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섬이 아니다.

기분이 좋다. 행복하다. 기분 좋은 나른함이 몇 년은 젊게 만든다. 열 여섯 소년 같다. 첫사랑을 맞이한 소년처럼 마냥 행복하다. 이유도 모른체 히죽거리는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은 따갑다. 하지만 행복한 마음에 아무런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 행복감이야 말로 최고의 진통제라 누가 그랬던가?

막내 누이의 말대로 난 섬사람이 아니었나 보다. 지난 몇 달 동안 섬사람, 혹은 섬이 되기 위해 노력했었다. 타인에게 영향을 받고 구속 당하는 삶을 더 이상 살기 싫었다는 편이 정확하리라. 하지만 한해를 채우기도 전에 난 한번도 섬사람이었던 적이 없었음을 깨닫는다. 그래. 난 단지 섬을 동경하고 가장하고 있었던 것 뿐이야. 너무나 외로운 자신을 숨기기 위한 이론적 근거로 섬이 되고자 했던 것이지. 단지 그것 뿐이야…

24살 봄. 또 다시 여행을 시작한다. 한달 가량 목적을 잃고 나른함에 함몰되어 있던 삶은 서서히 깨어난다. 전략 목표를 세우고 세부 계획과, 텀 오브젝트를 구성하느라 머리 속이 바쁘다. 멈춰있던 머리에 기름칠이 되는 듯한 착각과 함께 까닭 모를 성취감이 가슴 속 밑바닥에 쌓여간다. 좋은 게 좋은 거지. 하고 되뇌어 본다.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 여행이라는 사실 만큼은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이번 여행마저 실패로 끝나고 나면 더 이상 여행을 다니지 않을 생각이므로…. 그렇지만 마지막 여행이니 만큼 최선을 다해볼 참이다. 누이의 말대로 어쩌면 난 짝사랑 전문가일지도 모른다. 짝사랑 전문가의 문제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다를지도 모르겠다. 사랑을 받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사랑을 주는 것에는 미숙한 불균형이 우리를 이렇게 만든 것이 아닐까?

2004년 4월 19일. 내가 받은 특별휴가가 이제 20개월 남았다. 잿밥이 큰 exam을 통과하고 부족한 것들 채우기에는 조금 촉박해 보인다. 29개월로 계획되었던 휴가의 1/3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지나가 버렸다. 이 기간동안 내가 한 일이라고는 한숨 쉬기와 난쟁이질을 위해 필요한 몇 가지 지식을 습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각성하자. 그리고 반성하자. 그리고 나선 행동하자!

2004년 4월 17일 섬이 되기 위한 정책은 포기했다. 이제 더 이상 난 스스로가 섬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원래 섬이 아니었으니 주장 하나만 포기하면 끝인 이야기지만 시간이 지나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미 또 다시 시작 되어버린 걸….

7 thoughts on “인간은 섬이 아니다.”

  1. 역시 내게는 공부가 우선이었어. 엄밀히 말하자면 ‘성적’이 우선이었다. 가장 공을 많이 들인 재무관리를 형편없이 망쳐버렸더니 모든 것이 다 싫다. 심지어 ‘아가씨’마저도. 다시 1학년 때 생각들이 난다. 근처에 개운사도 있던데 한번 알아볼까? 암튼 지금 정신이 하나도 없고, 더구나 자네의 충고를 무시하고 나 혼자 공부한 것이 가장 큰 실수였다. 기말을 잘 치러야 하는데….왠지 기말도 뒤통수를 날릴 듯…

  2. 이런.. 일단 그 기분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네.
    지나간 과거를 가지고 후회하는 것은 너무 비생산적이란 말이지.
    날 보라고… 지난 몇달동안 얼마나 비효율적이었던가?

    마음의 평정심이야 말로 우리들이 지녀야 할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해.
    일회일비하는 것이 필부필녀라지만
    우리까지 그럴 필요는 없잖는가?

    남은 과목이나 완벽하게 클리어 하라구.
    그리고 시험 한 과목에 영향받을 애정의 깊이라면
    아예 시작도 하지 말라 권해주고 싶군.
    오늘처럼 쉽게 싫어질 대상이라면 지금의 자네 노력이 과하다.

    고민하지 말고, 일단 주어진 일부터 하나씩 처리해.
    나이를 먹을 수록 단단하고 여물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3년 전과 지금이 같을 수는 없잖는가?
    나이를 먹고 이미 성장해 버린 우리들인걸?
    힘내게나. 일회일비하는 필부필녀가 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3. 자네 알잖나. 내가 솔직히 누구에게 깊이 빠지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을. 전형적인 ‘B’형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그게 어째 나한터는 더 강한 듯. 이렇게 소란이라도 피우지 않으면 이성을 좋아하는 감정은 봄볕에 눈 녹듯 사라져 버리거든. 그리고 내게 가장 의미가 있는 것들에 영향을 주면 그런 소란은 더이상 내게 의미가 없어지지. 암튼 내가 생각해도 난 정말 이상한 놈이야. 애들이 말하는 ‘원철스럽다’는 것 이외에는 날 수식할 말을 찾지를 못하겠다는 뜻을 알 수도 있을 것 같다. 암튼 이번 시험기간이 끝나면 뭔가 남는 것이 있겠지. 지금은 당장 주어진 과업에 최선을 다하련다.

  4. 시험기간인데
    게다가 요즘은 행복할 일만 많은데
    갑자기 기분이 울적해 져서 왔어.
    잘지내고 있네.
    대문 그림 좋다………

  5. 아침에 일어나보니 물안개가 지상을 점령했군.
    신문이나 읽을까 하다가 그냥 침대에서 뭉그적 거리고 있네.
    바람 냄새가 좋다.

    자네가 말한대로 일단은 주어진 과업에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어.
    다른 문제야 차후에 고민해도 늦지 않는 것이니 말이야.

    그런데 ‘B형’의 특징에 너무 얽매여 있는 것 아닌가?
    혈액형이 성격을 결정한다는 것은 어딘지 합리성이 부족해 보이네.
    그것으로 스스로의 행동에 기준을 세우는 것도 개연성이 부족해 보여.

    네 혈관속을 흘러다니는 항체가 지금의 너를 규정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너를 만들어 가는 것은 네 의지라고… 핏속에 무엇이 들어 있으냐가 아니라.

    근래들어 유난히 관심이 많아진 혈액형에 대한 속설로
    앞으로의 가능성이나 개성에 압박감을 가하지 않도록…
    참 MIS시험 잘 보기를 바라네.

  6. 은주양 반갑네.
    대문의 그림은 반 고흐의 것이야.
    예술 작품에 대한 예의는 아니지만
    이미지 사이즈에 맞추니라고 캔버스의 상하를 조금씩 잘라버렸어.

    아무리 행복한 일이 많아도 가끔은 까닭모를 우울함에 무너지는
    것이 우리네 보통 사람들이니 너무 놀라지 말라고…
    아무튼 시험 잘 보게나.

    그런데 우리 언제 한번 봐야 하지 않겠는가?
    작년 여름계절학기때 보고 지금까지 제대로 본 기억이 없는 것 같네.
    (2003년 9월 30일날 스친 것 빼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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