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청년서울상경기4

을지로3가 인쇄골목 pm02:00
은주양과의 약속이 취소되었다. 약속이 취소됨과 동시에 난 오랫동안 마음만 먹고 처리하지 못했던 한가지 일을 처리하기로 마음 먹었다. 바로 반년 가까이 찾아보지 않았던 신문사에 들리는 일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때늦은 편집을 하고 있는 중이다는 전언을 들었기에 걸음을 인쇄소로 돌렸다.

사실 OB가 된 지금 신문의 편집 방향이나 내부적 지침에 대하여 글을 쓴다는 것. 아니 생각을 하고 나름대로의 평가를 내린다는 사실이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는 것은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인식하고 인정한다고 그대로 따라한다면 세상에 청개구리가 어디있고 예외가 어디있겠는가?

뭐랄까? 훈련소에 들어가기 전 국장님(이제는 영진이형이라고 불러야겠다)이 자리를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이래 신문을 펴보기가 매우 두려웠다는 것이 내 솔직한 감상이다. 다른 선배들이나 주영이는 나와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영진이형과 일한 2년반 동안 내가 배운 것들이 단순한 신문사 일 그 자체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2년 반이란 시간동안 내가 배운 것은 하나의 원칙과 치열함이었다. 물론 이전까지 치열하지 않는 삶을 산 것은 아니었지만 혼자 치열한 삶과 부대끼며 치열한 삶 사이에는 거리가 있지 않겠는가?

영진이형과 일할 당시의 신문사일은 격전의 연속이었다. 불안정했고 끊임없이 외부적 요인에 영향을 받았으며 늘상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했다. 계속성이란 토대 위에 새로운 것을 쌓아올리는 것은 타성과 관성에 약한 나에게는 죽기보다 싫은 일이었다. 수없이 많은 참고 자료와 가능성 가운데 하나를 모색하고 그것을 풀어내는 작업을 매달 반복하면서 언제쯤부터 스스로가 변한 것 같다. 지금도 어리기는 마찬가지지만 최소한 개인적 영역이 아닌 공적인 영역에서 만큼은 성숙한 한 사람의 성인이 되었다는 그런 느낌 말이다.

편집중인 신문의 게라(일본어이다. 인쇄판에서 쓰는 용어인데 우리말로 굳이 번역하자면 교정쇄 정도의 의미를 지고 있다)를 보았다. 게라는 보는 순간 이것은 전달력을 높이기 위한 방법인 단순한 편집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옛날 치열함을 통해서 획득했던 기획과 그 기획을 유지하는 바탕인 자학이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이 두 눈을 타고 뇌리에 전해졌다. 일을 너무 쉽게 하고 있었다. 숙련도가 올라갔기에 쉬워지는 것과 치열함을 포기했기에 쉬워지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스스로 판단하고 만족하는 마음과 적당한 타협이라는 단어가 머리 속에 포착되었다.

어쩌면 이십대 초반. 아니 대학 생활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일이기에 내가 과민 반응을 보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만 옳다고 나만 제대로 파악하고 생각하고 있다는 자만에 빠진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내가 틀린 것이 아니라면 그토록 오랜 시간 내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 또 하나의 가능성을 포기하면서 키운 내 자식은 이제 더 이상 내 자식이 아닐지도 모른다. 진정으로

평소에 지선군에게는 이제는 내 손을 떠난 일이라고, 앞으로는 신경쓰지 않겠노라고 말했던 것 같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어떤 소리도 하지 못했다. 한만 입을 열면 화를 참지 못하고 혀는 굴레를 벗어던진 채 망나니처럼 행동할지도 몰랐기에. 영진이형의 빈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빈자리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나 혼자인 것만 같아서 슬퍼졌다.

사실 지금의 신문사는 냉혹하게 말하자면 형들 시대의 신문사도, 내가 사랑했던 시기의 신문사도 아니다. YB들에게는 평안하고 즐거운 일이지도 모르겠지만 나이를 먹어서까지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젊은날의 강렬한 추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형들 시대처럼 동기, 선배들과의 강력한??유대와 단결력으로 채워졌던 추억도 아니고?내가 있던 시기처럼 치열함의 듬뿍담긴 추억같지도 않다.

물론 내 나름의 편견이 아니라는 비판에는 100% 수긍하다. 제발 내가 틀렸기를. 두 시대가 조화된 그런 신문사이기를 바라고 꿈꾸는데 이제는 손을 떠난 화살과 같다. 내가 먼저 하지 않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 짐 지울 염치같은 것은 없기에 이렇게 가슴앓이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편집을 도와주면서 이 순간 영진이형이 있었으면 하루가 행복할 거라 생각이 들었다. 누가 뭐래던 영진이형이 보고 싶었다. 훗날 웃으며 소주잔을 기울이지는 못하겠지만 무알코올 음료를 기울이면서 영진이형에게 지금 내가 느꼈던 마음을 전할 날이 오기를 간절하게 기원한다.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생각하겠지만 이제는 앞만 보고 걸어가야겠다던 영진이형의 편지가 떠오른다. 그리고 늘상 젊은 내가 되라는 충고도 떠오른다. 이렇게 지난 삶의 추억이자 전부인 신문사를 추억하는 것이 과거에 얽매인 늙은이 같은 것이라는 마음의 제약만 없다면 조금 더 생각하고 추억하고 싶은데 이제 시간이 다되었다.

이름모를 어느 술집 pm06:27

종로1가에서 지선군과 다시 만났다. 왠지 술 한잔이 마시고 싶었는데 녀석이 먼저 마시자 청한다. 할일이 너무나 많지만 잠시 걸음을 멈추고 쉬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걸음 멈추지 않는 사람은 절대 목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니까 그리고 자신의 삶에, 자신의 노력의 가치를 올바르게 파악하지 못하니 말이다.

사실 평소의 냉정함을 잃고 지선군에게 무언가를 토로하고 싶은 기분이 드는 날이면 어김없이 지선군에게 문제가 있다. 가량 너무 술에 취해버린다던지 아니면 나의 말을 들어주지 못할 정도로 스스로의 문제로 답답한 경우다. 오늘은 후자였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어느 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다. 그저 변죽만 울렸을 뿐. 늘상 난 이런 식이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모호한 표정만 지은 채 늘 변죽만 울린다.

그리고 벌써 세번째라는 생각을 했다. 아마 이젠 더 이상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일도 사랑을 구걸하는 일도 없을 거라는 스스로의 속마음이 읽혀졌다. 이제는 더 이상 그녀때문에 마음 아파할 일도, 번잡하게 기억을 지울 일도, 기다리며 가슴 조일 상황도 없음을 깨달았다. 거뭇한 마음의 창에 다시 덧문이 내려졌다. 나 역시 사람이기에 가끔 덧문이 열려 기분 좋은 반응을 보일 수 는 있겠지만 이제는 평생 다른 길을 걸어가겠지? 더이상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그녀의 눈부처를 바라보는 일은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눈부처는 내가 누군지 말해주고 어떤 삶을 살아야할지 알기 위해 읽던 시빌레의 경이 더 이상 아니라는 사실에 입맛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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