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의 고문이라…

가끔 사탕을 날라다 주던 아이에게 아저씨처럼 으그렁 거렸다. 사탕 먹을 나이는 지났으니 다음부터는 이러지 말라고 겁박 반, 진담 반을 섞어 말했다. 눈가에 살짝 맺히는 눈물을 보고 난 역시 나쁜 녀석이란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이럴 때 난 돌려 말할 줄 모른다. 하얀 거짓말도 있는 법인데 작은 거짓말로도 상처입는 내 자존심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중요한 것은 내 자존심이지 이름조차 외우지 못하는 타인의 자존심이 아니라고…

지선군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 잘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기대의 고문따위는 하지 않는 편이 휠씬 좋은 결정이라는 말을 건네 받았다. 그 말을 듣고 있자니 갑작스레 슬퍼졌다

내 경우에 있어서는 기대의 고문이라도 받는 편이 휠씬 즐거운 일이라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대의 고문조차 없는 운명이란 너무 가혹한 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그리고 이내 그 기대의 고문이란 것이 못내 그리워졌다. 까닭없이 머리가 아프곤 한다. 물론 입력되는 문자의 양이 많아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이제는 너무 절실하게 꿈꾸는 것이 많아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끔 이어지는 술자리에서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소리를 듣곤 한다.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란 단어에 숨겨진 또 다른 의미를 알았다.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되, 나를 이해해주었으면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이중 조건을 만족해야만 하는 법이라는 사실을…

대화할 사람이 필요하다. 하루 중 진짜 혼자 있는 시간이라고는 겨우 1시간 남짓이지만 난 스스로가 로빈슨 크루소가 되어간다고 느낀다.
(방금 크루소라는 단어를 쓰면서 어렸을 때 본 팡팡의 남자 주인공의 이름이 크루소라는 사실일 기억해 냈다. 저지섬 출신의 가문이라고 말하던 주인공의 목소리가 10년의 세월을 격해 귓가를 울린다).

고독하다. 원래 좋지 않았던 성격이 더욱 모나지고, 시니컬해지는 것은 나 혼자만의 탓이 아니리라. 기대의 고문조차 받지 못하는 일신의 빈한함 때문이리라. 잠이 온다. 더블 아메리카노 한잔이면 이런 우울함과 잠에서 깨어날지도 모르는데. 이곳에서는 더블 아메리카노를 만들 줄 아는 에스프레소 가게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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