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야 혹은 일상…

가끔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한 눈에 읽다’ 란 문구와 마주하게 된다. 아주 어린 시절, 혹은 고등학교에서 대학으로 이어지는 긴 시간 동안 난 저 문구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글을 글자 단위로 읽는 것이 아니라 줄이나 단락 단위로 음미할 수 있는 사람들 틈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설명할 때 그저 “무슨 책, 혹은 어디에 보면 나와’ 이상의 대답을 들은 적도 해본 적도 없다. 그런데 요즘의 하루를 사노라면 모든 사람들이 평등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것은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된다.

사람의 시야란 참으로 재미난 성질을 지니고 있다. 일반적으로 어떤 사람은 넓은 시야를 가진 반면 어떤 사람은 매우 좁은 시야를 지닌다. 물론 넓은 시야란 것이 얼마나 익숙하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는다. 좁은 시야를 지닌 사람조차도 어떤 것에 익숙해지다 보면 넓은 시야를 가지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는다.

하루 중 나의 시야를 가장 오랫동안 채우는 것은 내용 연수가 끝나가는 퍼스널 컴퓨터의 화면과 현재 읽고 있는 레베르떼의 남부의 여왕. 그리고 맨큐의 Macro Economic이다. 음. 퇴근 후에는 거의 아이북을 켜놓고 사니 실질적으로 가장 오래 내 시야를 차지하는 것은 이것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기에 이것만큼은 매우 신경 써서 섬세하게 고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침대나 창틀에 걸터앉아 책을 읽고 있노라면 컴퓨터는 각종 정보를 날라다 준다. 메신저에 표시되는 닉네임들은 친구들의 현재 상태를 가장 압축적으로 전해주며, 메일은 5분 간격으로 확인된다. 또 B&O A8과 아이튠즈의 조합이 들려주는 음악은 항상 신난다.

데스크탑에는 매혹적이기 그지없는 제시카 앨바의 사진과 최근 마음에 들기 시작한 Amanda Bynes의 사진이 교대로 돌아가며, 가끔은 소설의 한 챕터를 넘길 때마다 체스를 둔다. 최근에 사용하기 시작한 퀸-나이트 콤비네이션을 가다듬기 위해 엄청난 수 계산을 한다. 나이트와 퀸을 제외한 나머지 피스는 상대를 혼란시키거나 진로를 막는 단순한 역할만을 한다. 외통수에 걸리기 한 수나 두 수 직전에 먼저 체크를 부르는 기분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외로움에 익숙해지다 보면, 그런 삶이 일상이 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일상적인 외로움 속에서 재미를 찾아내는 것이 사람이라고 한다. 그리고 외로움 속에서 시야는 넓어졌다 줄어 들었다를 반복한다. 단락 하나쯤은 한눈에 읽을 수 있지만 내 삶을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우연앞에서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눈먼 사람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오늘을 최대한 행복하게 즐겨야겠지만 말이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