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안 기각에 관하여

누가 그들을 최후의 양심이라 불렀던가?
지난 금요일 10시 30분. 법익을 논하는 헌법재판소장의 주문는 듣는 순간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버렸다. 더 이상 들을 필요도 없었다. 대한민국의 최고 엘리트라는 사람들이 저렇게 용기 없고 생각이 짧은 사람들이었단 말인가? 장기적인 법익과 단기적인 법익을 구분하지 못할 만큼 저들이 살아온 시대가 배부른 시대였던가? 일부 언론에서는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이라 평할련지 모르겠지만 이번 헌재의 결정은 헌법 수호 기관이 헌법 자체를 유린한 첫번째 케이스로 연구될만 하다. 물론 법관의 양심이라는 또 다른 헌법상의 원칙에 의하여 책임은 지지 않겠지만 말이다.

이번 헌재의 주문에 담긴 배경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통치는 심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재확인 한 것이 첫째이고, 두번째는 사회와 역사를 관통하는 법익 개념이 아니라 법익의 기술적 해석 기법을 심리에 적용시켰다는 사실이다. 결국 이 두 가지 배경으로 도출된 결론은 [위헌성은 있으나 종국적 결정(즉 파면)을 할 정도로 중대하지는 않다]이다. 그리고 이런 결론으로 부터 외연되는 또 다른 원칙은 [일부 초헌적인 행동이 있더라도 직위의 중요성이 현저하게 크다면 일부 초헌적 행동으로 파면되지는 않는다]란 원칙이다.

가장 나쁜 결론
헌재의 판결을 듣는 순간 키케로의 카탈리나 탄핵 연설에 대한 카이사르의 반대 연설이 생각날 수 밖에 없었다. -지금 Senatus Consultum Ultimum 를 사용하는 이가 키케로라면 나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후세에 이것이 독재자가 로마를 억압하려는 수단으로 사용하려 한다면 누가 이 것을 견제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Roh 는 키케로가 아니며 키케로와 비교될 만한 인물도 아니다. 하지만 상황만큼은 여러 모로 비슷해 보인다. 이번 헌재의 결정은 사실상 독재자와 무능한 대통령일지라도 임기를 실질적으로 보장받게 하는 기판력을 지닌다. 한마디로 내란 선동이나 친위 쿠테타, 국회의 승인을 받지 않는 침략 전쟁을 일으키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가 어떤 대통령인가에 상관없이 임기를 채울 수 있다는 말이다.

혹자는 사태의 심각성을 간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시 [그가 어떤 대통령인가?]로 돌아가자. 만약 국군통수권과 국가의 최고 집행력을 지닌 대통령이 위에 언급한 범죄 행위를 저지르게 된다면 실질적으로 누가 그를 처벌할 수 있을 것인가? 혹여 이런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더라도 후세의 어떤 대통령이 독재로 국민을 억압한다면 누가 국민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인가? 통치는 심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거듭 천명하는 헌재일까? 국민의 의사에 반한다는 논리로는 증명 불가능한 법원을 기각 사유로 삼은 헌재가 과연 우리를 보호할 수 있을까?

조용한 재야
그런데 무엇보다도 가장 격렬한 반응을 보여야 할 재야가 너무 조용하다. 80년대 피와 땀으로 이룩해낸 성과물이 이렇듯 허무하게 사라지는 데에도 모른척 방관하는 재야의 태도가 사뭇 이상스럽다. 헌재의 판단이 비겁하다는 작은 외침조차 없다. 사실상 이번 헌재의 결정으로 9차 개정 헌법 과정에서 성취한 대통령제에 대한 견제 기능이 상당수 유명무실해졌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쩌면 재야는 스스로에게 배반당하고, 또 스스로를 배신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스스로 믿을 수 있다 착각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나서는 배신당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이번에는 스스로의 신념을 배신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의미에서 헌재의 이번 결정은 독재로 가는 길을 또다시 열어 놓았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독재라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야할 재야의 침묵은 무슨 이유일까? 가장 최선의 방법은 피를 흘리고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피를 흘리지 않고 이기는 법이라는 사소한 진리조차 모를만큼 어리석은 사람들이었던 것일까?

