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뮤트 뉴튼殿

헬뮤트 뉴튼을 처음 알게 된 때가 언제쯤인지는 잘 기억 나지 않는다. 대략 16살에서 17살 무렵으로 기억되는데 그 이상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orthopedics nude와 big nude 시리즈의 존재를 통해 난 그를 알게 되었고, 십대 중반의 나에게 그의 사진은 상당한 충격이었다. 12살부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누드화는 앵그르의 샘(泉)이라 공언하던 나였지만 본격적인 전라의 누드 사진을 본 것은 그의 것이 처음이었으니 그럴 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내가 그의 예술성을 인정했던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단지 Nude와 Porno는 엄연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그를 인용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당시의 난 그의 Nude와 Porno사이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그저 Nude는 봐도 Porno는 보지 않는다는 윈칙만을 줄기차게 고수했을 뿐. 그의 탁월함이 무엇인지는 하나도 몰랐다.

시간이 흘러 그는 올 1월에 불의의 사고로 타계했고, 7월 10일 난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전시중인 그의 사진전을 보러 갔다. 사실 어느 정도 그의 작품 목록을 알고 있던 나에게 전시회는 가슴을 두근 거리게 만드는 특별 이벤트였다. 처음 헬뮤트 뉴튼을 접했던 십대 소년에게 실물 크기의 누드라는 Big Nude는 매우 충격인 영향력을 줄 작품으로 상상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키보다 조금 작은 늘씬한 모델들의 누드 사진을 보면서 내가 느낀 충격은 전무했다. 실물 크기의 사진을 인화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스튜디오가 필요했으리라는 생각과 이렇게 커다란 사진을 섬세하게 담아내기 위한 조명량, 그리고 신체의 어느 부분 하나 흔들리지 않고 담아낸 기법에 놀랐을 뿐이다. 초점에서 멀어질수록 미세하게나마 포커싱이 흔들리는 법인데. 진짜 여자가 누드로 서 있는 듯 나신을 훑는 내 눈이 닿은 모든 부위가 실물처럼 명확하게 보였다.

하지만 단지 그것 뿐이었다. 아름답다는 생각은 티끌만큼도 들지 않았다. 단지 오늘날의 유행으로는 그리 예쁜 나신이 아니라는 사실과 다양한 인종에도 불구하고 몸매만큼은 전형적인 게르만 스타일의 모델로 고른 것이 아닐까란 의구심이 들었다. 그리고 [사내들은 모두 사춘기 때 본 첫번째 나신에 미의식을 제약 당한다]란 구차한 이론이 하나 생각났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나처럼 곡선의 부드러움에 애착을 갖는 사람이라면 진짜 살아 있는 모델을 전시해도 절대 감명을 주지 못할 거란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전시회의 모든 작품들이 실망을 안겨 주었던 것은 아니다. 나스탸사 킨스키의 세미 누드 사진과 루브르 박물관에서 몰래 찍은 한 컷의 사진만큼은 영화 한 편에 육박하는 관람료가 전혀 아깝지 않은 재미를 선사했다. 담배를 손에 낀 baby Doll의 손이 킨스키의 가슴을 애무하고 있고, 3~40년대 스타일룩을 입은 그녀의 오른쪽 젖가슴이 보인다. 이 사진을 보는 순간 테스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너무나도 유명한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테스에서의 나스탸사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그리고 여러 영화를 통해서 그녀의 나신은 또렷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었기에 뉴튼이 의도한 강렬한 쇼크가 무엇인지도 깨달을 수 있었다. 순수한 테스의 이미지에서 설명할 수 없는 미스터리를 가진 여자로. 이내 팜므 파탈로, 그리고 나신을 통해 다시 순수함으로 복귀하는 이미지의 행렬이 거짓말처럼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이보다 더 즐거웠던 사진은 루브르에서 찍은 한 장의 컷이었다. 이 사진의 모델은 헬무트 그 자신인데 쿠르베의 누드화의 체모 부분을 화면 좌상단에 자신의 윗얼굴을 화면 우하단에 배치함으로써 말로는 설명 못할 재미를 선사하고 있었다. 쿠르베가 누드를 그렸냐 하는 의문에서, 만약 그렸다 치더라도 쿠르베가 저렇게 체모를 노골적으로 그릴 수 있는 시대에 살았냐는 의문까지. 그리고 쿠르베가 주로 사용하는 묘사 방법과는 매우 다른 붓질이라는 느낌까지. 정말 다채로운 의문과 느낌이 나를 즐겁게 만들었다.

