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차분했던 날

이 길을 같이 걸었을 때는 스물 둘이었는데 벌써 스물 넷이나 먹어버렸군. 암담하기만 한 시간이지만 때로는 너무 훌쩍 흐른다는 생각도 들어. 요즘의 난 과거 따위는 없는 그런 유령인간처럼 구는데도 이 기억만큼은 아주 또렷해.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래.

이 길을 산책하면서, 시간이 흘러 다시 이 길을 산책하면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어. 목에 걸린 가시처럼 나를 괴롭히기도 했고, 때로는 내 행동을 정당화시키는 기준이 되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 때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아. 눈으로 본 것은 또렷한데 머리속으로 대충 생각해 놓은 문제들은 항상 잊어버리곤 하는 거잖아.

요즘 난 내가 한 실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 삶이란 것이 항상 그렇지만 아무일도 없었던 하루가 삶의 중대한 전환점이 되는 것 같아. 실수인지도 모르고 넘어갔던 과거의 한 순간이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몰고 오곤 하지. 그리고 그 날 내가 결코 포기할 수 없다 말했던 내 삶이 바로 그런 것이었음을 몇 주전에야 깨닫게 되었어.

뭐랄까? 구차하고 치사스럽기는 하지만 이제야 나에게 있어 정말 네가 중요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있어. 이런 저런 고통으로 난자당한 후에야 찾아오는 이런 깨달음은 항상 때늦은 것이란 생각이 들어. 하지만 돌이키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지? 너에게나 나에게나. 그리고 그 때나 지금이나 난 포기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으니 말이야.

난 늘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너에게만은 예외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오래지 않아. 다른 사람을 위해서, 나를 아껴주지도, 사랑해주지도 않을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쓰여졌던 헌신이 왜 너를 위해서만큼은 한번도 쓰여진 적이 없는지 모르겠어. 내가 포기할 수 없었던 것들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었는지 이제는 가늠조차 되지 않는데 왜 난 생각조차 희미한 과거에 묶여 있는 걸까? 넌 이유를 아니? 난 모르겠어.

요즘의 난 아무도 사랑하지 않아. 작은 호의를 가진 사람도,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세밀하게 관찰하는 사람도 없어. 내가 열광하는 것은 깔끔한 갬비트와 플롯, 그리고 명석한 사람들의 주장이야. 사랑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대화의 필요성도 인정하지 않아. 귀찮게 내 삶을 낭비할 생각도 없고, ‘멍청한’ 이야기에 감미로운 음악을 들어야할 내 귀가 더렵혀지는 것도 싫어.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아도 들여다 보이는 그 썩어빠진 의도도 싫어. 그보다 더 싫은 것은 명백하게 보이는 의도를 모르는 것처럼 숨기는 것이고. 어쩌면 타인에 대한 애정 결핍인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이런 나라도 여전히 괜찮냐고 물었겠지? 그런데 더 이상은 그렇게 묻지 않아. 나이를 먹으면서 생각하는 방식이 변하고 또 말하는 방식도 변해가더라고. 그러면서도 난 이렇게 차분하기만 해. 좀처럼 흔들리지 않아. 내가 내 삶에서 진정 원하는 것은 기억도 추억도 없는 빈한한 사람이 되는 것뿐이야. 차라리 행복을 몰랐더라면 지금 주어진 것만으로도 영원히 행복할 수 있었을 텐데. 왜 항상 부족하게만 느껴지는 것일까?

저 길을 너와 걷던 날. 비록 제 정신은 아니었더라도 가장 차분한 날이었음을 기억하고 있어. 차라리 차분하지 않은 혼란스러운 정신이었다라면 실수였노라고 스스로를 정당화 시킬 텐데. 그럴 수 없군. 여기까지가 나에게 주어진 것이었나봐.

12 thoughts on “가장 차분했던 날”

  1. 큰일 치루느라 수고했네. 날씨가 참 좋다. 놀러가기도 좋은 선선한 바람도 불고. 그냥 공부나 하려구. 지금은 인천인데 저녁에는 복귀할 수 있겠지. ^^ 즐거운 연휴되시게.

  2. 지금은 누님꺼 손보고 있네. 아이콘도 새로 만들고 있고.
    누님꺼 스킨은 빈센트 반 고흐가 제목이 될 것 같아.
    내 것은 살짝 빌려온 스킨인데 누님꺼는 일일이 제작 중인 거라서 말이야.
    내 것도 스킨은 새로 만들까 하는데… 난 이렇게 밝게 만들 자신이 없네.
    무채색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런 Y계열의 색이 다소 낯설거든.

    그런데 왜 인천인가? 어제 오후까지만 하더라도 몸에 힘이 없어서
    쉬어야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또 당구 바람이 불었구먼.
    재무관리 에세이도 써야하고, 생산관리 숙제도 해야 하지 않았던가?

    어제 오후에는 잠시 친구와 벚꽃을 배경으로 사진 몇장 찍었네.
    며칠동안 면도를 하지 않은 까닭으로 매우 허허로운 분위기의 사진이 되었지만
    간만에 찍는 사진이라 매우 기분이 좋았지.

    오후에는 청소좀 하고 작업하던 것 마무리 짖고
    누님하고 사진이나 찍으러 갈 생각이야.
    그럼 연휴 잘 보내시게나!

