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트로이와 일리아드2

4, 메넬라오스와 헬레네, 그리고 파리스

영화에서 파리스와 결투를 벌이다 엉겁결에 헥토르 손에 죽은 메넬라오스는 실제로는 전쟁의 최대 수혜자 가운데 하나이다. 잃어버린 아내를 되찾았을 뿐만 아니라, 형인 아가멤논처럼 귀국 후 암살당한 것도 아니고, 오딧세우스처럼 10년이랑 방랑 끝에 고향에 되돌아 온 것도 아니다. 폭풍을 만나 이집트에 도착한 메넬라우스는 이집트와의 무역으로 더욱 풍족해진 전리품을 가지고 스파르타에 돌아와 행복을 만끽한다.

그렇다면 전쟁의 원인으로 알려진 헬레네는 어떻게 되었을까? 영화에서는 파리스와 함께 불타는 트로이에서 빠져나온 것으로 묘사되지만 헬레네는 메넬라우스 손에 돌아온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헬레네를 가진 남자가 상당히 많았다는 것이다. 파리스의 전사 이후 헬레네는 두 명의 트로이인 남편을 더 거느렸으며 이들은 모두 전투 중에 전사했다. 결국 남편 잡아 먹는 여자로 찍힌 헬레네는 더 이상의 남편을 거느리는 영광을 유지하지는 못하지만 신화에 기록된 헬레네의 남편은 4명이다. 얼굴값 한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은 아닌 것이다.(그리스 신화에서는 최고 기록이다.)

한편 영화에서는 헬레네가 트로이의 헬레네가 된 것으로 나오지만 일리아드에서의 헬레네는 그리스와 트로이 사이에서 외줄을 타는 고도의 기예를 보여준다. 트로이성에 침투한 오딧세우스와 디오데메스를 도와주며 오딧세우스가 팔라디온의 방패(영화에서는 검으로 표현된다. 트로이를 지키는 보물로 알려져 있다)를 그리스 군으로 훔쳐가는 과정에 지대한 도움을 주기도 한다. 결국 트로이 함락 이후 헬레네는 오딧세우스의 증언 아래 다시 스파르타의 헬레네가 된다.

한편 영화 속에서 탈출에 성공하는 파리스와 달리 신화 속의 파리스는 필록테스의 독화살에 맞아 숨을 거둔다. 특이할 만한 사실은 죽음의 고통 속에 파리스가 찾은 사람은 헬레네가 아니라 옛 애인인 오이오네라는 사실이다. 파리스의 치료 요구를 거절한 오이오네는 곧 후회하며 파리스를 찾지만 이미 숨을 거둔 다음이다. 오이오네는 파리스의 시신을 화장하는 장작단에 몸을 던짐으로서 그리스 비극에 소재 하나를 더해준다.

한편 특이할만한 사실은 파리스와 메넬라오스와의 결투 이후(파리스의 비겁함으로 결투가 어이없게 끝났지만) 헬레네와 파리스의 관계가 삐끗 거렸다는 사실이다. 이 결투 이후 노골적인 헬레네의 외줄 타기 행각이 벌어지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5. 영화 속의 아작스와 두 아이아스

영화 속에서 거대한 워 해머를 휘두르는 무사는 아작스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성벽에서의 전투 중에 헥토르의 손에 전사한다. 하지만 일리아드에 등장하는 아이아스(즉 아작스)는 두명이다. 이들은 작은 아이아스와 큰 아이아스로 불렸는데 이들은 모두 전장이 아닌 조금 어이없는 곳에서 어이없이 삶을 마감한다. 먼저 아킬레스와 쌍벽을 이루는 무용를 소유하고 있던 군인 중의 군인 아이아스는 아킬레스의 사후 벌어진 장례 경기에서 오딧세우스에게 아킬레스의 갑주를 얻는 영광을 가로 채이고 만다. 자존심 강한 아이아스는 결국 자살로 삶을 끝맺는다.

