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Vacation

원철군의 공작으로 기억이 되살아 나고 있다. 그리고 하루를 보내면서 10분 이상 고민하게 된다. 10분 이상 고민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 것은 정말 싫은데 말이다. 어쩌면 애당초 기억을 완벽하게 지워보려던 나의 시도 자체가 불가능한 도전이었는지도 모른다. 원철군이 사랑이란 거친 감정에 휩씁리면 휩쓸릴 수록 나역시 감정의 편린들에 젖어들어간다. 그리고 기억한다. 까마득한 옛날부터 어제까지의 일들을 말이다.

처음에는 흐뭇할 줄 알았다. 되살아 난 기억에 잠시라도 흐뭇해 할 줄 알았다. 그리고 어쩌면 되살아난 그 감정에 모든 것을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귀찮음만 늘었다. 되살아난 기억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난감해하고, 현재 누리는 삶의 평화를 방해 받을까 두려워 한다.

지금의 난 2년짜리 특별 휴가를 즐기는 중이다.(젠장. 20개월 밖에 안남았다.) 이곳에서 난 휴가 중의 변덕스런 관광객처럼 산다. 일반적으로 모든 것에 무관심하지만 가끔은 아주 사소한 것들에 관심을 갖기도 한다. 음악을 즐기고, 편안한 마음으로 책을 즐긴다. 가벼운 마음으로 공부를 하기도 한다. 가끔은 할 일 없는 불쌍한 나와 놀아달라 투정을 부리지만 항상 그렇듯 시간은 늘 빠듯하다.

철들고 내 삶에서 가장 평화로운 때가 아닌가 싶다. 스스로를 제약하는 어떤 의무와 구속도 없으며 감정을 지배하는 마음도 없다. 바쁘게 살아야 할 필요도 없다. 달마다 쫓겨야 했던 마감도 없으며 중간 고사, 기말 고사의 압박도 없고, 타인에 의해 감정이 상처받을 일도 없다. 이곳에서 난 오직 내 감정만 소중하게 여긴다. 다른 사람의 감정에 신경쓰는 법이 없다. 휴가지의 관광객들이 그렇듯 이곳은 떠나면 그만인 곳이므로.

가끔은 거시경제학의 법칙들을 유도하기 위해 열심히 미분를 하고 도함수를 구하는 내가 대견스럽다. 경영학의 명저라 불리는 책들을 아무런 방해 없이 느긋한 마음으로 즐긴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사진을 찍고, 벤치에 앉아 선량한 동네 청년처럼 아이스크림을 먹기도 한다. 과거는 안개 속에 묻혀 있지만 현재의 내 삶에는 늘 햇살이 맑게 떠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조금은 허전하다. 친구가 그립고, 과거의 기분 좋았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혼자있다는 것에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졌지만 사람많고 번잡한 때가 조금은 그리운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보고 싶어한다. 한 5분 정도

5분이 지나면 휴가를 떠나는 가벼운 기분으로 다시 새로운 것들에 몰두한다. 블로깅과 독서, A8로 클래식 새로 듣기, 엄청나게 밀린 스스로와의 약속. 삶을 지나치는 소소한 사건들..

원철군이 되살려 낸 기억은 유통기한이 매우 짧다. 하룻밤 잠과 함께 다시 흐릿하게 지워진다. 나의 것이지만 오늘의 나와는 어떤 연관성도 없는 존재하되 지급받을 수 없는 부도수표와 같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이미 충당금 계정에서 비용 처리해버린

그럼 흐릿한 과거는 과거대로 남겨놓고 휴가나 즐겨볼까? 20개월 남은 특별 휴가를 말이다

11 thoughts on “Special Vacation”

  1. 시험에 대한 압박은 전혀 없다. 군에서 배운 것은 배짱 뿐인가? ^^ 그러나 8월과 2월에 있을 시험에 대해서는 서서히 긴장이 되고 있어. 참, 오히려 조금 전이 좋았다. 한 사람을 알게 된 것은 행운이 아니라 불행이었나봐. 삶이 전보다 더 엉망으로 흘러가고 있어.

  2. 그것이야. 네 주변에서 CPA 하나로 올인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은연중 심어주고 있기 때문이야.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추야.
    문제의 본질을 바라보는 능력이기도 하고…
    뭐 긴장하란 소리는 아니지만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기회가 왔을 때 잡아채라…

    2월에 시험보고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얼마나 후회했는 줄 아냐.
    어쩌면 구차하게도 5월에 발표가 나면
    marking failure가 패착이라고 말할지 몰라. 아는 문제를 놓친 것이 실수라고..