게다가 독특한 소재를 통해 모델의 노출증과 관람자의 관음증을 연결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정말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헬뮤트의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이런 연결 고리가 산산히 깨지고 만다. 여성의 국부를 애무하다가 인기척에 놀라 그가 뒤를 돌아보게 되었는데 난 내가 낸 인기척 훔쳐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틀킨 기분이다. 그리고 이내 그가 지어 보이는 뻔뻔스러운 표정에 마냥 웃을 수 밖에 없다.

사실 80년대 태어난 나의 시각으로는 모델의 나신을 통해 아름다음을 느끼기란 어려웠다. 우리 세대에게 그가 추구했던 스타일은 너무나도 유치한 것이 되버린지 오래이고, 누드에 대한 취향도 많은 면에서 변화를 겪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시회 자체가 지루했던 것은 아니다. 기대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한 가득 실망을 안겨다 주었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부분에서는 깜짝 놀랄만한 재미를 선사했으므로…

14 thoughts on “헬뮤트 뉴튼殿”

  1. 이런… 싸이의 업데이트는 기분날 때 몰아서 하루에 이루어진다고.
    나의 근거지가 여기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다니.

    그나저나 맨날 공부하라고 잔소리만 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어.
    하지만 어찌된 연유인지 우리에게 남은 일은 공부밖에 없네.
    할 줄 아는 것 중에 그나마 제일 나은 것도 공부이고…
    힘내자구. 그 길에 끝은 너무 멀지만 그 길의 끝에서 환하게 웃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루 하루는 지겹고 힘들지만
    그렇게 보름이 흐르고 한달이 흘러 수북하게 쌓여 있는 책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상한 기쁨이 밀려와. 한동안 스스로를 믿지 못했는데 이제는 믿어도 될 것 같은.
    자신감의 근원은 근거 없는 낙관이 아니라 안으로 갈무리된 노력이라는 말.
    나이를 먹을 수록 고개를 끄덕이게 되.

    아무튼 오늘도 수고!

  2. 재밌게 하는 중.
    자네도 열심히 하는 구만.
    정기적으로 올라오던 포스트도
    안 올라온지 꽤 되었으니..
    나도 쓰고 싶은 글이 몇가지 있는데
    그냥 참고 있는 중이야.

    이런저런 후회는 된다.
    현실을 외면했던 사실과
    타이밍을 놓쳤던 사실이..

  3. 나란 인간의 그릇은 과연 어느정도 일까?
    문득 의문이 생기네.
    인적 내트워크 면에서는 오히려 지선군이
    더 큰 것 같으니… 모르겠군.

  4. 그릇의 크기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릇이 얼마나 채워졌는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봐.
    그리고 인적 네트워크가 인간의 그릇을 재는 척도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도량이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아느냐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일관된 삶을 관철시키냐로 결정되는 것이란 옛말이 떠오르는군.

    도량의 크기가 드러나는 순간은, 혹은 도량이 커지는 순간은
    바로 위기의 순간이야. 다급하고, 황망한 비상사태에서야 비로서 드러나는 법이지.
    일상에서 중요한 것은 도량의 크기가 아니라 그 도량을 무엇으로 채웠냐가 아닐까?

    다시 말하자면 지금같은 때에는 도량의 크기를 걱정하기 보다는
    비록 크기를 알 수는 없더라도 그 그릇에 무엇을 채울지 고민하는 것이
    더 나아보인다는 뜻이야.

    고민이 낳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라 더 큰 고민이라는 말.
    나를 보고 깨달아줘. 고민만으로 해결되는 문제는 하나도 없으면
    꿈꾸는 것보다는 몸으로 움직이는 쪽이 보다 실현 가능성이 높다는
    평범한 진리를 외면하지 말라고.
    그럼… 어서 중광으로 출근하시지?

  5. 우연히 나만의 베스트셀러에 올라온 글을 읽고 들렀어요. 지난 여름의 전시였지만,review가 무척 반갑네요. 저도 그 전시보았거든요…

  6. 기대 수준에 따라 다양한 평이 오갔지만
    전 꽤나 즐겁게 관람했던 것 같습니다.

