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도시

소설을 읽고 나면 일반적으로 수다쟁이가 되는 것이 보통이다. 느낌에 대해, 작가에 관해, 플롯과 결말에 관하여. 한적한 찻집이 있다면 책 한 권을 소재 삼아 몇 시간동안 대화를 나눌지도 모른다. 그런데 가끔 이런 일상에서 크게 벗어나는 책들이 있다. 도대체 [할 말]이 없는 책들 말이다.

그렇다고 이런 책들의 재미가 부족한 것은 결코 아니다. 주제가 가벼운 것도 아니고, 플롯과 결말이 엉성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문학에 흥미가 있다면, 아니 작가라는 직업에 흥미가 있다면 그 [대가다움]에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런 책에 관해서 쓰는 것은 어렵다. 무언가 읽을 거리를 찾는 친구에게 서슴없이 권할 수는 있겠지만, 그 책을 다 읽고 나면 무슨 연유인지 우리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만다.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는 앞에서 부연한 [이런 책]들 가운데 하나이다. 소설을 읽는 데 필요한 시간은 하룻밤이면 충분하지만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쓰기까지 반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 듯 싶다.(지난 반년동안 일곱번의 시도가 있었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머리 속에 떠오르는 느낌은 너무 분명한데 부족한 표현력으로는 어느 것 하나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었기에 그랬다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이겠지만…

소설의 핵심을 이루는 장치는 어느날 아무런 이유없이 눈이 먼다는 설정 하나다. 그리고 이 질병이 [가능성에 대한 의심]만으로 전염된다는 부연 설정 하나뿐이다. 하지만 이 설정은 매우 강력해서 내가 만약 악마라면 한번쯤 이런 질병을 만들고 싶다는 위험한 상상을 불러 일으킨다. 내가 진짜 악마라면, 인세를 아비규옥으로 만들고 싶다면, 꼭 실행에 옮길 그런 사악한 질병이다.(여기에서 작각의 상상력에 한 표. )

오직 악마만이(그리고 작가만이) 상상해 낼 수 있는 이 질병은 진짜 맹인이 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시신경이나 안구 자체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지만, 이 질병에 감염된 사람들의 시각은 순백의 부유물로 가득 채워진다.(영민군은 이 순백의 부유물이 매우 끔찍했다고 했다. 나 역시 시각이 검정이 아닌 순백의 부유물로 가득 채워진다는 표현에 토할 것만 같았다. 아마 눈이 멀었다는 사실보다 시각을 가득채운 순백의 부유물에 먼저 미쳐버렸을 것이라고..)

[눈먼 자들의 도시]에 대한 총평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섬뜩하다’ 란 한 마디로 충분하다. 어떤 기담보다 무섭고, 어지간한 서스펜스나 호러 물은 이 책에 담긴 섬뜩함에 견줄 바가 못 된다.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력은 무섭도록 정확하고 예리해서 반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가슴 싸늘한 이야기를 담고 있음에도 행간에서 디스토피아적 분위기가 베어나는 것은 아니다.

안개 속을 헤매고 있음에도(실제로 한 사람만 제외하고 다들 눈이 멀어 버렸으니.) 수많은 폭력과 죽음이 인물들을 스쳐가지만 어딘지 담담하다. 폭력과 죽음에 굴복하는 분위기도,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분위기도 아닌 이상한 담담함이 소설의 행간을 채운다. 매우 끔찍하고 잔인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마지막 장과 조우할 수 있는 숨겨진 이유야 말로 이런 담담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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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고유 명사가 한번도 등장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소설에서는 고유 명사를 사용하기 보다는 처음 눈이 먼 남자. 안대를 한 늙은이, 의사 등의 단어로 사람들을 표현한다. 고유 명사가 아닌 일반 명사와 대명사 광범위한 사용은 소설의 거리를 미묘하게 만든다. 일반적으로 고유 명사의 사용은 인물을 명확하게 설정하는 데 비하여 비극인 경우 등장 인물의 고통을 나와 이원화 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다시 말해 비극적인 상황 자체가 남의 일처럼 느껴지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제인이 눈이 멀었어와 그녀가 눈이 멀었어를 비교해 보시길)

하지만 비극에서 일반 명사와 대명사로 정의된 인물은 어딘지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일상적인 서술 상황에서의 대명사 사용은 차분하고 담담한 느낌을 전달해 주지만 폭력과 죽음이 난무하는 상황에서의 대명사는 되려 거리를 더욱 가깝게 만들어 준다. 고유 명사로 정의된 인물은 나와는 상관없는 타인이지만 대명사로 정의된 인물은 어떤 식으로든 나와 연관을 맺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법이기에…

1998년 주제 사라마구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할 당시 눈먼자들의 도시는 [맹목]이란 제목으로 국내에 소개되었다. 영어제목은 [Blindness] 그런데 소설을 다 읽고 난 지금에 이르러서는 블라인드니스보다는 맹목이라는 제목이 보다 적절한 제목이 아닌가 싶다. 보지 못하는 사람과 보는 기능이 마비된 것은 어딘가 다른 것이 아닐까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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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ified 2004.10.20

7 thoughts on “눈먼 자들의 도시

  1. 블로그에 살짝 다녀왔습니다.
    정말 독서량이 많으신 것 같은데요.
    이런 저런 일들에 치이다보면 한 주에 한 권도 힘든 것이 저의 일상인 것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가시지 않습니다.

    눈 먼자들의 도시는 제가 읽어왔던 소설 가운데
    몇손가락에 꼽을 만큼 재밌는 소설이었습니다.
    제 어설픈 서평으로는 결코 담아내지 못할 ‘무언가’가 있다고 해야할까요.

  2. 모두가 눈이 멀었기에, 어차피 서로를 구분할 수 없기 때문에 이름이 필요없다고 하더군요. 첫번째로 눈이 먼 남자의 집에 살던 작가는, 이름을 묻는 의사의 아내에게, 이 목소리가 나요, 라고 대답합니다. 그런 의미인가 봅니다.

  3. “스스로 조직해야지, 자신을 조직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눈을 갖기 시작하는 거야.”

    “우리가 이루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기적은 계속 살아가는 거예요, 여자가 말을 이었다, 매일 매일 연약?

  4. 기억을 되살려 보니 확실히 그런 대화가 있군요.
    소설의 뒷부분에 나오는 터라 첫번째 남자의 집에 살던
    작가와의 대화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하나의 가능성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갈 부분이 아니었나 봅니다.

    전 처음 격리되던 순간에 각자를 소개할 때부터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암묵적으로 가정되었다고 생각했거든요. 이름이 아닌 일반 명사와
    대명사를 사용함으로써 구체적인 배경이 아닌 독자의 배경으로
    사건을 이해하게 만들 소설적 장치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봐야 겠네요.

  5. BLINDNESS – JOSE SARAMAGO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자동차 운전석에 앉아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던 사내가 갑자기 눈이 먼다. 이것은 시작일 뿐. 원인불명의 실명은 마치 ..

  6. 눈먼 자들의 도시를 빌려 읽었습니다. 찾아보니 같은 시리즈로 눈뜬 자들의 도시, 이름없는 자들의 도시가 있죠. 눈이 멀었다는 상황을 통해서, 작가는 사람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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