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찾아온 행복감. 그리고 나름함

시험이 끝났다. 이상스러운 나른함이 몸을 가득채운다. 몇 달 동안 갖고 싶었던 B&O의 A8를 귀에 꼽게 되었다는 행복감이 이 이상한 나름함의 정체일지도 모른다. 혹은 캠프를 마친 이래 100일 동안 지속되었던 긴장의 끈이 풀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분명한 것은 이상한 나른함과 피로감이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강남역에서 지선군을 만났다. 아침부터 시험이 끝날 때까지 나를 기다려준 원철군과 함께. 그런데 술잔을 기울이고 있자니 마음이 푸근해져 버렸다. 한동안 돌처럼 단단하게 스스로를 압박하고 있었는데 녀석들을 보자 굳어있던 마음이 녹아버린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냉엄한 합리주의에 기울어 있던 정신은 어느 사이에 감상주의자의 그것이 되어 버렸다.

지선군과의 술자리는 이상하게 즐겁다. 술보다 차를 좋아함에도 지선군과는 차보다 술이 달다. 늑대 같은 사내 녀석들과의 술자리보다도 솔직하게 조금 더(혹은 매우) 즐겁다. 혹자는 사내를 뺀 나머지 사람들만 좋아하는 내 본성에 빗대어 ‘뻔한 반응이다’ 비난할 지 모르겠지만 (혹자들 이러면 죽는다는 소리야) 그런 비난에도 불구하고 즐거운 것은 명백하게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법이다. 게다가 원철군까지 있음에야, 즐거움이 배가 된다.

술잔을 기울이며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내려다 보았다. 갑작스레 까유보떼의 그림이 생각났다. 테라스에서 먼 길을 바라보는 한 남자의 등도 생각났다. 지금 내 등은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하고 생각하다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왠지 헛물을 킨 것 같은 기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즐겁다. 어쩌면 행복한 것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꽤 오랜 시간동안 불행하다 툴툴거렸을 깨달았다. 나에게 멈춘 것은 시간이지 삶이 아닌데. 삶마저 멈췄다고 오해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단지 하루가 반복될 따름인데.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하루가 반복될 뿐인데 왜 난 현명하지 못했던 것일까?

하루가 외부에 영향을 받지 않고 지속적으로 반복된다면 매우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왜 망각했던 것인지. 좋아하는 차를 즐길 수도 있고, 서가를 차지한 책들을 모두 다시 읽을 수 있으며 가장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고, 일신에 지닌 각종 기술을 늘릴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인데. 왜 난 몰랐던 것일까? 반복되는 하루가 지겹다면, 너무나 지겨워 참을 수 있다면 가끔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옵션이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을 왜 몰랐던 것일까?

가끔 이렇게 여행을 떠나 행복감을 누릴 수 있다는 것.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사람들이 비록 멀리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왜 모른 채 한 걸까? 조금은 후회스럽다. 하지만 마음은 너무 행복하다. 이제 더 이상 괴로워 하지 않아도 고립되었다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마음을 들뜨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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