    사진에 대한 관심도 예전보다 늘어났구요.
    사진 작가라는 직업을 예술가와 테크니션의 경계에 머무는 직업이라
    생각했던 편견도 일소한 계기었어요.

    플라뇌르라고 하던가요? 인상파가 사용하던 시선의 문제를
    사진에 적용시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헬뮤트 뉴튼전을 보기 전까지
    제가 보던 사진은 내셔널지오그래픽풍의 사진이 전부였거든요.

    하지만 저나 친구들이나 하나같이 빅 누드시리즈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습니다.
    페미니즘까지는 아니더라고 작가의 의도를 어느 정도 눈치챌 수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불만에 차서 내뱉은 말이 평생 사춘기 시절의 미의식에
    제약 당하는 것 바로 미감이라는 수준 떨어지는 반론이었죠.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건데. 아마조네스와 메디아를 반쯤 섞어놓은 듯한
    이미지에 제압당하기 싫어서 애써 시선을 외면했던 듯 싶습니다.
    결국 그것이 작가가 진짜 의도한 것인지 모른채 말이죠. ^^

  7. 남동생이 사진을 취미 생활로 하면서 주장했던 것이 사진 작가는 인문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였어요. 취미 생활을 하면서, 꽤나 철학책을 읽더라구요. 아마 자기의 전공인 정치학 보다 철학책을 더 많이 읽었을 거예요.

    전시장에서 오히려 남자들이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던 것이 바로, 아마조네스와 메디아 처럼 여전사나 famme fatal 같은 이미지 때문이었군요. 오히려 여자인 저와 친구들은 속이 다 시원하면서, 사진을 매우 알뜰이 감상했거든요. 남자와 여자가 같은 것을 보면서 반응과 감정이 다르게 생겨난다는 것이 정말 흥미롭군요.

  8. 글이나 사진이나 그림이나 생각을 표현하는 다양한 방법 중에 하나일테니까요.
    사진 작가나 화가나 소설가나 모두 인문주의자가 되어야 할 필요가 있겠지요.
    동생분 말에 동감이예요.

    사실 남자들은 자기보다 큰 여성에게 주눅이 드는 경우가 있어요.
    저도 86를 넘는 조금 큰 키지만 저보다 키가 큰 여자를 보게 되면
    까닭 모를 압박감이 느껴지거든요.

    빅누드 시리즈가 그랬던 것 같아요.
    인트로 섹션을 지나 처음으로 보게 되는 작품이 빅누드인 까닭으로
    시선을 위로 향해 모델을 봐야 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미 긴장감에 시달렸거든요. 거기에 부드러움하고는 거리가 먼
    강인한 이미지가 겹쳐지다 보니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던 듯 싶습니다.

    그나저나 블로그에 살짝 들려봤습니다.
    우르비노(이것 맞나요?)란 닉네임을 보고는
    티치아노가 그린 우르비노의 비너스가 먼저 떠오르더군요.
    그리고 나서는 몬테펠트로家의 초상화들이 떠오르구요.

    아무래도 자주 들리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매너리즘 화풍으로 세간에 인식되는 스폐인 화가들을
    좋아한다는 구절에 반해 버렸거든요.

  9. 티지아노를 떠올리셨군요. 맞아요. 저도 그 작품을 생각하면서 닉네임을 지었어요. 제가 urbino의 venus는 아니지만, 그곳이 이탈리아의 아테네라고 할 만큼 르네상스 문예부흥을 대표할 만한 곳이기에….몬테펠트로의 그 주먹코와 사마귀가 도드라진 초상화가 생각나셨군요.

    혹 Zurbaran이란 화가를 아시는지요? El Greco의 그림이 사그라질 듯 하여 정신성과 죽음을 표현했다면, Zurbaran은 그 반대로 너무나 견고해서 죽음을 느끼게 하거든요. 전 Zurbaran의 그림을 볼 때면, 피카소의 pink period에 그려진 무디고 견고한 인체의 표현이 단순히 이베리아 원시 조각에서만이 아닌, Zurbaran의 그림에서도 영감을 받았을 것 같다는 의심을 하기도 합니다.