    그런데 진실은 그 순간의 실수 때문이 아니었던 것 같아.
    2003년 한해를 내던졌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지.
    어느 쪽도 놓친 나처럼 되지 않기를 빈다

  3. 그래. 아직까지는 온뭄을 던져서 CPA준비를 하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어서 맘을 정해야지. 하지만 실패한다고 해서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야. 시험성적이 안 나온 것 뿐이지 실력이 없는 것은 아니잖아. 그리고 내가 딴 일을 할 것도 아니니. 처음부터 학교성적과 실력을 쌓기위한 나만의 구속물로서의 목표였다.

    참, 어제는 학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술에 적당히 취한 커플이 보였다. 둘 다 스타일이 좋은 속칭 ‘킹카퀸카’커플이었는데 여자가 남자에게 자꾸 키스해달라고 하더라. 남자는 살짝 살짝 입을 맞추었는데 보면서 이상하게도 전혀 맘 상하지 않았다. 다만 좋은 그림이라는 생각만 들었을 뿐. 그리고 부러움. 또한 감정이입

  4. 방금 총선 예비조사가 나왔다.
    무척 우울한 결과야. 총체적 리더십 부재 상태가 지속된다면 어떻게 될까?
    가장 중요한 시점에서 지속적으로 자원이 낭비될 것 같아.

    페리클레스의 사후에 대한, 혹은 리산데르의 승리 후에 대한
    글을 읽고 싶어진다. 지금과 그 때의 차이가 무엇일까?
    아무래도 없겠지.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니까.
    항상 그렇듯이 인간은 부조리한 존재야…

  5. 이봐이봐~ 그것은 나만의 행각이 아니었어. 싸이를 하는 모든 이들의 행각이야. 어제 두녀석이 사람 찾는다고 무려 30개의 미니홈피를 열어대는 통에 컴이 최적화에서 멀어져버렸다. 두녀석이 모니터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줄 알고 걱정했다니까. 그리고 이제 당분간 그럴 일 없다. 지금은 한 사람에게만 집중하기로 했어. ^^

  6. 뭐 녀석들이야 그렇다 치자고…ㅋㅋㅋ
    하지만 난 스토커질에 단 3분만에 성공했다고…
    나의 검색 기술과 뛰어난 행간 해석 능력의 공헌이라 자축 중이네.
    미니홈피를 서른 개나 여는 그런 막노동은 절대 사절이야…ㅋㅋ

    자네가 스토커질에 몰두한다는 소리를 듣지만 알았어도.
    내 이렇게 스토커 행각에 동참하려는 용기는 없었을거야.
    뭐 자네도 하니까 하는 생각에 머리속에 담긴 정보를 꺼내서 재구성했지.ㅋㅋㅋ

  7. 학교에 너무 늦게 나왔다. 7시에 일어나기는 했는데….9시가 넘어서 나왔더니 열람실에 자리가 없네. 그냥 강의실에서 공부해야겠어. 그나저나 이제 완연한 ‘여름’같아. 벌써 흐르는 땀을 주체할 수가 없네. 26개월간 약해진 눈도 햇살에 적응을 못하고 있어. 어서 선글래스를 장만해야지. 수고하게나.

  8. 선글라스가 있으면 뭐하나.
    이곳은 너무 시골이라 선글라스 끼고 다니면 정말 이상해 보인다고…

    참… 입이 너무 벌어져서 당황스럽네.
    왠지 모르게 기분 좋은 느낌이야.
    매우… 그리고 힘이 나네… 조금 전까지는 정말 shit스러웠는데 말이야.
    이런 기분 너무 오랜 만이야.

  9. ‘shit 스러웠다’ 는 말은 도대체가 어떤 의미란 말인가.ㅋㅋㅋ 사람이 이렇게까지 집착하게 될지는 몰랐다. 내가 생각해도 나의 집착은 대단한 것 같아. 어떤 의미에서는 ‘집념’이 강하다고 표현할 수 있겠군. ㅋ

  10. 기분 나는 대로 해석하면 될 것 같군.
    말이 안된다는 것은 알지만 표현력의 한계려니 생각해줘…

    뭐 집념 경쟁에 불을 붙이자는 것은 아니지만
    20년간 비어있던 지갑 포켓에 사진 넣어 보려는
    내 의지가 조금 더 강하지 않을까 싶다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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