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피면…

햇살이 따사롭다. 따사로운 햇살을 무기로 어두컴컴한 동네에서 체류 중인 주영군을 놀려볼까 했으나 되려 카운터 펀치를 맞았다. 메신저를 통해 날라온 염장질의 정수인 두 문장에 정신은 아득하게 멀어져만 간다. 그리고 난 여태 그런 문장을 아무에게도 선사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새롭게 인식한다.

유독 벚꽃이 필 무렵이면 영민군이 생각난다. 18살 이전의 내게 있어서 벚꽃이란 특별한 의미를 지닌 존재가 아니라 정말 ‘사쿠라’에 불과한 단순한 꽃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18살 봄 벚꽃은 단순한 꽃에서 연원 모를 향수를 자극하는 특별한 무엇이 되어 버렸다. 어쩌면 그 나이를 먹어서야 특별한 의미를 발견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바람에 날리는 벚꽃과 비에 젖어 무거움을 더해가는 꽃잎을 보고 있노라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은 떨어져 내리는 벚꽃을 보고 있노라면 까닭 모르게 감상적이 되어 버린다. 결국 18살 공부에 열중해도 시원찮을 그 시기에 난 벚꽃을 주제로 삼류 하이틴 로맨스를 쓰고 말았던 기억도 새삼 생각난다. 비오는 날 몇 해전 가을에 담아둔 국화주를 나누는 부자가 나누는 그들의 집안사에 관한 이야기인데 지금은 어디에 뒀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아무튼 봄만 오면 영민군이 생각나는 이유는 그가 건넨 한마디 말 때문이다. 19살 운동장에 앉아서 햇볕을 쬐는 중에 터트린 그 한마디가 봄을 항상 즐겁게 만들어 준다. 어쩌면 벚꽃이 만발한 산책로를 걸으며 가슴에 이는 생동감 자체만으로도 즐거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벚꽃을 추억하는 사내들의 마음에는 무언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뭐랄까? 주변 친구 그 누구에게 물어봐도 벚꽃에 가벼워진 그 마음을 건네줄 명확한 실체가 없다. 조금 더 쉽게 설명하자면 벚꽃이 투영하는 이미지는 그가 사랑했던 특정 대상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의 사랑할 가능성이 있는 그녀다.

물론 처음 이런 설명을 들었을 때 나 역시 강한 거부의 몸짓을 보였던 기억이 있다. 적어도 난 그런 적이 없다고… 벚꽃이 피어나는 이 즈음에 생각나는 그 사람은 명확한 실체를 지닌 그녀라고 강변했던 적도 있다. 그런데 잠시 기억을 헤집어 보면 명확한 실체를 지녔다 주장했던 그녀는 불투명한 음영이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벚꽃이 화사하게 피어날 즈음에 뭇 사내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이 기류를 봄바람이라 부른 것인지도 모르겠다.

올해도 어김없이 벚꽃이 피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영민군을 만나 우리를 괴롭게 만드는 그 바람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물어 볼 것이다. 그리고 올해도 어김없이 그 길을 걸으며 나트륨등에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벚꽃을 머리 속에 담을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몇 십년 된 벚꽃나무 벤치에 앉아 내 과거를 읊을 것이고 얇은 면셔츠에 드러나는 부드러운 곡선에 달아 오를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것 뿐이다. 비가 내리고 도시가 거대한 꽃들의 무덤이 될 그 즈음에는 해마다 반복되는 꿈에서 깨어나 진홍색의 화사한 덩굴 장미에 매료될 것이다. 어쩌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꿈꾸지 않는 지루한 일상을 반복할지도 모르고… 어쩌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나이를 먹을지도 모르겠다.

8 thoughts on “벚꽃이 피면…”

  1. 단정치 못한 머리는 처음이군. 엄청 멋있어 졌는 걸.ㅋㅋㅋ 또 수업에 빠졌다. 차마 전화통화에서는 말 못 했지만…

  2. 수염은 나흘이나 기른 것이고(자세하게 보면 전부 이어져 있음)
    머리는 2월 24일날 다듬고 여지 내버려 둔거야.

    살아 생전 이렇게 오랫동안 머리를 방치해 둔 것은 처음이야.
    앞머리는 코 끝까지 내려오고 있고 이제 조금만 더 견디면
    나도 고등학생 스포츠 머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네.

    그리고 저 날은 토요일이었는데 퇴근 후에 집에서 낮잠자고 있다가
    호출받고 집앞에서 차로 납치당한 것이야.
    바람도 제법 불었고 햇볕이 눈부셔셔.. 눈이 매우 작게 나왔지.

    뭐. 눈이 작게 나오다 보니
    인상이 조금 초췌해 보이고 부드러워 보여
    개인적으로 아주 마음에 들고 있어.

  3. 그래. 내가 보기에도 정말 인자한 사람같은 부드러운 인상이라 정말 맘에 든다. 비록 30대 중반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눈이 이토록 선하게 나올 수도 있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군. ㅋㅋ

  4. 원철아 우리 누님이 wc는 너무 웃기다는군.
    wc가 왠지 화장실 같다나..
    그냥 wch로 돌아와 주게나!!

  5. 내가 그 점을 간파 안 한 것은 아니네만…싸나이가 갑바가 있지!! 그냥 ‘화장실’하련다.ㅋㅋㅋ
    너무 초라해 보일 것 같아서 일부러 쓰는 것이니 크게 신경쓰지 마시게. 그냥 웃으면 되지 안는가. *^^* 자네가 엠에스엔에 접속 중인데도 리플을 남기는 것은 이상하지만.. 친구의 은둔을 방해할 수는 없으니 그냥 그러려니 생각하라구.~

  6. 우림 누님에게 그렇게 전해주마.
    뭐 우리 누님도 거의 장난이었음…
    나 보고는 그놈의 동굴이라 놀러 대던데

  7. 오빠~ 사진이 넘 초췌해 보여요..ㅡ.ㅡ;;ㅋㅋ
    농담이구요~ 여기는 방명록이 따루 없나봐요~어디있는지 못찾아서
    그냥 여기에 글써요.. ㅎㅎ
    중간고사 기간이 다가오긴 했지만 뭐
    그리 긴장은 하고 있지 않지요. 음하하

    참! 저 교환학생 합격해서 8월달에 미국으로 나간답니다.
    이제 국제적으로 놀아야지요..으흐흐

    날씨가 넘 좋아요 ㅠ_ㅠ

  8. 헉… 좋겠군. 어디로 가는데?
    1학기 짜리 아님 1년 짜리? 동부냐 서부냐?
    아무튼 축하한다.

    장과장 7월 1일자로 면할리는 없고
    9월 1일자는 미국에서 쓰겠군.
    옛날 동석이형, 지훈이형이 유럽 여행중에 받았다던 압박감을
    너 역시 경험할 것 같은데…

    아무튼 4월 말에 보자.
    대충 언제가 마감인지 메시지 날리도록,
    참… 수습은 채용했니?
    올해에도 우먼 파워가 강세였을 것으로 전망된다만…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