한편 작은 아이아스는 아킬레스만큼 빠른 걸음과 몸놀림으로 유명했으며 트로이의 목마에 올라타 일리아드를 함락시키는 영광을 얻게 된다. 하지만 성이 함락된 다음 프라이모스의 딸을 신전에서 겁간하게 되는데 이것이 여신의 분노를 사 벼락을 맞고 수장된다. 전쟁이 끝난 이후 그리스 연합군이 귀로에서 만난 거대한 폭풍은 이 아이아스가 여신의 신상이 있는 곳에서 벌인 이 희대의 강간 사건이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6. 아킬레스와 파트로클레스, 그리고 브리세이스

브리세이스는 일리아드에서 아가멤논과 아킬레스의 불화를 일으키는 중요한 원인이 되는 여인이다. 하지만 영화와 달리 브리세이스가 아가멤논에게 빼앗기게 되는 경위는 조금 다르다. 그리스 군의 해안도시 습격 전투에서 최고의 미인인 크뤼세이스는 아가멤논에게 주어지고, 그보다 조금 못한 브리세이스는 아킬레스에게 주어지게 된다.

그런데 크뤼세이스는 아버지를 잘 둔 덕에(아폴로의 신관이다. 딸은 잃은 신관이 그리스군에게 저주를 내린 것을 신에게 청탁했다.) 아가멤논의 마수에서 벗어나게 되고, 째째한 아가멤논은 앞장서서 크뤼세이스를 포기할 것을 요구한 아킬레스에게 대신 브리세이스를 줄 것으로 요구한다. 결국 아가멤놈에 버금갈 째째함과 소심함으로 무장한 아킬레스는 [나 전쟁 안 해]를 연발하며 전선을 이탈한다.

아킬레스의 이탈로 그리스군이 위기를 맞는 가운데 파트로클레스는 아킬레스의 갑주로 무장을 하고 전투에 나가 선단을 불 태울 정도로 접근한 트로이군을 무찌른다. 이 과정에서 제우스의 아들인 사르페돈을 전사시키고 트로이 성벽에 까지 이른다. 하지만 그에게 허락된 영광은 방벽에서의 전투까지였고 영화처럼 헥토르의 손에 전사한다.

하지만 파트로클레스와 아킬레스의 사이는 영화처럼 사촌 형제 사이가 아니었다. 파트로클레스는 아킬레스의 친구이자 시동이었고 조금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두 사랑은 동성애 관계로 보인다.(그리스 시대에 동성애는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그리고 일리아드 전체를 토대로 볼 때 아킬레스는 양성애자가 확실하다. 아킬레스가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경위나 후에 목마에 올라타 혁혁한 공훈을 세우는 아킬레스의 아들(네오프톨레무스)의 존재로 볼 때 요것은 거의 확실하다) 아무튼 아킬레스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전선에 복귀해 트로이군을 학살하는 부분에는 애인을 잃은 남자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이상한 광기의 분출로 보인다.

다음 포스트에 계속

10 thoughts on “영화 트로이와 일리아드2”

  1. 5명으로 보자면 테세우스에 의해 납치된 경우까지 세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납치하고 결혼은 엄연히 다른 것 같은데…
    일단… 확실한 결혼식까지 올린 확실한 남편들은
    메넬라오스, 파리스, 데이포보스등이고 또 다른 트로이인의 이름은 확실히 기억나지 않는군.
    에우리피데스의 헬레네, 안드로마케, 트로이의 여인들을 보면
    헬레네의 대사 중에 파l스가 죽고 두명의 트로인인 남편을 가졌지만 모두 죽었지요란 구절이 있다고.

    이설에 따르면 헬레네가 이집트에 있었다는 설도 있고(트로이에 간 것은 허상이었다는 설이지)
    메렐라오스와 죽어 이리시온에 간 것이 아니라 메넬라오스의 아들들에게 쫓겨가
    로도스에서 비참한 여생을 보냈다는 설도 있고,
    복수3부작으로 불리는 오레스테스에 보면 필라데스에 의하여 헤르미오네와 함께 체포되었는데
    연기로 사라졌다는 이설도 있다고…

    뭐 우기고 싶다면야.. 5명으로 처주지!