헌재가 바보가 아니라면..
사실 탄핵 문제에 있어 최선의 해법은 탄핵 심리가 착수되기 전에 대통령 자신이 사의를 표명하는 것이었다. 헌법 명문에 규정되고 있지 않지만 법은 지켜야할 최소한이지 지켜야 할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어른이라면 탄핵안이 가결되는 순간 사의를 표명함이 마땅하다. 헌법에 대통령의 탄핵 절차를 특별하게 따로 규정한 것은 헌재에게 대통령의 탄핵을 심판하라는 의미라기보다는 대통령 자신에게 정치적 선택의 기회를 주기 위함으로 해석하는 것이 법의 정신에 부합된다.(이번 헌법에서 제외된 국무위원의 불신임 파면권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정치적 선택의 기회를 대통령은 포기했고, 헌재는 헌법 기관으로써 국가의 3권 분립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심판에 맞닥뜨렸다. 그리고 심리 과정에서 국회의 공격은 최고 수준이었다. 법리싸움에서 대통령측 변호인단은 Roh를 위헌이라는 굴레에서 구해낼 수 없었다. 더욱이 소추위원에서 내놓은 카드는 헌재가 통치는 심판하지 않는다는 비겁한 원칙을 마지노선 삼아 싸우지 않을 정도로, 기술적 해석으로 죄는 있으되 벌할 만큼 중죄는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효과적이었다.

헌재가 바보가 아니라면 이런 두 가지 원칙이 가져올 여파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당장은 아닐지 몰라도 누군가를 이번 심판을 악의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막을 방법은 현행 헌법 안에서는 이제 전무하다. 결국 흐름은 필연적으로 헌법 개정으로 흘러 갈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기각 결정이 가져온 법익이 인용 결정으로 가져온 법익보다 큰 것일까? 단언하건데 헌법을 개정하는 것보다는 대통령 선거를 다시하는 것이 열배는 쉬운 일이다.

4 thoughts on “탄핵안 기각에 관하여”

  1. 맥 사용자 이신가봐요. ^^
    문장마다 찍히는 음표는 MSN 의 문제가 아니라 P.C.I 님이 쓰시는 서체의 문제입니다. 혹시 XP 용 서체나 기타 윈텔머신 용 서체를 사용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
    이 코멘트는 확인하고 지워주세요. ^^:; 관련없는 포스트에 글을 남겨 죄송합니다.
    이 포스트에 해당하는 코멘트는 따로 남기겠습니다. 🙂

  2. /하노아님
    18살 부터 지금까지 맥만 써왔습니다.
    (이러면 오래된 것 같죠? 실은 7년차 입니다.)
    포럼에 포스트된 글을 읽고 저도 폰트북을 검색해봤는데요
    저의 경우에는 애플컴퓨터코리아에서 제공하는 X용 서체만 쌓여 있었습니다.
    결국 MSN의 버그로 보기로 마음 먹고.. 원래 MS가 그렇지 하는 마음으로 쓰고 있답니다.

    포스트와 코멘트에 대한 제 블로그의 방침은
    (방침이라니 매우 거창해 보입니다만….)
    반드시 관련성이 있을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코멘트가 흔한 것이 아니기에 아쉬워서 이러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관련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코멘트를 이어가며
    친구와 필담 주고 받기를 즐기는 저로서는
    코멘트를 남겨 주셨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답니다.

  3. 아앗, 그러시군요! ^ㅁ^ 제가 주제넘은 짓을 했습니다!!;;

    …. 그런데 정말 이상한걸요.. 저는 그런 문제 전혀 없거든요?;;

  4. ㅋㅋ 주제넘다니요
    전공이 컴퓨터가 아닌 경영인 저로서는
    포럼의 버그 퇴치법만이 유일한 희망이랍니다.
    포럼에 소개되는 이런 유용한 팁이 없었더라면
    맥 라이프도 조금은 끔찍해지지 않았을까 싶군요.

    아무튼 제 경우는 제가 봐도 조금 특이한 경우가 아닐까 싶습니다.
    최근 어둠의 경로가 아닌 정상 루트로 입수한 팬서를 새로 설치하면서
    아이북에 깔린 서체와 애플리케이션들을 세심하게 조정했거든요.
    전문가가 아닌 일반 유저 입장에서 MS가 일으키는 폰트 문제는
    그냥 포기하는 쪽이 유익하다고 몇해 전부터 잠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

    오늘은 간만에 병가를 내고 누이의 호빵맥으로 게임을 즐겨볼까 생각중입니다.
    미스트를 할지 스트롱홀드를 할지 고민중이긴 하지만요.
    그럼 즐거운 하루 되세요!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