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August 2013

1.
DG 111시리즈를 사면서 얻게 된 가장 큰 수확은 분덜리히의 목소리를 듣게 된 것이다. 그 전까지 난 ‘시인의 사랑’은 만큼은 피셔-디스카우보다 보스트리지의 목소리가 더 낫다고 생각했는데 분덜리히의 목소리는 보스트리지가 가진 호소력을 뛰어넘어 사람을 눈물짓게 만든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이런 목소리를 음반으로 밖에 들을 수 없다는 사실 서른 다섯에 요절한 그 이기에 실제로 목소리를 들을 기회가 없다는 것은 너무 아쉽다. 스틱스강의 하우스보트처럼 누군가 스틱스강의 오케스트라를 만들면 어떨까?

2.
분덜리히에 이어 고전 중의 고전인 프레니와 게다의 라보엠을 듣고 있다. 내가 본 라보엠은 총 2번인데 한 번은 옥스포드, 한 번은 예술의 전당. 눈을 감고 있자니 2006년 늦여름 옥스퍼드 오페라 극장의 웅성거림.내 마음을 아름답게 적시던 웨일즈 내셔널 오페라 컴퍼니의 연기가 떠오른다. 당시에는 미미가 너무 늦게 죽는다고 툴툴거렸으나 시간이 지나고 보니 참 아름다운 추억이다.

3.
99년 이후 더 이상 우디 앨런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지만 지난 번 영화 to Rome with love에서 욕조에서만 노래를 부르는 앨런의 사돈 에피소드는 작위적이지만 사람의 마음 속에 담긴 내밀한 꿈을 이끌어내는 미묘한 것이었다. 난 욕실에서조차 그 남자처럼 노래를 부리지 못한 것을 제외하면 누구가 멋진 음악을 들으 때 마음에 품게 되는 나도 저렇게 부르고 싶다는 생각을 생각보다 괜찮게 풀어냈기 때문이다.

4.
아이를 낳고, 아이가 자라면
아이와 함께 오페라를 보고 싶다.
아이와 함께 발레도 보고 싶고,
토월 극장에서 그리스 희극도 함께 보고 싶다.

아이와 윤지와 함께
낯선 도시를 걸으며 대가들의 명작들을 찾아 순례를 떠나는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왜 이렇게 행복한지.

MBA도, IB뱅커도 아니지만
젊은 시절 꿈꾸었던 일과는 지독하게 먼 곳에서
내가 잘하는 것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이곳에서
나이를 먹고 있지만,

아내를 제외하면 누구에게도
내 안에 담긴 것을 보여주지 않은 채
느린 속도로 시들고 있지만

윤지와 아이와 함께하는
미래를 상상하고 있노라면
마음이 터질 것처럼 부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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