톨의 아쉬움도 남아 있지 않는다는 뜻이다.

내 블로그에서 자네에 대한 아쉬움이 한톨이라고 느껴지던가?(마지막으로 쓰는 자네이네. 앞으로는 자네 대신 당신이라던지 아니면 무슨씨로 부르겠지) 이미 너무 많이 걸어와 버렸어. 필요할 때 친구가 진짜 친구이고, 나를 아껴주지 않는 사람에게 다시는 친구란 단어를 선물하지 않기로 마음 먹은지 한참이나 오랜 시간이 지났네.

내게 있어 친구란 나를 헌신할 수 있는 존재인데 다시 한번 자네에게 그럴 수 있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봤지만 대답은 아니다였어. 그토록 애착을 가지고 내 자식처럼 사랑하던 것들에 대한 애정마저 버렸어. 내가 그토록 아끼던 많은 것들에게서 버림받고 추한 존재가 되는 것도 군소리없이 받아 들였어. 내 스스로에게 매긴 이름의 값어치가, 자존심의 값어치가 그토록 높은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군소리없이 받아 들였어.

나름대로의 마지막 배려였는데 왜 또 칭얼거리는건가? 자네는 자네가 지닌 진짜 마음과 역량에 비해서 조금 과하게 많이 받는다는 생각 단 한번도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 과하게 주는 사람들 명단에서 나만은 삭제해줬으면 좋겠어. 왜냐면 더 이상 자네때문에 손해보는 것 정말 싫거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자네가 남발한 말들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를만큼 어리석었나? 그렇게 어리석으면서 아직도 나의 친구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가? 내가 잃은 것들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들이었는데 그런 것인줄 그때는 잘 몰랐노라고 쓸 수 있단 말이지.

제발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라고. 솔직하지 않은 그 마음으로 여러 사람 헷갈리게 하는 것 멈취달라고. 내가 더 이상 자네를 내 친구로 인정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그것이라는 사실 왜 모르는 것이지? 그 부정직함이 만들어 놓은 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지.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어도 내 눈에 보이는 그것들이 절대 보이지 않는단 말이지.

자네의 그 빌어먹을 감상적인 하루때문에 난 또 무엇인가를 잃겠군. 내가 이름으로 한 약속마저 어길만큼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것을 또 잃겠지. 그리고 수없이 많은 시간을 다시 불행하게 보내야 하고. 지겹군. 지겨워

참. 혹시 아주 오래전 자네와 내가 친구 관계였던 그 옛날에 했던 부탁을 지키고 있는 것인가? 그런 부탁이라면 지키지 않아도 좋아. 그런 마음이라면 정말 기가 차서 말조차 나오지 않을테고. 난 지금 새로운 막에서 살고 있는 중이야. 그 막에서 넌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야. 지난 막간극에서조차 그랬고. 그러니 더이상 나에게 그 어떤 것도 구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혹 내가 잔인하다 냉정하다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이것이 네가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던 나의 진짜 모습이려니 했으면 좋겠어.

사람을 사랑할 줄 모르는 너에게, 타인을 위해 단 한번도 진짜 희생을 해보지 않는 너에게 나의 믿음을 다시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편익은 희생할 수 있지만 정신으로는 희생할 줄 모르는 너. 실수는 한번만으로 족하다. 두번 실수하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야.

네가 보낸 편지에서 발견한 너는 내가 그렇게도 떨쳐버리고 싶었던 그 모습에서 변한 것이 하나도 없는 너였어. 한학기라는 시간이 그 고민이 너에게 가져다 준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모르겠더냐? 여전히 너무나 사랑하는 자신밖에 모르는 그런 존재. 자신만을 사랑하는 것은 죄가 아니나 그것을 반성하지 않는 것은 무엄한 죄라는 말을 들어보기나 했을까?

원철군이 나를 생각할 때, 내가 원철을 생각할 때, 지선군이나 시정양을 생각할 때, 난 I 가 아니라 You 를 생각해. 내가 받은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해줄 수 있는 것과 해주기 소망하는 것. 나의 행복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난 내 친구들이 누구보다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하고 빌고 있어.

하지만 네가 말하고 쓰고, 생각하는 방식에서 난 단한번도 그런 면모를 찾아보지 못했다. 입으로는 누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말하지만 그 말 속의 중심에 있는 것은 항상 자신이었잖나? 차라리 내가 ~하더라도 그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말은 스무살 넘은 남자들에게는 거짓말의 또 다른 동의어라는 생각안해봤나. 정말 행복을 바라는 사람은 내가 ~하더라도 라는 말 따위는 하지 않아. 그냥 행복했으면 좋겠어. 내가 뭘해주면 좋을까 이렇게 말한다네.

그런 너를 친구로 다시 받아들이라고?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려 서 한계손실율에 접근하고 있는 나로서는 그냥 비웃어 주겠어. 그런 빌어먹을 소리는 거울이나 보면서 지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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