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내 마음만 같아

헌신 없는 애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고 느낄 때, 그것이 추측이 아닌 확신이 되는 순간은 바로 그녀에 대해 헌신할 수 있다고 확언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요즘의 난 천박한 유객처럼 헌신 없는 애정만 바라는 것 같다. 헌신이란 단어에 결코 얽매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헌신 없는 애정을 바라면서도 막상 그런 기회에 접근하게 되면 마음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천박한 유객이 되기에는 지닌 격이 결코 낮지 않다. 조금은 혼란스럽다. 하지만 이런 혼란이 3분을 넘기는 법이 없다.

현재 내가 가진 고민 가운데 5분 이상 숙고해야 할 고민은 없다. 고민이란, 5분 이상 숙고해야 할 고민이란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중차대한 일이라 정의하는 나로서는 근래의 내 삶을 소소하게 지나치는 문제들에 5분 이상을 할애하지 않는다. 5분 이상 생각해보려 노력하다가도 이내 피식 웃음과 함께 다른 일에 집중하기 일 수다. 도대체 삶이 번잡하지 않으니 하루가 지날수록 고민의 두께는 얇아져만 간다.

보고싶다란 생각을 한다. 그런데 정작 누구를 보고 싶어하는지는 모르겠다. 정말 누구를 보고싶어하는 것일까 고민하다 보면 어느 사이에 다른 일을 하고 있다. 누군가를 생각하다 아이팟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바꾸고, 메신저에 접속한 김군하고 이야기를 한다던지. 아니면 한쪽에 밀어놓았던 일거리를 처리한다. 그것도 아니라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공부에 열중한다. 때로는 원철군에게 문자를 날리기도 하고 블로그에 올려놓은 그림을 감상한다.

지금 나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없다다. 앞으로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 있나고 다시 묻는다면 그 대답 역시 없다다. 혹자는 이런 상태를 자발적 독신 상태라 한다. 하지만 요즘만큼 결혼이 땡겼던 적은 16살 이후 없었던 것 같다. 어쩌면 결혼이란 굴레가 가져다 주는 마음의 안정을 되도록 빨리 누리고 싶은 모양인지도 모른다. 어차피 평생 독신으로 살 수는 없는 몸. 누군가를 또 다시 사랑하고 헌신하게 될까봐 두려워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만…

그런데 사람의 심리란 참으로 미묘하다. 더 이상 그 누구를 위해서도 헌신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자꾸만 훔쳐보고 싶다. 마치 저 화단 뒤에 숨어서 이름 모를 여인을 바라보는 보이지 않는 남자처럼. 그리고 그런 보이지 않는 남자와 여자를 관찰하는 또 다른 남자처럼.

사랑하는 사람도, 좋아하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가끔 이름 모를 누군가를 그리워 한다. 어쩌면 그리워 한다 착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제는 그 대상조차 막연하다. 마치 이른 봄날 따스한 햇살을 그리워 하는 것처럼 그렇게 그리워하고 동경한다.

그러면서도 귀찮은 것은 딱 질색이라는 내 마음은 무엇일까? 내 시간을 뺏기는 일도, 마음을 주는 일도, 배려해주는 것도 싫다. 대화가 필요하긴 하지만 구속되고 싶지는 않다. 상대에게 이해를 구걸하는 일은 죽기보다 싫다. 나를 사랑하고 꾸미는데 사용되는 시간과 자원은 전혀 아깝지 않으나 상대에게 주고 싶은 것은 하나도 없다. 단조롭고 고루한 일상이지만 이런 일상에 생기는 작은 변화조차 싫다.

나만의 자유 시간을 즐기고, 지적 쾌락을 충족시키기 위한 갖가지 취미에 열중한다. 아름다운 것에 끌리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시선을 잡아끄는 곡선을 바라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근래들어 내가 추구하는 지적 쾌락의 지속성과 강도에 비할 바가 아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지만 그 모두를 그리워 한다.

어쩌면 한순간 과거의 이런 저런 사건들을 모두 잊어버린 채 어제 보고 오늘 다시 보는 것처럼 다가갈 지도 모르겠다. 맹세란 나를 규정하기 위한 다짐이지 상대가 따라야할 의무는 아니니까. 맹세보다 중요한 것은 나의 행복인데. 맹세에 얽매여 있는 것은 너무 바보같은 행동일지도 모른다. 삶은 기회가 있을 때 즐겨야 한다는 그 말. 모르지는 않지만 조금은 두려운 유혹이다.

넉달만에 전화를 들었다. 머리속 깊숙한 곳에 숨겨진 번호를 찾아 누르는데 원철군에게 전화가 온다. 이 것 또한 운명이겠지 하는 마음으로 원철군의 전화를 받는다. 행운인지 불행인지. 아니면 거센 운면의 농락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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