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 무역

대항해 시대와 삼각 무역
어린 시절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코에이사의 [대항해시대]가 유행처럼 번져나가던 시기가 있었다. 그 유행에서 나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꽤 오랫동안 [대항해시대]의 팬이 되었던 것 같다. 아무튼 십대 소년이던 당시의 나를 가장 매혹시키던 단어는 삼각 무역이란 단어였다.

보다 수익성이 높은 무역 루트를 만들기 위해 백과사전을 뒤지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던 같다. 역사에 기록된 무역로를 재현하기 위해 늦은 밤까지 잠들지 못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역사에 기록된 무역로를 있는 그대로 재현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왜 였을까?

우선 학교에서 배우는 무역의 기본 가정으로 돌아가 보자. 무역의 기본 가정은 두개의 국가와 두 가지 상품이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두 가지 상품은 양국 모두에서 필요하나 상품이 산출되는 나라는 한 나라뿐이다. 따라서 양국은 교역을 통해 두 가지 상품을 모두 소비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 필요가 있다.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교역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상대국이 가지고 싶어하는 상품 A가 있어야 하며, 상대국 역시 우리가 가지고 싶어하는 상품 B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 세계에서 이런 조건이 간단하게 만족되는 경우는 좀처럼 발견하기 어렵다. 한 국가가 필요로 하는 상품의 개수가 늘어날수록, 한 국가가 특화를 가지고 산출해 낼 수 있는 상품이 적을수록 무역의 연결 고리는 매우 복잡해 진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교훈은 따로 있다. 교역을 하자면 상대에게 대가로 건낼 상품이 필요하다. 자기 것이라면 좋겠지만 가진 것이 없다면 빼앗는 한이 있더라도 상대에게 대가로 건낼 무언가가 있었야 한다. 간단하지만 위의 조건은 오늘날의 세계를 설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조건을 충분히 숙지했으면 [대항해시대]로 혹은 역사 속으로 돌아가자.

[#M_ 역사에 기록된 삼각 무역들 | 클릭하면 사라집니다 | 상업 국가로 알려진 베니스가 이슬람이 취급하고 있던 향신료를 구입하기 위해 수출했던 산물은 목재와 노예였다. 베니스의 뒤쪽으로 펼쳐진 광활한 숲은 벌목 되었고, 달마티아(오늘날의 유고연방) 지방의 주민들은 노예로 이집트 시장에 팔렸다.

훗날 배후지의 목재가 사라지고 달마티아 지역이 카톨릭으로 편입된 이후에는 흑해로 목재와 노예의 공급원을 옮겼다. 이때 베니스가 흑해의 상인들에게 대가로 지불한 것은 베니스 본국에서 생산되던 소금과 레이스, 유리제품을 유럽에 판매한 대가로 얻은 곡물이었다. 이 단순한 삼각 무역은 맘루크 왕조가 오스만 투르크에게 무너질 때까지 이백년 동안 상업 국가 베니스의 기초가 되었다.

하지만 [대항해시대]에는 노예나 목재 같은 현실적인 무역 상품을 다루지는 않는다. 지역적 편재를 분명하게 갖는 특산품을 제외하면 [대항해시대]가 다루는 세계는 분명 역사와 다르다. 현대인의 감수성으로는 쉽게 인정하기 힘든 노예와 약탈이라는 요소를 제외하고 과거의 무역을 설명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실제 역사에 기록된 또 다른 삼각 무역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19세기 이전까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삼각 무역은 중국과 아메리카, 유럽을 잇는 차와 은의 삼각 무역이다. 스페인의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채광된 은은 태평양을 건너 중국산 차의 대금으로 치루어 졌고, 이렇게 사들인 차는 유럽으로 옮겨져 소비되었다. 아메리카 식민지의 은이 말라갈수록, 다시 말해 인디언들을 쥐어 짜던 유럽인들의 손이 메말라 갈수록 유럽에서의 은유출 속도는 빨라졌고, 당시 해상 무역을 장악하고 있던 영국은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만 했다.

19세기에 접어 들면서 동인도회사가 내린 특단의 조치가 바로 인도의 아편 수출이다. 아편의 수출량이 늘어날수록 인도의 대중국 무역흑자의 규모는 늘어났으며, 영국은 인도 시장을 지배함으로써 중국에서 거두어들인 거대한 부를 유럽으로 이전해 나갔다. 보다 많은 중국인들이 아편에 중독될수록 차와 은은 유럽으로 빠져나갔고, 이는 보호주의 무역 장벽에 부딪쳐 아메리카와 유럽에서 [물을 먹고 있던 영국]을 구해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_M#]
삼각 무역의 현대적 함의
교역 자체만 놓고 보면 교역은 영합 게임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상대편에게서 상품을 사오기 위해서는 무언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상품과 그에 대한 대가의 합은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우리는 보통 교역이 경제를 성장시킨다고 생각한다. 왜일까? 영합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교역이 경제를 성장시킨다고 생각할까?