    이번 추석에는 ‘표절’이란 책을 한 번 읽어 봐야겠어요… ^ ^ 교보에 가면 있겠죠?

  10. 우르비노가 맞다니 다행이네요.
    대문자가 아니어서 모르는 단어가 아닐까 하고 한참 고민했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만토바와 우르비노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여태 못가봤네요. 마르케 미술관도 가봐야 하는데 말이죠.

    기벨린과 겔프사이를 바쁘게 오갔던 몬테펠토로가의 이야기를
    처음 읽었을 때는 상당히 약삭 빠르게 생긴 이탈리아 남자들을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구이도발도의 초상화를 보고 좀 깬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네요.

    사실 매너리즘으로 불리는 화가들에 관심을 가진 것은 요즘의 일이예요.
    틴토레토는 예전부터 좋아했지만 엘 그레코이 지닌 현대성은
    얼마 전에야 막내 누님때문에 깨달았거든요.
    후기 인상파 이후의 미술은 거의 이해를 포기하고 있었는데 매너리즘기의
    스폐인 화가들의 작품을 보고 있자니 조금씩 이해가 되더라구요.
    이해가 하루 이틀에 될 것 같지는 않구요. 오랜 시간을 들여서
    조금씩 친근해질 요량입니다.

    도록에서 수르바란의 그림을 보면 실제로 보면 숨이 막힐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강조된 명암과 절제된 표현. 도록 속에서도 죽음과 연민이
    느껴지는데 실제로는 어떨지 상상조차 되지 않습니다.

    그나저나 표절 정말 재밌어요. 같은 작가가 쓴 태양의 가면이란
    소설도 있는데 이것은 표절만 못하구요. 그럼 즐거운 추석 보내세요.

  11. 코멘트를 읽은 누님 왈.

    수르바란이 매너리즘이면 얼 그레코가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겠다고 함.
    수르바란이 태어난 시대가 아르마다의 패배 이후고
    벨라스케스처럼 확실한 바로크도 아니니
    시대만큼은 그렇게도 볼 수 있지 않겠냐는 나의 항명은
    멀리서 들려오는 견공의 호성으로 취급당함.
    너무나 엄격한 표현도 과장의 일종이 아니겠냐는 말도 역시 같은 운명을 따름. ㅡㅡ

    생각해보니 나의 착각이 분명함. 민망 민망.

  12. 하하하.. 괜히 엘 그레코와 수르바란을 좋아해서 한번 비교해본 저 땜에..
    미안해요…

    수르바란과 벨라스케즈가 동시대를 산 것은 확실하니, 바로크 시대의 화가라고는 할 수 있지만, 그의 화풍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바로크 회화의 범주가 아니기 때문에(흔히 까라바지오의 화풍만을 바로크 회화의 특징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죠) 착각을 일으킬 수 도 있죠. 저 또한 누님의 지적이 아니셨다면, 그냥 넘어갈 수 있었겠어요.

    아마도 수르바란의 엄격해보이는 화풍은 이탈리아에서 바로크 회화의 또 다른 조류를 이끌었던 아니발레 까라치 등이 했던 고전적 화풍(High Renaissance에 라파엘의 작품으로 돌아가자는)과 스페인 회화 특유의 어두운 색조, 또한 반종교 개혁에 의해 엄격했던 스페인 화단의 분위기 등이 반영되었겠죠.

    어쨌든.. 즐거운 대화가 이어지니 재미있군요.

  13. 뭘요.^^ 음악이나 문학과 다르게 미술에서의 바로크는
    정의 내리기가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딱 보면 이것은 바로크 시대구나 하는 작품이 있는 반면
    어떤 것은 사전 정보없이는 어느 시기, 어느 지역인지도 헷갈리곤 하거든요.

    반종교개혁 시대의 스페인은 조금 음침하지만 나름대로 멋진 것 같아요.
    흔히 검은 스폐인의 어두운 정열이란 표현을 쓰잖아요?
    에스꼬레알의 어두운 복도를 촛대에 의지해 걸어다니는
    펠리페의 고문관들을 상상하면 그러면서도 통속적인 팜플릿에 매료되었던
    그들을 상상하면 왠지 ‘인간적’이다라는 말이 떠오르거든요.

    그럼 추석 즐겁게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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