  2. 응…
    요즘은 1시간 이내면 일이 끝나는 터에.
    남은 7시간 동안 한가하다네.
    그렇다고 더위에 공부가 잘되는 것은 아니구 말이야
    ㅋㅋㅋㅋ

  3. 테세우스가 납치했을 때의 헬레네는 너무 어려서, 그는 그 여자를 ‘정상적인 방법’으로 갖지 못했다고 합니다.
    제 생각에 이집트로 갔다는 설이 더 오래된 원형을 보존하는 것 같은데 서구 사가들한테 영 인기가 없더군요. 저 여자는 아무래도 현실의 여성이라기보다는 신적 존재에 가까운 것 같거든요. (그렇게 오랜 기간에 걸쳐 이뻤다는 것 자체가…)

  4. 저도 그 문장을 읽었는데요 ‘정상적인 방법’으로 갖지 못했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원문을 읽어봐야 정확한 의미가 들어오겠지만 전후 맥락이 없는 그 문장에서 ‘정상적인 방법’으로 갖지 못했다는 말이 가지지 못했다인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가졌다 인지 구분이 어려워요. 심증은 비정상적인 방법이라는 뉘앙스가 더 강하지만 머리로는 가지지 못했다로 해석하기로 결정했답니다. 사실 비정상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저로서는 모르겠거든요.

    근래에는 헬레네가 이집트에 갔다는 설이 작가들에게는 더 많은 지지를 받는 것 같습니다. 이집트의 이시리스가 헬레네의 원형이라는 말도 있고, 이름이 기억나지 않은 어떤 여신이 그리스로 건너가면서 헬레네가 되었다는 말도 있지요. 하지만 신화는 기원에 대한 은유일테니까요. 서구 사가들의 외면도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닙니다.

  5. 제가 읽은 문장은 좀 더 노골적인 표현이었습니다만… 웹상의 공중도덕과 청소년 보호를 위해… 음음. ;;;

    ‘트로이’ 식으로가 아니라 아예 봉신연의 식으로 화끈하게 신들의 이야기를 다뤄 버리는 ‘일리아드’ 영상화도 재미있을 텐데 말이에요. (실사판 케산이나 데빌맨 비슷해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6. 역시 ‘정상적’으로는 가지지 못했다라는 해석이 옳은 것이었군요. 하지만 아직도 구체적으로는 감이 잡히지를 않네요. 인터넷상의 공중 도덕과 청소년 보호를 하면서도 저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묘수가 있으시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혹 templar들이 고발당한 죄목에 있는 그 방법인가요?

    신들의 이야기를 너무 화끈하게 다루면 그것이야 말로 공중 도덕과 청소년들에게 심각한 위해를 가하지 않을까 싶지 않습니다. 아침 드라마의 불륜이나 간통마저도 신화에 비하면 너무 많은 도덕적인 고뇌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다? 게다가 세리 로즈 시리즈같은 어정쩡한 시리즈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7. 대략 그 방법이 맞다는군요. (사실 사람하고 사람이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뻔하잖아요? 신화 이야기란 것 자체가 그런 데 대한 상상력의 소산이고)

  8. 둘 중에 하나를 꼭 골라야 하는 상황이라면 전 페르세포네를 약탈하러 갔을 듯 싶네요.
    왠지 자기 절제 안되는 아저씨의 대책없는 주책내지 이상도착으로 보일 수 있는 부분이잖아요.(이렇게 생각하는 제가 더 웃깁니다만)
    블라드미르 나보코브의 그 소설은 재미 있게 읽었습니다만 테세우스와 헬레네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의 번안본은 왠지 우울한 조크가 될 듯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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