사실 교역 그 자체는 경제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아니다. 교역을 통해 사회가 누릴 수 있는 자원 절약과 후생 증진이 바로 경제를 성장시키는 진짜 원동력이다. 교역은 사회가 최적 비용으로 생산해 낼 수 없는 재화를 소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단지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지 공짜로 얻을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비록 우리 사회가 생산해 내는 비용보다는 저렴하지만 교역 상대국이 생산하는 비용보다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제법 비싼 상품이다. 하지만 과거의 삼각 무역은 위에서 언급한 영합 게임에서 벗어난 가속 페달을 만들어 냈다. 그것은 바로 폭력과 약탈을 통한 공짜 교역과 이를 유지 시킨 인간의 욕망이다.

십대 소년에게 삼각 무역이란 단어는 광활한 바다를 배경으로 활약하던 무역상들을 연상시키는 멋진 단어였음이 틀림없다. 하지만 이십대 중반의 청년에게 삼각 무역은 명과 암을 동시에 지닌 기이한 단어가 되어버렸다. 역사에 기록된 삼각 무역이 폭력과 희생을 동반했다는 사실은 너무 명확해 보인다. 베니스는 슬라브인들을 노예로 팔아 해상 제국을 건설했고, 스페인은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을 씨를 말림으로써 범지구적인 삼각 무역을 그려내었다. 그리고 영국은 중국의 아편 중독이라는 극약 처방을 통해 산업 혁명의 전주 노릇을 톡톡히 할 수 있었다.

현대인의 시선으로 보자면 폭력과 희생이 동반된 당시의 무역 구조에 선뜻 동의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만약이라는 가정을 더해보면 삼각 무역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한줄기 빛을 발견하게 된다. 노예도 아편 중독도, 폭력도 희생도 없는 인도주의적 무역 관행이 세계를 지배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소비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다면, 산업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가 일상 속에서 누리는 다양한 서비스와 상품들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오늘날의 세계는 정적인 고요를 유지하는 재미없는 세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삼각 무역 자체가 한 쪽의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경우가 잦았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희생을 토대로 혜택을 누리는 것은 국경을 초월한 미래의 우리들이다. 사실 현대의 삼각 무역은 과거의 삼각 무역처럼 암울한 분위기를 풍겨내지 않는다. 폭력도 없고, 희생도 없다.(물론 가시적으로만 없다는 뜻이다. 내부 구조적으로는 여전히 존재한다) 어쩌면 너무나 복잡하게 얽힌 현대의 교역 구조로 볼 때 삼각 무역이라는 단어 자체가 고어의 범주에 속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백 년 전 삼각 무역을 태동 시켰던 기본 조건만은 여전히 유효하다. 물건을 사들이기 위해서는 팔 무엇이 필요하며, 그마저 없으면 교역에서 제외된다는 뜻이다. 오늘날 각 국이 경쟁적으로 전략 산업을 육성하는 것도 따지면 팔 무엇인가를 준비하기 위함이다. 게다가 없으면 빼앗으라는 법칙도 그대로 적용된다. 물론 과거 같은 일방적인 약탈과 폭력을 보기란 조금 어려운 일이 되었지만 다른 형태로 변신한 약탈과 폭력은 여전히 교역을 유지하는 일부분이다.

2 thoughts on “삼각 무역”

  1. 녀석, 신경 많이 썼구나.
    ppt를 이용해서 삽화까지 넣다니.
    하지만 뭔가 이상해.
    평소의 자네 글 같은 느낌이 안 든다.
    좀더 치밀하고 분석적이어야만 할 것 같은데…
    더위 때문인가?

  2. 나 ppt 안쓴다고
    프리젠테이션은 키노트를 애용하고
    저런 표는 옴니그라플을 이용하지.

    내용에 관해서라면 결론 부분에 4단락이 삭제 되었다.
    4단락을 살릴 지 죽일지는 아직 판단이 안 서.
    짐작은 하겠지만 원래대로라면 상당히 까대는 글이 나오거든.
    내일 아침 버스 속에서 생각할까 봐.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니 한 주쯤 뒤에 다시 보렴.
    그때쯤이면 조금 다른 글이 될 것이야.
    지금으로서는 나 역시 매우 마음에 안드는 상태임.
    초고라고 생각해 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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