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F.L.

앗! 이럴 수가
한참을 기다리던 그녀가 메신저에 접속했다. 입가에 한 가득 웃음이 걸린다.
“오호! 이게 얼마 만이야?”
무슨 말로 이야기를 시작할까? 어떤 호칭으로 그녀를 불러볼까 하고 잠시 고민에 빠져본다. 그런데 어쩌란 말인가? 오늘따라 유난히 일이 많다.

마음 속에 갈등이 인다.
“지금 당장 말을 걸어. 지금하고 있는 일이란 것이 내 인생에 중요한 것은 아니지 않아? 오늘 하나 내일 하나 똑같은 귀찮고 짜증나는 일이 뿐이라고..”
그런데 편집광적인 내 성격은 이런 속삭임을 단호하게 거부해 버린다. 하나만 더 하자. 5분이면 충분하다고. 여기까지만 하고 그 다음에 그녀에게 말을 걸자. 설마 5분 안에 사라지기야 하겠어?

5분이 지났다. 메신저를 열어 보니 이미 로그 아웃한 다음이다. 허탈한 마음과 스스로의 좀스런 성격에 대한 비판이 온몸을 지배한다.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지. 또 얼마나 오랜 시간을 지루하게 기다려야 하는 건지 알기나 해. 운이 좋다면 하루일지도 모르겠지만 운이 나쁘다면 몇 달이 될 수도 있어.”

“넌 지금 타이밍을 놓친 거야. 인생은 99%의 타이밍과 1%의 노력으로 결정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자네… 지금 자네가 놓친 것은 노력으로도 만회할 수 없는 바로 그 타이밍이었다고…”

속마음 숨기기
근래 들어 난 또 다시 ‘속마음 숨기기’란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겉으로는 평온, 선량함 그 자체지만 내 마음은 달아오를 대로 달아 있으며, 속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나답지 않은 연기를 펼친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보자’는 말 따위는 절대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뱉는 말이 아닌데 수줍은 십대처럼 속마음을 숨기기에 급급하다. 아! 나의 뻔뻔스러움은 어디로 간 걸까?

갑자기 ‘얼굴 빨개지는 아이’의 삽화가 생각난다. 내 속마음을 투명하게 비출 수 있는 거울이 있다면 지금 내 표정이 저러지 않을까? 평소에는 쓰지도 않는 생활어를 배워보려고 노력하는 내 자신이 얼마나 미쁜지 모르겠다. “아 저렇게 쓰는 것이구나.” 예전의 나였더라면 차라리 읽기를 포기했겠지? 하지만 요즘의 나는 그녀의 일상어에서 따스함을 느낀다. 화석어 속의 삶을 영위하던 나에게는 마냥 신선하고 부드럽기만 그녀의 말투에..

11 thoughts on “to F.L.”

  1. 맞아요..타이밍..정말 중요하죠..!
    글 읽으면서 많은 부분에 동감 했다는;;

    홈페이지가 참 아담하고 아늑한 분위기네요..
    잘 놀다 갑니다…^^

  2. 요즘 들어 부쩍 가슴이 답답한 경우가 많다.
    원래 말을 막(?) 하는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말이 목까지 나왔다가도 다시 들어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게 말하면 안되잖아.. 저렇게 하면 ?

  3.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담하고 아늑하다는 칭찬에 기분이 붕 떠버렸습니다.

    주변에서는 늘 아저씨같은 말투라던지,
    혹은 groomy하다고 갈구기 일 수라서요.

    종증 들려주세요.
    타이밍을 추구하지만 늘 그 타이밍을 못맞춰
    괴로운 동지 한명이 있을 테니까요.ㅋㅋ

  4. ‘시간을 사고 싶다’
    전적으로 동감하네.
    지금도 늦은 것은 아니지만 공부하다보면
    흐르는 시간을 붙잡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야.

    지선과 술 마시기는 힘들어.
    녀석이 너무 잘 마시는 관계로…^^

  5. 난 아직 자기 전에 내일 아침 로또에 당첨되는 상상을 하지는 않는데
    시간을 되사는 상상은 늘상 한다네.
    오늘이 아깝고, 어제가 아깝고, 너무나 아까운 시간 뿐이야.

    혹여 시간을 되돌리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아낌없이 나를 불사를 수 있을텐데.

    그런데 생각해 보니
    아직도 늦지는 않았는데 왠지 지금 불사르기에는 자신이 없다.
    아 이 연약한 인간의 본성!!!

  6. 어이
    누구야 또…
    어째 맨날 짝사랑이냐.. 성질나게
    좀 제대로 해라 엉

  7. 누군지 궁금해? 궁금하면 찾아보라구.
    아줌마 추리력이라면 30분안에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게다가 난 친철하게 힌트를 많이 남겨 놓잖아?

    아무튼 나의 외사랑을 너무 몰아 부치지는 말라고.
    외사랑은 늘 아쉽기에 기억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라고.
    외사랑이 아닌 사랑은 끝맺음과 동시에
    머리속에서 홀가분하게 사라지는 법이라던데…

  8. 익아…
    머리에 기억되는 것이 많은 것은 자랑이 아니라고 보는데..
    영원이 아니라면 소용없는 것이잖어.

    지금 내 체력으로 3일째 술을 마시는 미친짓을 하고 있다.
    오늘만은 술을 안 마시려 했지만, 설마 저녁식사도 안 하고
    술집으로 가자고 할 줄은 몰랐다.-_-

  9. 그렇긴 하다.
    그런데 저기에서 기억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의미는
    그부분 만큼은 표출이 많이 되었다는 의미로 사용된거야.
    다시 말해 아무도 모르는 다른 일들도 꽤 있소. 뭐 이런 뜻이지.

    아무튼 하룻밤 오지게 아팠더니.
    모든 것이 시답잖아졌어.

    그냥 내 맘대로 살래.
    촛불처럼 이리 저리 촛농을 떨어트려
    생명을 태우는 일은 그만 둘까 한다네.
    하여튼 이 딴지꾼…

  10. 대략 난감한데.
    난감… 또 난감….
    알다시피 내 핸드폰 9번에 입력된 사람이
    현재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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