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mel

사막의 여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주축군의 군인들은 히틀러의 마력에 가려 제대로 조망 받지 못한 것 같다. 연합군 측에는 아이젠아워와 패튼 그리고 몽고메리라는 사후까지 유명세를 탄 군인들이 있지만 주축군측에서 이들과 같은 대접을 받은 군인은 롬멜이 유일하다. 전차전의 아버지라는 구데리안이나 독일군 총참모장 요들, 만스펠트 같은 군인들의 이름을 발견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사실 이와 같은 불균형의 이유를 밝혀나가는 과정은 어렵지 않다. 동부전선에 배치 받았던 주축군 군인들 상당수가 홀로코스트 멍에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고, 몇몇은 러시아로부터 후퇴 시 포로가 되었으며, 몇몇은 자살했다. 그리고 최후까지 살아남은 군인들 중 일부는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오욕을 뒤집어 썼고, 일부는 사형당했으며, 일부는 감옥에 수감되었다. 예컨데 패배자이자 범죄자로 낙인 찍힌 주축군 군인들에게서 귀감을 찾는다는 것은 지극히 비상식적인 일로 받아 들여졌던 것이다.
하지만 롬멜은 확실히 예외다. 생존 당시부터 영국군과 미군에게 좋은 군인으로 찬탄을 받았고, 독일 내부에서의 인기도 높았다. 동부 전선이 아닌 북아프리카 전선에 배치 받았기에 홀로코스트의 멍에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고, 히틀러 축출 음모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죽음을 맞이 했기 때문에 암울한 나치의 망령과는 별개의 사람으로 인정해 줄 수 있다. [사막의 여우]라는 환상을 믿기에 기분상 꺼리길 것이 없는 것이다.

Mythos Rommel
하지만 마우리체 필립 레미의 [롬멜]은 지금껏 우리가 알아오던 롬멜의 조금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D.A.K의 총사령관 롬멜이 보여준 사막에서의 화려한 전적에 초첨을 맞추기 보다는 예정된 패배와 죽음으로부터 자신의 병사들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령관의 이미지에 초점을 맞춘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롬멜에 대한 선입관은 그가 상당한 야심가이며 고집불통이라는 생각이었다. 서부 전선 진격 당시 구데리안을 이기기 위해 기갑 사단의 전열이 늘어지는 위험을 감수했고, 약세인 전차의 전투력을 만회하기 위해 88밀리 고사포를 대전차포로 사용하는 기지를 보였으며, 아프리카 전선에서는 전력의 약세에도 불구하고 공세적 전략으로 거의 이길 번했다. 기회를 활용할 줄 모르는 평범한 군인이었더라면 사단장쯤에서 멈추었을 그의 군경력을 독일군 Nr.2까지 이끈 것이야 말로 야망이 분명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마우리체가 조망하는 롬멜상은 조금 다르다. 사막의 여우로 불리던 기동전의 대가가 어느날 홀연히 숙명을 깨닫는다. 필리피 회전 전의 브르투스처럼, 악티움 해전을 앞 둔 안토니우스처럼 엘 알라마인 전투를 앞두고 롬멜은 운명을 깨닫는다. 히틀러가 믿는 최후의 승리는 없으며 후퇴만이 그를 믿고 따라와준 D.A.K. 병사들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는 사실을 말이다.

가장 적극적인 공격을 구사하던 전격전의 대가가 어느날 홀연히 방어의 달인으로 변신한다. 주축군의 군인 가운데 유일하게 물량전에 돌입한 서부 연합군과의 격전을 치룬 그에게 독일의 패배는 명백하게 다가오는 암운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가 서부 전선에서의 국지적인 승리로 명예로운 강화를 맺는 것에 그토록 집착한 것도, 뜻을 이루지 못하고 군대 없는 원수로, 허울뿐인 총사령관으로 전쟁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도 아마 주축군 수뇌부 가운데 유일하게 연합군의 군사력을 과소평가하지 않은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동부에 대한 두려움
하지만 마우리체의 [롬멜]이 보다 흥미로왔던 이유는 정작 다른 곳에 있다. 서부 연합군과는 프랑스와 로타랭지아를 포기하는 강화를 추진할 의사가 있었지만 동부전선에서의 전투는 지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롬멜의 사고 방식이다. 영국이나 미국인 작가들이 조망한 롬멜상에는 동부의 위협에 대한 독일인들의 두려움이 전혀 드러나 있지 않다. 러시아가 폴란드에 진출한다는 것은 독일이 슈타덴과 동프로이센을 잃는 것이고 발트해의 제해권을 잃어버리는 것이며, 종국에는 동쪽의 거대한 세력 앞에 움추린 약소국으로 전략하고 말 거라는 롬멜의 두려움을 행간에 끼워넣은 것은 오직 마우리체뿐이다.

개인적으로는 알탸 회담에서 루즈벨트와 처칠을 멋지게 속여 넘긴 스탈린의 웃음도 독일군 수뇌부에게는 통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야말로 10년 후에야 철의 장막을 운운하며 자유 진영의 결집을 호소한 처질의 선견지명을 뛰어넘는 직관이 아닐까 싶다. 만약 롬멜이 시도한 히틀러의 축출시도가 성공했더라면 동부전선에서 독일군과 러시아군이 호각으로 맞붙었다면 세계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역사에 만약처럼 무의미한 것은 없다지만 쉽게 잠들지 못하는 더운 여름밤 생각해 볼만한 주제일 듯 싶은데…

4 thoughts on “Rommel”

  1. 언제부터 역사가 내게 지겨운 것으로 느껴졌는지 의문이 생기는 군.
    아마도 기억력이 나빠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된다.
    또한 통찰력의 부족도…

    이 글을 보니 생각나는 친구가 있네.
    상당히 욕 먹는 녀석이었는데, 역사만큼은 특히 2차 세계대전사 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녀석이었어.
    그녀석의 이야기를 들으면 역사에 강한 매력을 느꼈었는데..
    이번에도 그렇군.

    참, 어제는 학원에 갔었다.
    물론 지각을 했지만,
    그리고 오늘은 수업이 없는 날이었어.
    요즘 매일 한끼정도만 먹고 생활하다보니
    어딘가 좋지 않은지 하루종일 누워있었네.
    그러나 걱정하지는 말게나.

  2. 늘 말하는 것이지만 전공이 문제야.
    어렸을 적에는 나도 역사가 무척 재밌었는데
    지금의 내가 사들이는 책들의 2/3이 전공 관련 책들이야.
    사고 방식도 전공 위주로 변했고,
    아마 나이를 먹어 이 바닥을 완전히 뜰 무렵에야
    다시 역사에 대한 즐거움을 되찾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어서 건겅회복해서 공부하게나.
    방학도 얼마남지 않았다고…

  3. 한달이면 충분해.
    하지만 과연 정신차릴 수 있느냐가 문제겠지.
    생각보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건강한 편은 아니라서..
    너무 기복이 커서 내 스스로도 통제가 불가할 때가 있다.
    암튼 오늘까지는 집에 있으려고.

  4. 이런 힘내라구.
    안정없이 들쑥날쑥 하는 때에는
    시원한 음악 몇개 챙겨 여행을 떠나는 것이 최고인데.
    시원한 바람쐬고, 이러다 보면
    저절로 힘이 생길거야.

    아무튼 힘내렴. 난 이번주 안에 거시 경제학 문제집을 끝내버리겠다는
    각오로 살고 있어. 다 끝내놓고 주말에는 여유롭게 영화나 한편 보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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