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다. 정말 싫다

고통스러운 것은 너무 싫다. 마음에 종속당하는 내 자신이 너무 싫다. 냉정하지 못한 자신이 싫다. 또 다시 이렇게 주절 거리는 자신이 싫다. 해야할 일을 버려두고 잠시 쉰다는 핑계 아래 또 다시 자신을 학대하는 지금의 나는 더더욱 싫다. 이런 나를 보고 나를 걱정하는 친구들에게 짐만 지우는 내가 싫다. 도대체 나란 녀석은 왜 이렇게 생겨먹고 생각하는지 그 모든 것이 싫다.

다른 것은 어떨지 몰라도 자제력에는 만점을 줄 수 있다고 믿었다. 모난 양심이기에 아무리 찔려도 아프지 않을 것이라 믿었고, 상처주는 일은 있어도 상처받는 일은 없을거라 너무나 당당하게 믿어왔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대로 흐른 지금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가시에 찔려 피흘리고 아파하는 그런 약한 인간의 모습이다. 어린 시절 수많은 책들을 탐독하며 하나씩 입혀나간 껍질이 어쩌다가 이리도 약해졌는지 모르겠다.

우아한 문장 따위로 마음을 숨기는 짓도 귀찮다. 아 다르고 어 다르기에 가장 세세한 마음의 흐느낌마저 읽을 수 의도한 내 문장은 단지 난해함이 될 뿐이다. 아직도 목매인 강아지 마냥 걸음을 옮기지 못하는 내가 미치도록 싫다. 무슨 아쉬움이 그렇게 많은 거야? 뒤돌아보지 않는 성격이라 장담했던 과거의 말들이 너를 윽박지르고 있다고. 뒤돌아 보지 않는다고. 그 말이 맞긴 하군.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으니 뒤돌아 볼 필요 자체가 없으니까 말이야. 화려하게 치장된 그래피티로 채워진 그런 굳건한 벽이 되고 싶다는 맹세는 어디로 갔는지. 이렇게 쓰지 않으면 가라앉지 않는 그 화는 무엇인지.

왜 아직도 사랑하고 있냐고. 제발 그 서푼짜리 양심 버리라고. 그 서푼짜리 양심에 잃어버리는 기회비용을 생각해보라고. 너에게도 행복할 권리가 있는데 왜 넌 서푼짜리 양심때문에 여전히 아파하냐는 말이다. 행복따위는 나하고 상관없다는 듯 웃지마. 헤픈 웃음 따위는 관심없다는듯 고고해 하지 좀 마. 눈마주치는 것을 거부하는 것도. 잘난척하며 의도적인 고립을 즐기는 짓도. 이젠 그만하자.

18살에는 나같은 행운아는 없다고 생각했다. 20살때도 그랬다. 펠릭스라는 단어가 나를 위한 단어가 아닐까 고민했던 적도 있다. 그런데 24살을 먹은 지금 행운과 난 거리가 너무 멀다. 어쩌면 행운이 찾아와도 애써 거부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그 한마디에 마음이 따스해지는 내가 싫다. 작은 관심에 즐겁게 웃는 난 싫은 정도가 아니라 혐오스럽다. 나도 어쩔 수 없다는 한마디말로 모든 것을 무마하려는 내가 무책임하게 보이고 무능력해 보여 무척이나 싫다. 마음 속 깊이 독점욕을 숨기고 있는 내가 싫다. 가지지 못한 것. 누릴 수 없는 것들만 꿈꾸는 내가 싫다.

꿈꾸는 것들은 어느 것 하나 이루어지 않는다라는 말을 외우고 있는 내가 싫다. 꿈꾸는 것들이 모두 현실이 되는 그런 마법같은 삶이 가장 축복받은 삶이라 믿는 내가 싫다. 책 한권을 읽어도 목차부터 인지까지 어느 것 하나 빼놓지 않아야 책 한권을 읽었다 생각하는 나의 편집증이 싫다. 집착하고 또 집착하는 내가 싫다. 초월한 척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잃고 싶어하지 않는 내가 싫다. 손안에 쥔 것을 놓을 줄 모르는 내가 한심하다. 더 이상 쓸모있지도, 쥐고 있으면 마음만 아파지는 추억을 손가락에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움켜쥐고 있는 내가 한심스럽다.

어느 것 하나 바꾸지 못하고 이렇게 스스로가 싫다고 투정부리고 한심스럽다 욕하는 내가 밉다. 정채봉의 느낌표를 찾아서에 나온 짧은 아포리즘을 생각하며 그렇게 많이 읽고 기억하면 무슨 소용이냐고 따져 묻는 내가 싫다. 그리고 이렇게 쏟아놓고 나니 가장 친한 친구와 하룻밤을 술로 날려버린 것처럼 뿌듯하고 시원한 내 마음이 너무 밉다.

2 thoughts on “싫다. 정말 싫다”

  1. 나도 내 자신이 싫다.
    독점욕, 불가능해 보이는 꿈 등이 날 괴롭혀.

    쏟아냈다고 해도 잠시 뿐,
    오히려 더 공허하다고 해야할까.
    이제서야 자네 글에 대해 공감할 수 있게 되었네.

    늦게까지 깨어있었다고 꾸중 말게나.

  2. 일년이 지나 이 글을 봤을 때 난 되려 당황스러워.
    사람이 지닌 마음의 간사함과, 의지의 빈약함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고

    죽으라는 법은 없다는 넋두리처럼
    시간이 지나면 과거는 단지 아릿한 습막에 지나지 않는다더군.
    요즘은 그 말에 깊게 수긍하고 있어.

    무언가를 영원하게 만들려면
    죽을 수 밖에 없다고 어느 소설의 주인공이 절규했을 때
    난 마음껏 비웃었는데 이제는 그 말이 이해가 되.

    죽을 정도로 강렬하지 않다면 죽어서라도 지켜야 할 것이 아니라면
    사람은 적응하고, 포기하고, 잊어가는 동물이 아닐까 해.
    그러니 지금에 집중하지 말고, 몇년쯤지나 나와 술 한잔 마시면서
    하게 될 철없던 옛날을 생각해 보라고.

    그런데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내 삶은 여전하다.
    바라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이 상태가 계속되기만 빌고 있는 것을 보면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