  3. 힘도 없는데 감히 ROTC 2년차인 데다가 체교과인 ‘그녀석’과 내기 테니스를 해서 져버렸다. 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어. 그리고 멜주소 바뀌었네. choiwc@korea.ac.kr –> ‘wc_choi@korea.ac.kr 원래 있던 아이디에는 메일 기능이 없더라고. 그래서 바꾸었으니 그리 알고 계시게. 이제부터 집 정리하고 공부해야지. 참, 희수가 법대 후배 소개시켜 준다고 하더군. 더 재밌는 사실은 신입생이래. ㅋㅋㅋㅋ

  4. 어째 염장섬 멘트로 들리는데. 그런데 어쩌냐?
    이 몸은 이제 연예에 관심이 없는데 말이야…
    아무튼 잘해 보라구. 얼굴에 가죽하나 덮어 쓰고,
    절대 사정 봐주지 말고. 너무 사랑 하지도 말고.

    예전의 난 바라볼 사람이 없다는 것이 무척이나 견디기 힘들었거든.
    지금의 너처럼. 그런데 요즘은 그런 사람이 없는 것이 더 편하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좋아한다는 것. 생각보다 정신적 에너지 소모가 커.

    그리고 무엇보다 귀찮은 일이기도 하고.
    생각하는 방식도, 살아온 날들도 다른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가
    오만이라고 생각되거든. 그런 까닭에서 내 쪽에서 꺼려지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이 곳에는 나를 현혹시킬 그 어떤 유혹도 없다.

  5. 경영학이 딱 내 적성인 듯 하다. 법대로 갔으면 싫증을 느꼈을 만큼 요즘 재무와 회계에 푹 빠져 지낸다. 회계수업도 들을만 해서 좋고. 이제 생활패턴만 안정화 시킨다면 끝이야. 이게 어려워서 문제지만..ㅋㅋ

  6. 아주 긍정적인 현상이야.
    회계와 재무는 기본기나 마찬가지라구.
    그렇다고 내가 잘한다는 것은 아니지만…ㅋㅋㅋ

    생활화의 안정화야 낯시간이 바쁘고 번잡할 수록
    밤에 딴 짓 할 시간이 없어질테니
    점짐적으로 나아질 것으로 믿어지네.

    다만 염려되는 것은 잠이 너무 늘어나는 것이야.
    어느 사이에 시나브르 늘어난 잠이 벌써 7시간에 달했다네.
    자네는 나처럼되지 말게나.

    6시반이면 눈이 떠졌는데 지금은 7시 40분에야 눈이 떠져.
    물론 7시 10분에 일어나서 30분은 더 침대에서 뒹구는 것이긴 하지만.
    그 30분을 채우지 못하는 편투통에 시달려 하루 종일 짜증만 낸다는…

  7. 큰일이야. 고기가 질리기 시작했어. 이제 앞으로 밥은 무슨 반찬하고 먹어야 하지?ㅋㅋㅋ 사랑을 날로 먹으려 하면 안 되는데, 언제나 머리 속을 지배하는 것은 공부에 대한 압박이기에 요즘은 무엇을 하더라도 즐겁지가 않다.

  8. 지붕을 완성했구만. 어쩐지 지난번 것은 쓱싹 그린 듯 한 기분이었는데. 좋아.^^

  9. 지붕을 완성한 것이 아니라.
    스킨을 여러 개 제작하고 있는 중이야.
    현재 컨셉은 빈센트 반 고흐라네.

    사랑을 날로 먹으러는 자세는 어떤 면에서는
    아주 바람직한 자세라고 생각해.
    예전에는 절대 이렇게 말하지 않았겠지만.
    되도록 날로 먹을 것을 권하는 바일세.
    요즘의 난 그 옛날에 뭘 믿고 그렇게 순수한 척 했는지
    가늠이 되지 않거든.

  10. 오호…그런 것이었군. 내가 원래 ‘회’를 많이 좋아하니 가능할 것도 같아.ㅋㅋㅋ 젠장 오후 3시에 잠들었는데 벌써 새벽 4시야. -_- 어떻게 학원도 째버릴 수가 있는 것이지? 아무래도 문제가 있어. 어서 정상생활을 영위하고 싶다.

  11. 정상 생활응 영위하는 방법…
    낮잠은 절대 피한다. 낯시간을 아주 빡세게 보내라.
    커피나 담배는 절대 피한다.

    아직 학기가 널널한가 보군.
    정상적인 학기라면 지금쯤 잠이 부족해를 연발해야 정상일 텐데.
    숙제가 그렇게도 없냐?

    정상 생활을 못하는 자신을 탓하는 에너지를 조금 더 생산적인 곳에 쓰도록.
    난 여름이 끝나기 전에 내 방에 꼽힌 경영학 단행본을 모두 읽기로 결심.
    대략 2만 페이지 내외인데. 하루에 200페이지가 가능할지 모르겠어.

    그리고 어제 부의 대전환 다 읽었다.
    아주 재밌는 책이었어.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현실에 깊이를 더해준 책이기도 하고.

    그런데 너 어느 세월에 공부하고, 어느 세월에 취미를 즐기고
    어느 세월에 애인 장만 할래?
    내 시간은 멈춰 있지만 네 시간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흘러간다는 사실 잊지 말게나.
    제대와 동시에 네 삶의 시계는 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흘러가기 시작했다구.

  12. 그러게.. 항상 반성만 하고는 돌아서면 잊어버리니. 큰일이야.
    커피는 피하고 있는데 담배가 문제네. 그리고 낮잠은 안 자려고 노력중이야.
    그리고 중간고사 준비에 들어갔다. 그간 너무 놀았더니 이제 준비하려구.
    마치 여기가 우리의 채팅방이 되어버린 듯. 어서 다른 글 올리시게.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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