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신

아침에 눈을 뜨니 메시지 하나가 도착해 있었다. 지난밤에 누가 메시지를 보냈을까 하는 호기심이 앞선다. 내 소중한 친구들 가운데 늦은 밤 잠에 빠져 있는 대신 문자를 보낼 사람들은 없었으므로. 게다가 매일처럼 메신저에서 보는 사이에. 싸이의 방명록과 블로그를 통해 수많은 소식을 주고 받는 터에 귀찮게 손가락을 놀려 메시지를 보낼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르는 번호다. 아니군. 모르는 번호는 아니지만 기억에서 사라진 번호다…

[#M_ 메시지의 주인께| 이제 충분합니까? |

건강하냐구요? 예 건강합니다.
뭘 잘못 했는지 모르겠다구요? 저도 모릅니다. 그런 사소한 것들을 기억하고 되새김질 하기에 내 삶은 너무 바쁘고 할 일이 많거든요. 빈약한 삶을 행복한 기억만으로 채우기도 벅찬 것이 인생이기에 전 낭비 같은 것은 안하고 살려 하거든요.

용서해 달라구요? 뭘 잘못 했는지도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나에게 용서할 자격이 있을 지 의문이군요. 하지만 용서를 통해 마음의 평화를 얻어야 두 다리를 뻗고 잘 수 있는 성격의 분이라면 그냥 용서해 드리죠. 용서한다는 한 마디에 말에 값이 드는 것은 아니니까요.

고맙고 미안하구요? 정말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고마워 할 일이 있으신가 보죠? 미안하다는 말은 관용어쯤으로 해석하겠습니다. 고마운 마음만은 기쁜 마음으로 받아 들이겠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을 요구하려는 의도라면 이쯤에서 멈추어 주셨으면 합니다. 난 당신이 2004년 1월 3일 포스팅한 처음이자 마지막이다란 제목의 글을 읽지 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 읽지 못했다고 생각하신다면 지금 다시 읽어 보세요. 방금 pubic 시켰습니다.

그 글에서 밝혔던 것처럼 친구란 존재는 나에게 정말 특별합니다. 그와 내가 친구가 된 까닭 모르지만,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애인을 사랑하는 마음에 준하는 애정과 헌신을 받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당신에게 내가 다시 그런 감정을 줄 수 있을지 진지하게 생각해 봅니다. 난 정말 자신이 없네요. 당신이라는 사람. (너무 먼 거리이기 때문에 정확한 판단은 어렵겠지만) 1년 전이나 5달 전이나 지금이나 전혀 변화가 없기 때문이죠.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 있던 과거의 난 당신에 관하여 가장 많은 것들을 알고 있던 사람가운데 하나였다고 판단됩니다. 그런 내가 이토록 강경한 데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까? 그 까닭을 깊이 생각해 본 적 없죠? 나의 콘텍스트를 이해하고 싶다고 즐겨 말하던 당신이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하나도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얼마나 지독하게 나에게 충실하려 하는지 이해하고 있지 않네요.

친절을 가장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주변의 권유대로 [오랜만이야]로 시작되는 문장을 건네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입니다. 겉보기에는 그럴 듯 하겠죠. 하지만 난 더 이상 당신에게 우정을 주기 싫은데 어쩔까요? 타인을 사랑할 줄 모르는 당신에게, 내가 가장 사랑하던 사람들에게 늘 억지 마음만 보이던 당신에게 우정을 줄 수 있을까요? 나를 향한 우정이 그런 억지 마음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없는 나로서는 당신을 나의 친구라 부를 수 없습니다.

당신이 잘못한 것은 없습니다. 용서할 것도 없구요. 각자의 사는 방법이, 우정의 의미가 다를 뿐입니다. 혹 당신 다른 사람이 되었나요? 마음 하나만큼은 진짜라고 우겨 댈 수 있나요? 혹 조금 변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 뿐이지요. 그렇다면 내가 잃어버린 것들 뭐가 됩니까? 생각 좀 하시지요. 내가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거라고는 단지 한때의 동료였던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는 소소한 친절뿐입니다. 그 이상을 요구하는 것은 무엄한 행동이겠지요. 타인에게 너무 과하게 요구하는 것은 되려 결례가 될 테니까요.

_M#]
낯설다. 꾸밈이 아니라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과거의 흔적들을 찾아 봐야 할 정도로. 이른 아침 신문을 볼 시간을 도큐멘트 폴더의 이 파일 저 파일을 살펴보는 데 할애했다. 한 주의 시작치고는 그 다지 개운한 출발은 아니다. 게다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실망할까? 너무 냉혹하다고 말할지도 모르고, 혹자는 나를 삼두육비의 괴물로 알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자칫 내가 좋아하기 시작한 그녀가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더욱 내가 나쁜 사람이 되어 버린다고…

너무나 외로울 때면 메시지의 주인공에게 연락하고 싶은 유혹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순간도 어느덧 지나버렸고 초월의 단계에 접어 들었다. 한때는 메시지의 주인이 위치했던 자리가 마냥 부러웠던 적도 있다. 여전히 메시지의 주인을 둘러싼 주변 사람들을 좋아하고 있었기에.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부러움도 적어 진다. 나에게 허락된 행운이 딱 거기였노라고 체념하고 나면 그다지 아파할 것도 없다. 더 이상 내 자리가 아니라고 포기하고 나면 여운이 남기는 하지만 수용하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기에.

단지 그럴 따름이다. 단지 그럴 따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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